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그래 Oct 23. 2021

Ep.9 잠이 오지 않는 밤

[2020년 8월 31일]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잠이 오지 않는 밤.


한때는 하루를 열심히 보내지 않으면 그날 밤,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이란 벌을 받곤 했다.  

앞 문장에서 ‘한때는’이라는 말을 썼듯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대신 요즘엔 언제까지 열심히 살아야 좀 쉴 수 있는건지 생각을 한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가 간사한 것일수도 있다.  


불과 1년 전(20년도 12월)까지 내 고정 수입은 제로였다. 항상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면 앞으로의 미래와 오늘 하지 못한 일들이 콜라보를 이뤄 자책이라는 감정을 통해 불면증을 계속 만들어 냈고, 새벽 3-4시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들지 못해 아침 6시 혹은 날이 완전히 밝은 7시가 넘어서 잠이 든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낮과 밤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고민과 괴로움에 가득 찬 시간들로 새벽과 오전을 온전히 낭비하고 나면 또다시 반복되는 비생산적인 날들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물론 잠이 들기 전 모든 날이 불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가끔은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들이 탄탄대로 이뤄지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며 당시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장밋빛 미래에 젖어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그 밝은 날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수많은 인내와 고통의 밤이 지나가고 2021년 3월이 다가올 즈음에는 불과 두세 달 전의 밤들과 상반되는 벅찬 마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찾아오기도 했다.


첫 글에 썼듯이 2020년 8월 코로나 2.5단계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후, 불안함에 잠 못 드는 생활을 하며 하루도 쉬지 않았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였지 일이 없는 프리랜서였으니 사실상 백수라고 말하는 게 더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가 주말이 어딨냐'라는 생각으로 일만 했다. 정말 주말도, 퇴근도 없었다.


다행히 회사에선 잘렸지만,  공간에서 일을 하며 친해진 다른 회사의 대표님이 나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퇴사 소식에  분노하며 자신의 사무실에 자리가 하나 남으니 괜찮으면 자유롭게 이용하라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그래서 곧바로 염치없지만, 열심히 얼굴도장을 찍어가며 사무실에서  이상 회사 일이 아닌  일을 만들어 해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낮과 밤은 바뀐 상태였으니 12-1시쯤에 슬렁슬렁 일어나 씻고 외출준비를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지하철과 버스가 끊기기  12시까지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12 자정이 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석 달을 반복하다 그즘에는  대표님 사무실도  이상 이용하지 하게 되어 이후부터는 집에서  생활을 반복했다. 시간은 항상 쏟아부으며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지만, 진전은 없는 듯한 나날이 계속되어갔다.


그럼에도 한 가지를 마음속에 품으며 버티어 왔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으나 국어 시간 읽었던 ‘허생전’에 큰 감명을 받아 좋아하는 구절이 돼 그 이후로 휴대폰에 캡처를 해두고 줄곧 되뇌는 말이 있다.




매점매석하여 돈을 많이 벌었던 허생이 자신만의 섬(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인도를 샀고, 그 섬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섬이었다. 사공이 물었다.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허생이 대답했다.

"덕(德)이 있으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    허생전 中  



이 글의 정확한 해석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화자의 의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해석은 하기 나름 아닌가 생각하며 내가 스스로 해석한 위에서 말하는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는 말은 


실력이 있으면 돈은 절로 생긴다는 말로 치환되어 들렸고,

실력이 없는 게 문제가 되지 당장 돈이 없는 것은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말로 번역됐다.


이처럼 ‘실력(덕)을 쌓기 위해 10년 동안 책만 읽으려 했던 허생처럼 그렇게 감정이입하고 와신상담해가며 견뎌왔다.  



그렇게 퇴사를 당한 뒤 반년이 지나고 수많은 인내와 고통의 밤이 지나,


[2021년 2월 28일]

불과 두세 달 전의 밤들과 상반되는 벅찬 마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찾아오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