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엄마아빠 결혼기념일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
에 블로그에 발행한 엄마가 결혼했으면 하는 글.
아빠 서운해하지 마요. 잊지 않아요. 사랑해요.
-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Ep.8 -
- 엄마, 빨리 좋은 남자친구 한 명 만들어~
- 너희가 결혼이라도 다 해야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 그런게 어딨어 그냥 돈 많은 남자친구 한 명 만들어서 결혼하쇼. 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얼마 전 엄마와 했던 통화내용 중 일부, 그리고 자주 하는 대화이다.
언젠가부터 집에 가끔 갈 때면 심심찮게 먼저 이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너희가 결혼이라도 다 해야 엄마가 남자친구를 만들든 결혼을 하든 하지'라며 말한다.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우리의 원래 친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들이 미안하고 신경 쓰이는 걸까. 엄마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당시, 4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한 큰 누나의 결혼식 때 아빠 자리에는 첫째 작은 아빠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음 별로였다. 그리고 더 별로였던 건 사진사의 실수.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는데 사전에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헷갈렸는지 작은 아빠가 아닌 엄마보고 자리를 비켜주라고 했던 일.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가서 후두려 패주고 싶었다.
그러나 새아빠라는 사람이 내 결혼식 때 엄마의 옆에 앉는 건 제대로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봐도 사실 딱히 나쁠 건 없어 보인다. 사실 문제 될 만한 게 없다.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직 존재하지도 않는 아빠일 필요는 없고, 우리 4남매일 필요도 없다. 아빠의 아내, 우리들의 엄마라는 그 무섭고도 잔인한 딱지를 떼어주고 싶다.
그래서 엄마도 더 이상 자식들만을 바라보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듯이 4명의 자녀들은 매번 돌아가며 걱정거리를 안기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고 이기적으로 말해본다면 나 또한 엄마를 평생 부양할 자신이 없다. 자식은 넷이다. 나 말고 세 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그러나 엄마의 지난 환갑잔치도 제대로 못 챙긴, 수만 많은 4명의 못난 자식들이 엄마의 노후까지 챙길 수 있을까? 걱정 안 끼치게 다들 자기 밥그릇이라도 잘 챙기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19년도 여름에 퇴사를 당하고 말을 못 한 것도, 혹은 나중에 정말 퇴사를 하고싶어서 했을 때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것도 나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엄마가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란 이유도 없지 않다. 이런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자식 생각과 걱정만이 아닌 다시 한 여자로 돌아가 사랑받으며 남은 날들을 그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지금까지는 엄마 편을 들어주겠지만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그때는 내 배우자의 편을 조금 더 들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아직은 까마득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미리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이렇게 못난 자식들에게 기대를 거느니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아직도 혼자 지낼 날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외로움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겠지만 그에 대해 생각을 해 볼 때마다 꼭 엄마가 삶의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 즐거운 삶을 새롭게 꾸몄으면 한다. 서로 세월을 보내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 생일이라도 잘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입장에서도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그저 명절 때마다 얼굴 보러 가고 갈 때마다 용돈 많이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주거나 사주고, 생일 때 꽃도 잘 사주는 아들 정도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어디 가서 돈으로 안 꿀리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아들 역할만 해주고 싶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우리 아빠를 너무 사랑하지만, 우리 아빠라는 그 사실 때문에 좋은 거지 결코 자식들에게 혹은 남편으로서의 점수는 후하게 주지 못하겠다. 항상 약간의 미움이 동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그리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살아계셨다면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딱히 삶이 플러스로 나아갔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저 항상 살던 대로 살았겠지. 그래서 원래 떠나간 사람에게는 프리미엄이 붙는 법이다.
아빠가 지금까지도 계신다면 갑자기 세월이 조금 지났다고 엄마에게 자상한 남편이 될까? 혹은 자식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로 바뀔까? 생각해보면 그럴 리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아빠 미안.
군전역을 했을 때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에 슬펐고, 대학을 졸업했을 때도, 입사해 첫 월급을 탔을 때도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지 못함이, 용돈 한 번 쥐어주지 못한 것이 슬픈 것이지 단순히 아버지라는 사람의 부재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그렇게 모두가 성장하면 화목한 가정이 자연스레 완성될 줄 알았던 행복이, 생각보다 더 머나먼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가 슬펐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녀들이 커가는 걸 아빠와 함께 지켜보지 못 하는 엄마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도 별것 아니란 걸 느끼게 될 때쯤, 엄마에게 필요한 게 꼭 우리 4남매의 안정적인 삶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결혼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