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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Oct 23. 2021

Ep.12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


"여보. 다시 한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그땐 가족을 위해 살고 싶어."


가끔은 즐겁다고 해야 할지 괴롭다고 해야 할지 모를 이상한 고민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잊히지 않는 계절이 있다. 누군가에겐 봄, 여름이 혹 누군가에겐 가을, 겨울이 그럴 수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라 기억이 난다거나 첫사랑을 만났던 계절이라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거나 하는 수많은 이유들로.


나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 그랬다. 아빠가 떠나간 해의 여름이었다.

그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 사건을 제외하고는 고등학교 1학년의 전체 생활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이별을 한 건 아니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무렵 아빠가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걸 알았으니까. 사실 그때부터 예상을 했었어야 했다. 암판정을 듣고 알고 있었으니 미리 준비를 했다고 하면 크게 놀랄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나는 나의 아빠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질 못 했을까.


그때 발견한 병이 단순한 초기 암이 아닌 4기 말기 암이라는 것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땐 너무 어려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면 너무 책임 회피적인 말일까. 그런데 그 당시 솔직하게 느꼈던 감정은 그랬다. 정말 드라마처럼 혹은 영화처럼, 나을 줄 알았다. 왜? 우리 아빠니까. 드라마틱하다는 표현처럼 정말 드라마틱하게 짠! 하고 나을 줄 알았다. 그게 보통의 드라마에서 보던 전개였으니까. 아니면 혹은 병에 걸려 내 가족이 죽는다는 일 또한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기 위해서는 아빠는 반드시 완치하고 건강해지는 것이 그 단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아빠에 대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아빠의 글이라고 해서 아빠를 마냥 그리워한다거나 아빠에 대한 찬양글 또는 칭찬글이 아니다. 어쩌면 전혀 그 반대의 글이 될 수가 있다.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고 평판이 좋으며 어딜가나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본 아빠의 이미지는 그렇다.

인기나 명예, 뭐 그런 걸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도 잘하지 못했던 것 같고 어려운 부탁도 거절도 못 해, 제 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착하고 사람 좋다는 말이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라며 내가 한 가지 정말 잘하는 게 있다면 거절이다. 일부러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그런 유형까진 못 되지만 거절 하나는 정말 잘한다. 왜? 아빠처럼 되기 싫어서, 혹은 내가 못 한 그 거절로 인해 더 소중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서 인기가 좋은 만큼 집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아빠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아빠는 밖에서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법을 몰랐고, 어쩌면 가족보다 자신의 명예나 다른 가치를 더 중요시 여겨 소홀히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보니 가족들에겐 싫은 소리도 적당히 할 줄 알고 가족들의 부탁은 미루고 미뤘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빠는 여러 차례의 선거에서 딱 한 번 조합장 당선이 되셨는데 그 때문인지 또래 친구들도 그렇고 시골이었지만 사회적으로 우리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실과 매우 달리 안타깝게도 굉장히 잘 사는 이미지로 비춰졌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대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뭔지’에 대해 참 많이도 고민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우리집은 내가 말한 것처럼 아빠가 가정적이었다거나 집안이 엄청나게 화목했다고 느껴본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돈이 많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잘 산다는 말처럼 조합장 선거 당선으로 인해 돈이라도 많아져서 우린 정말 경제적으로나마 잘 살았을까?


다 빚이었다.





그래서 줄곧 고민을 한다. 가끔은 즐겁다고 해야 할지 괴롭다고 해야 할지 모를 그 이상한 고민.


'나중에 일이 잘 풀려 그토록 원하는 경제적자유를 얻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게 됐을 때, 그에 따른 책임이나 명예를 얻게 된 상태에서 가족보다 일 또는 회사를 우선시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론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가능성마저 희미해 상상하는 것도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현실이 됐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나름 십수 년 전부터 이에 대한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친 후 내려온 결정이다.


내 꿈을 펼치거나 내 이름 하나를 더 떨치기보다 가족의 생활, 더 정확히 말해 가정의 행복을 더 우선시하는 선택을 하려 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석에 누워 엄마에게 했다는 말이 있다. 명예 다 부질없더라고. 자신이 너무 뭘 모르고 살아왔더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 번만 다시 기회가 있다면 가족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는 유의 말을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엄마에게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한 번뿐인 기회도 있다. 아빠의 희생, 아니 우리 가족 모두의 희생을 통해 알려준 큰 교훈이라 생각하고 다짐하려 한다. 어렸을 적부터 그런 아빠가 때론 밉기도 해 나는 커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그 아빠에 그 아들인지 명예욕 같은 게 조금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게 언제였냐 하면 어릴 적,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 또는 학생회장 같은 그런 이상한 자리에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 정도로. 그러나 그게 별것도 없고 질린다고 생각했던 건 대학교 때였다. 그리고 군대에서 그 생각은 더 강하게 박혔다. 신병교육대에서 얼떨결에 조교 지목으로 분대장도 아닌 부분대장을 맡게 됐는데 그것도 싫었다.


언젠가부터 리더의 자리는 멋있어 보이고 하고 싶다는 자리가 아닌 내게는 귀찮고 저거 해서 뭐하나 하는 그런 자리가 된 것 같다. 리더십?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조금 더 와닿는 거 같기도 하다. 복학 이후에도 같은 과 친한 선배가 단과대 회장을 맡고 있었을 때, 회장단을 꾸리며 함께 하자고 몇 번을 부탁했을 때도 미안하다며 거절했던 걸 보면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이 사라진 거라 설명할 수 있다.


아빠 덕에 얻은 선천적 유전에 의해 생긴 어느 욕망이 후천적으로 결국은 쓸모가 없다는 걸 알아서일까?


글을 쓸수록 아빠에겐 미안한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아빠 탓이니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하고 떠벌리려 한다. 우리 집은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하나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적이 없었고, 사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찍은 건 일반 사진도 몇 개 있을까 싶다. 지금 글을 쓰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굳이 사진관에서 잘 차려입고 찍어서 출력한 사진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진기로 찍은 사진도 없는 듯하다. 시기가 시기였으니 스마트폰 셀카까지 들추진 않겠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 집에 사진관에서 찍은 큰 액자의 가족사진이 있는 걸 보면 실제론 어떨지 모르지만 거기서 나오는 분위기가 너무 화목하고 따뜻해 보였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항상 부러웠던 게 아빠와 목욕탕을 못 가본 것. 영화에서 보면, 아니 굳이 영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변 친구들만 봐도 아빠와 함께 목욕탕을 가고 이런 게 굉장히 부러웠는데 그것도 한 번 못 해봤다. 나이 차가 있다고 핑계를 대기엔 형조차도 아빠와 목욕탕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 1순위인 아빠가 되고 싶다. 예전 회사에서 내가 잘 따르던 팀장님의 경우도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었는데 지금 가정에 충실한 걸 보니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나 같은 아들을 낳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도 함께 해주고 다른 운동들도 알려주고 싶다. 함께 운동하며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딸이 있다면 보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머리카락이 꽤 자란다면 직접 머리를 땋아주고도 싶다.


돈이 많지 않더라도 일단 가정이 생긴다면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내가 준비가 됐을 때, 누군가를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해야 될 것 같아 천천히 하고 싶다. 가난한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 통장 개수의 차이가 내 아이의 꿈의 크기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 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돈, 돈하며 성공을 언급한 것도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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