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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Oct 23. 2021

Ep.10 수입 0원에서 연봉 1억까지의 기간


"아.. 나 성공한 건가..?"


물론 여전히 가진 건 하나도 없었고, 불과 몇 달 전 백수 시절과 달라진 게 사실 크게 없었다. 집이 달라지지도, 차가 있지도 않았고, 입는 옷들도 그대로였으며 먹는 게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아, 그래도 매일 한 끼는 라면으로 해결하던 시기는 차츰 줄어들었다.





수입 0원에서 연봉 1억까지의 기간



제목을 보고 오? 뭐야? 정말로 너 따위가 연봉 1억을 번다고? 라는 생각으로

노심초사하며 이 게시물을 클릭했다면 성공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이 글을 클릭한 여러분들께서 원하는 사실.

정말 연봉을 1억을 받아서 이 글을 쓴 걸까? 혹은 단순 거짓말에 어그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처럼 아니다.


글을 읽으면서 안도감과 화가 함께 몰려올 수도 있다. '역시 연봉 1억이 아니었네. 그래 뭐 연봉 1억은 아무나 버나? 뭐야, 근데 생각할수록 화나네? 나를 낚아?' 등의 반응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은 그럴 정도로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많아졌으면 좋겠긴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자극적인 어그로를 썼느냐 하면 항상 목표로 하던 수입이 있었다. 신입사원 때는 실수령 월 250만원 정도는 받는 곳을 들어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실수령 250만원부터 300만원, 그리고 500만원, 650만원, 1000만원 등 단계적인 목표를 세워왔다. 돌이켜 보면 실력도 스펙도 어느 것 하나 없었는데 왜 그렇게 목표가 높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표를 세우고 계속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그 목표에 비스무리하게끔 근접해 온 것 같긴 하다.

 

그러면 회사 다니면서 연봉 1억을 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다녀야 하고 연봉 1억은 한 달에 실수령으로 얼마를 가져가는 걸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실력도 스펙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나는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으나 항상 그걸 계산해서 그런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 금액이 외워지게 됐다.


직장인 연봉 1억은 세금을 다 떼고 월 실수령 급여가 대략 65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연봉 1억이 만만하지 않은가? 아 물론 그래도 만만하진 않다. 회사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워낙 많은 기업체가 있고 회사에 따라 급여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회사에 다녀야 억대 연봉을 받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아마 임원급은 되어야 하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애초에 내 실력과 학력으로 가기 힘들었던 대기업은 제쳐두고 대기업체가 아닌 일반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중소기업을 기준으로 올해인 2021년 7월에 나온 한 통계 뉴스를 살펴보면 평균 연차 3.5년인 사원의 평균연봉은 2,800만원인데 이 연봉의 두 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평균 경력 연차인 17.7년인 부장 직급으로 약 15년을 더 근무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보통 '연봉인상률이 1년에 10퍼센트 이상 되는 곳이 드물다'고 들었다. 가령, 200만원의 월급을 받는 회사원의 경우 1년 후 연봉이 220만원이 되기 어렵다는 말인데 이 말을 들으니 아래의 통계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http://www.datasom.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847(통계 참조)


그렇게 약 15년을 거쳐 사원 때보다 두 배 많은 연봉이 고작 5,700만원이다.(요즘 집값이 얼마더라..?) 아무리 성과급을 제외한 평균연봉의 통계라지만 생각보다 너무 더 낮아서 놀랄 지경이었다. 위의 연봉 5700만원을 취업 사이트에서 연봉계산기를 돌려보면 월 실수령 금액은 403만원이다. 15년을 넘게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일을 해야 월 실수령으로 겨우 400만원이 넘는 돈을 받는다는 말인데, 너무 끔찍했다. 사실 15년에 연봉 5700이 아닌 10년을 다녀서 연봉 1억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난 자신이 없었다. 생각이 그렇다 보니 한때 공기업과 금융권 취업을 아주 잠시나마 준비하면서도 뽑아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만약에라도 합격한다면 '나는 딱 2년 있다가 나와서 딴 거 해야지!' 라는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글 쓰면서 또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어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는 내 성격상 정말 이렇게는 못 할 것 같다. 사실상 할 수 있는 그릇이 못 된다. 버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윗사람 비위 맞춰가며 가기 싫은 회식 자리에 가기도 싫고, 그렇게 내 젊음과 건강을 언제 잘릴 지 모를 회사에 바치고 싶지가 않았다. 돈도 많이 못 받는데 젊음과 건강까지 회사에 뺏기기 싫었고,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보낼 시간마저 뺏기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비자발적 퇴사를 하게 되어 내가 선택했던 것은 회사라는 그늘 없이 자립하기 전까지는 회사에 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피부로 와닿게 해줄지 몰랐고, 다행히도 나는 그 서프라이즈 이벤트덕에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조차 안 나올 따름이었던 경험을 하고 나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퇴사 당한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회사가 그리 좋지는 않아서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본다면 사수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일을 처리해야 했고 배울 사람도 없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나는 회사 마케팅 담당자로 취업하게 됐지만, 중간에 직무마저도 임시로 바뀌어(말은 임시였지만 퇴사당할 때까지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회사의 다른 업무까지 하며 정작 마케팅일은 못 하고 다른 업무가 주가 되어 한참 커리어 걱정을 하며 퇴사와 이직 준비에 고민을 하던 때였다는 점이다.


어제의 불행이 오늘의 다행으로 생각되는 아이러니였지만 결국 슬픈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내 발로 걷어차고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한 달을 버티면 당시 250만원이라는 월급이 통장에 찍히기 시작하니 집에 오면 눕고 싶고, 주말에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뇌와 몸뚱아리를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월급이라는 이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존재는 나를 더 게으르게 만들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그 이후 다른 회사에 들어가 월급 받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꼬박꼬박 월급이 나온다는 것은 사람을 정말로 나태하게 만든다. 사실 합리화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지배당한 내 뇌와 몸뚱아리는 퇴사와 이직 생각을 무한으로 연기시켰다. 그렇게 나레기의 의지박약은 실제로 퇴사라는 불똥이 발등에 떨어져 큰 화상을 입게 되면서 수개월을 생각만 하며 보내던 내 삶을 다시 바꿔주었다.


그래서 퇴사하게 된 바로 다음 날부터 내 콘텐츠를 쌓아가기 시작했고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회사 일을 핑계로 더 이상 쓰지 않았던 거의 반쯤 죽어있는 블로그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당시 체험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블로그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자책을 출간했다. 책을 출간하고 바로 강의 준비를 했다. 물론 책은 정말 미미하게 팔렸다. 그렇게 간혹 잊혀질만 하면 팔리는 책값은 한 마리의 치킨으로 돌아왔고, 책과 강의 준비에 폐인처럼 일만 하던 시기가 지속되면서 또 다른 소득인 강의 소득도 아주 귀엽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에는 강의로 시간당 3만원, 하루 2시간짜리 수업이니 6만원을 받았다. 어찌 보면 시간당이라고 치면 꽤 괜찮은 급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스터디카페 예약을 내가 했고(최소 시간당 3천원 = 2시간 수업 6천원),  굳이 교통비까지 계산해 왕복 2천원 정도를 제외하면 6만원의 강의소득에서 8천원을 제외하여 5만 2천원이 된다. 그러면 2시간에 5만이 넘으니 이 또한 많은 금액같지만, 더 큰 함정은 하나 더 있었다. 당시 초짜 강사였기 때문에 새롭게 들어오는 강의마다 강의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들을 강의자료를 만들고 강의 준비를 하는 데에 할애해야만 했다. 그리고 보통 강의는 수요가 많은 강남에서 하다 보니 집과의 왕복 거리는 거의 두 시간이었다. 그러면 순수익인 5만 2천원을 하루 동안 벌기 위해 내가 쏟은 시간은 생각보다 많았고, 사실상 모든 시간을 계산해보면 당시로서는 최저임금도 되지 않을 법한 금액이었다. 그렇다고 강의가 하루에 두 탕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일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나에게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좋은 결과로 보답을 해드렸다.


그렇게 강의를 하다보니 지방대 흙수저 출신인 나에게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공부를 배우는 분들이 쌓이게 됐다. 그런데 그 중에는 뉴욕대 석사출신부터 억대연봉을 받으시던 대형 어학원 스타강사 선생님, 연대 치대생, 그리고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나 들어봤던 설의대 출신 병원원장님 외에도 사업을 운영하는 여러대표님들이 내 강의를 필기까지 해가며 들으셨다.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성공한 건가..?"


물론 여전히 가진 건 하나도 없었고, 불과 몇 달 전 백수 시절과 달라진 게 사실 크게 없었다. 집이 달라지지도, 차가 있지도 않았고, 입는 옷들도 그대로였으며 먹는 게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아, 그래도 매일 한 끼는 라면으로 해결하던 시기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놀라웠던 건 내가 보기엔 오히려 정말 대단해 보이는 그런 분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선생님이라 칭해주며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사한 인연은 시간이 지나 더 많은 인연을 연결해주기도 했다.


나에게 강의를 들으신 분들의 공통점은 코로나로 인해 수입이 예전 같지 않으신 분들과 나처럼 직장에서 나오게 됐거나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을 준비하시며 SNS를 통한 퍼스널브랜딩으로 자신의 기반을 단단히 하시려는 분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내가, 내가 가진 지식으로 나와 처지가 비슷한 분들의 고민을 덜어드리며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매우 짜릿했다. 사실 그래봤자 간혹 가다 한 분씩 강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때까지도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뽕에 취해 짜릿함을 즐기고 있을 때쯤, 한 광역시에서 주관하는 SNS관련 마케팅 단체강의 의뢰를 받게 됐다.


12시간 동안 진행해야 하는 80만원짜리 강의였는데, 내 모든 걸 갈아 넣어 몇 주를 꼬박 준비하며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때는 사실 별 생각 없었다. 백수, 아니 프리랜서 상태에서 일단 돈을 준다고 하니 준비를 했던 것이었고 과외와는 다르게 이 또한 나에게 좋은 강의경력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서 영혼을 태워 가며 준비한 것이었는데 좋은 피드백을 받아 결과적으로 그 기회를 통해 추후 다니게 된 회사에 입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일단 큰돈은 아니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혼자의 힘으로 밥은 굶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나름 자립할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 마침 취업 기회가 찾아와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입사하게 됐다. 그렇게 강의는 다시 자연스럽게 쉬게 되었고, 입사 후 새로운 회사와 일에 적응하는 데 약 두 달을 매일 야근만 하며 겨우 적응해 갈 무렵이었다. 예전에 마케팅 관련 도움을 받고 강의를 들었던 한 분에게서 회사의 마케팅을 맡기고 싶다는 지인을 소개해주어 회사 외적으로 통합 마케팅을 해드리게 됐다. 그렇게 회사 월급 외에 고정적으로 받게 된 수익 파이프라인이 하나 생기게 되었다.


회사때문에 강의도 중단한 상태였으나 지속적으로 수요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명이고  시간은 제한적인데 수요가 꾸준히 생기다보니 3만원에서 시작했던 시간당 단가는 5천원씩 야금야금 올라가던  4 5천원까지 올라갔고, 새로 입사한 이후로는  이상 강의를 하지 않을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5만원까지 올렸다. 그렇게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의뢰가 들어왔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처음으로 직접 체감했던 순간이었다.

 

시간당 3만원 강의를 했던 나와 5만원짜리 강의를 했던 나라는 사람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고, 여전했다. 그렇다고 내 강의가 크게 바뀌었거나 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시장의 가치에서 본 나의 가치는 뭔가 달라져도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퇴사 당한 뒤 수입이 없던 백수 시절의 나와 이제는 스터디카페 예약을 직접 할 필요도, 왕복 2시간 거리를 직접 이동할 필요도 없이, 집 안 책상에서 줌교육으로 시간당 20만원짜리 단체 줌강의를 의뢰받게 된 나 또한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달라진 게 있다.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을 깨닫기 시작하게 됐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항상 바닥을 치던 나의 자존감이 아주 째끔은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또한, 먼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음식을 대접하며 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수반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몸값을 올려간다는 생각으로 임했던 노력의 결실은 위에서 말한 월 실수령 500만원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아직 연봉 1억(월수령액 650만원)은 아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숨만 쉬고 정말 일만 한다면 그 금액까지 벌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아주 건방지고도 짜릿한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말이 돌고 돌아 제목에 대한 답을 글의 말미에서야 하게 됐지만

어떤 빽도, 투자금 하나 없이, 고정 수입조차 뚝 끊긴 0원에서 500만원이 넘는 돈까지 벌 수 있게 된 기간. 정확히 6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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