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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Oct 23. 2021

Ep.13  그런데 사실은, 잘 살고 싶습니다.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feat. 가족이라는 이름)

"아-, 나는 그냥 조용히 혼자 살고 싶은데
왜 내가 행복하게 못 살도록 기를 쓰고 다들 방해하는걸까?"



친한 친구가 통화 중 나에게 한 말이다. 가족에게 차를 빌려줬는데 주차를 하다가 차를 찌그러뜨려서 다시 돌려받지 못하고 이틀이 넘게 수리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단순히 저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위와 같은 말을 했을까? 이는 위 통화 중 하나의 사례일 뿐일 뿐, 나는 이미 그 밖에 많은 사례를 들어왔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사였다. 나 또한 위의 에피소드에서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 즉 행복에 대한 기준을 명예나 물질적인 성공이 아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나는 가족 때문에 더 힘든 삶을 살고있는 듯하다. 위에서처럼 친구의 말이 공감도 갔던 이유도 가족으로부터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처럼 자신의 재산을 주거나 빌려주고 납득하기 싫은 상황들에서도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는 관계라고 정의해도 괜찮을까?


그래서 정말 뭐라 정의하기도 힘든 개념인 듯하다. 대체로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 중에서도 가정적으로 도움을 받은 친구들보다는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이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진로까지 포기해가며 열심히 지내왔는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된 친구도 있었다.


나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끔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하면 상대의 대답 방향은 보통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오, 예쁨 많이 받고 자랐겠다." 혹은 "와? 전혀 막내 같지 않은데?" 이 정도이다. 그리고 내 대답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쁨이요? 글쎄요." 그리고 "네. 저도 제가 막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주변에서 생각하는 막내의 이미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예쁨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고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 예쁨이라는 개념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그 위의 형이나 누나에 비해 정서적 혹은 물질적으로의 많은 도움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막내의 이미지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막내같다고 생각하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막내로 태어났지만 그런 예쁨을 딱히 받아 본 것 같지는 않고, 경제적으로 지원 같은 걸 받아본 것도 없었다. 하나를 받고 두 개를 주게 되면 사실상 받았다고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워낙 어릴 적부터 일종의 동생 메리트와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런 것은 언젠가부터 바라지도 않는 어떤 것이 돼버렸다.


그런데 갈수록 내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오히려 무거워지는  하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로 시작해서 이제 사회적으로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는데, 가족을 생각했을  아직도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면, 이게 과연 막내가 고민해야 하는 요소인가 싶다.


이전 화에서는 대략적인 연봉을 비유로 들며 누가 보기엔 자랑처럼 하나의 에피소드를 장식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었다거나 성공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지금 벌고 있는 돈은 부자들처럼 가만히 있어도 나오는 돈이 아닌, 퇴근도 휴무의 경계도 희미한 삶을 이어 나갈 때 받게 되는 액수다. 그리고 여전히 전처럼 차도 없고 집도 없으며 불안에 떨며 더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하는 여전히 평범한 월급쟁이에 불과하다.


지금의 소득으로 혼자서 먹고사는 데에 지장은 없겠지만 서울에서 가정을 꾸리고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잠시나마 희망적이었던 기분도 끝내 한숨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가족이라는 무게가 가끔씩 나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손가락이라는 말처럼 놓을 수가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아픈 이름이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사회생활을 해왔다. 좋은 면에서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나에겐 특별한 것이 없는데 남들이 가진 것조차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을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이렇게까지 벌기만 하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나조차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되뇌는 생각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이다. 소위 말해 돈도 없고 빽도 없어 대학교를 다닐 당시도 용돈   받지 않았고 생활비, 등록금에 기숙사비까지 해결하며 자라왔으니 졸업하고도 집이나 차따위도 집에서 받을 것이 없었다. 그러니 묵묵히 하는 밖에는 방법이 없다.


주위 친구들이 졸업했다고 부모님이 차를 뽑아주거나 심지어 집을 구해주거나 하는 그런 것들을 나는 나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수입을 유지한다한들 차 한대를 뽑아도 부담이 되고 집값을 생각하면 여전히 숨이 막히는 상황이다.


한 달에 500만원이라는 돈은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금액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 혹은 엄살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이 정도를 벌기 전까지는 이 정도를 벌면 충분할 줄 알았고, 살림살이가 조금은 더 나아질 줄 알았다. 아 물론 이제 끼니를 라면으로 떼울 걱정 정도는 안 해도 되는 시기가 왔다는 점은 큰 변화이다. 그리고 저축을 하나도 안 하고 다 써버린다면 딱히 부족하지 않을 금액같기도 하다.


그런데, 돈은  항상 벌어도 부족한 느낌일까?’



드라마 "멜로가체질"에서 임진주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생에게 돈은 언제까지 없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공부(취업 준비)하니까 없어.

그러다 다행히 합격했어, 공무원(취업)됐어.

안정적으로 월급 들어와.

그럼 결혼하겠지? 그럼 집 구해야지.

그게 네 집이야? 은행 집이야, 또 없는거야.

그래도 성실하게 20년동안 죽어라 일해서 갚아, 근데 애가 있겠지?

애들이 대학간대. 그럼 또 없는거야.

착실히 일해서 애들 공부시켜,

근데 은퇴할 나이네? 또 없는거야.


와 인생이 그냥 뭐 없는거야네?"


여기까지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그나마 이게 성공사례야. 돈은 원래 없는거야. 항상 없어."


나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는 내적 안도감과 더불어 이딴 걸 위로라고 받으며 내적 안도를 하는 나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감춰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돈이 항상 없는 이유도 가족과 가정의 대물림 아닌가?


'이래서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구나. 집도 안 사려고 하고.'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동시에 '포기하면 과연 이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뒤이어 들게 된다.


얼마 전 어떤 분을 만나 함께 밥을 먹게 되었는데 그 분께서 이런 말을 해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이야. 나도 이제  60 바라보고 있는데 나이를 먹으니 가장 슬픈  해주고 싶어도 지금 당장 옆에 해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가장 슬프더라."  


이런 생각을 하면 혼자라는 게 보다 더 여유는 있겠지만 말 그대로 상대적일 뿐 부족하다는 개념 자체는 사실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더 소중한 가치를 누리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경제적 풍요라는 게 가정의 평화와 같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대편의 환경에서 자라오면서 시간과 경제적인 자유를 이뤄놓으면 내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가 있겠다는 것을 많이 느껴왔다. 반대로 나에게 돈과 시간이 없으면 소중한 것을 그 시기에 지킬 수가 없다는 말을 더 와닿게 느끼며 살아왔다. 속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내가 아무것도 없으면 유지하는 게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이 노력이 우리 가정의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은 일단 돈 걱정 없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하고 또 정서적으로도 자알~ 살아보도록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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