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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Oct 23. 2021

Ep.14 스물 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 1년 전에 쓰고 부끄러워 차마 업로드 하지 못 했던 글


[2020년 12월의 어느 날]


어렸을 때 느꼈던 서른의 나이는 굉장히 커다란 어른의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서른이 되면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굉장한 부는 쌓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지게 될 줄 알았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는 다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내 한 몸 어디 받아주는 곳은 당연히 있을 줄 알았다. 나아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가지고 멋지게 살아가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의 그런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가치는 둘째치고 서른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당장 내일, 아니 오늘의 삶에 허덕이는 나를 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 내 기준으로 서른은 말 그대로 어른이었다. 스무 살부터 성인이라지만 내 기준으로 스무 살은 그래도 학생이었고, 내가 스물한 살 입대를 하고 대학생에서 군인 아저씨로 신분이 순식간에 바뀌었을 때도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며 열심히 부정했다. 그리고 이 글의 초안을 처음 썼던 2020년의 12월, 서른까지 대략 1년이 남은 시점에 나는 안정적인 것 무엇하나 갖춰진 게 없었다. 서른이 이렇게 슬픈 나이였을 줄이야.


그렇게 남은 1년을 뒤로한 채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스물여덟의 1년간 무얼 했고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뤄냈는지, 그걸 보면 남은 1년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씁쓸해한다.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서른이 돼도 뿅 하고 굉장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느낌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아홉이 된 순간부터 다음 해까지의 1년은 조금 더 다를 것이라 생각하며 그 생각으로 묵묵히 버티어가며 살아가 보려 다짐한다.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서른은 참 슬픈 나이인가 싶기도 하다. 스물아홉 마지막 날의 나와 서른을 맞이하는 첫날의 나는 단 하루가 차이 날 뿐인데, 마치 굉장한 변화가 있어야할 것 같은 주변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아홉 살의 나는 열 살이 되길 손꼽아 기다렸고, 열아홉 살의 나는 입시라는 길에 어찌할 줄 몰라 방향감각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스물아홉의 시기, 서른이 되기 전까지의 나는 준비운동을 조금 더 확실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경험을 두 번 해봤지만, 준비운동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탓이다. 이게 준비한다고 뭐가 달라질지는 알 길이 없다. 1년 동안 얼마나 더 이루고 성장할 수 있을까. 많이 성장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사람 정도는 되어 있었으면 한다. 서른이 되고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건 주변을 둘러봐도 참 어려운 일인 듯한데, 어느새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이 어렵게 다가온다.


이토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서른이지만 남은 1년 잘 준비해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란다.


이 글을 쓰고 부끄러워 미발행한 채 브런치 작가의 서랍 속에 묵혀둔 지 대략 1년의 시간을 보냈다.

1년 전에 글을 쓴 것처럼 정확히 서른을 약 두 달 앞둔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또 다시 이 글을 이어 나갔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을까.

 

 



[2021년 11월의 어느 날]


EP. 10화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말은 책 제목에서 따온 오마주이지만 정말 내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돈, 능력도 그 어느 것도. 사실 지금도 딱히 가진 건 없다.


그러나 이 글의 초안을 썼던 20년의 12월에는 더욱더 막막 그 자체였다. 흐릿하다 못해 어두컴컴한 미래만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죽어도 딱히 미련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갈 돈도 없었고 그간 열심히 살아와서 다른 후회도 없었다. 오히려 후회라면 열심히만 살고 상대적으로 그다지 열심히 놀지는 못해서 그게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여전히 삶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이유인지 내가 갑자기 죽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하지만 그 고민의 끝에는 '어떻긴 뭘 어떤가. 그냥 죽는거지.' 라는 생각이었고, 대신 갈 때 가더라도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말고 살아가자는 게 지금까지의 마음가짐일 뿐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생각이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 내가 이렇게 간사한가 싶을정도로 생각이 180도까진 아니지만 180도를 향해 달려가며 변화하는 . 물론 전에도 "죽고 싶다"까진 아니었지만 죽게된다 하더라도 '미련은 없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주머니에 조금씩 쟁여놓는  생기다 보니 이제는 이대로 죽으면 아까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말한 것인가. 그러나 이제는 억울해서라도 지금은 죽더라도 풀소유를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열심히 벌기만 하다가 가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예  벌고,   하고,  모았으면 억울하지나 않겠지.'라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다다르니 억울해서 이제는  죽겠다.


"안 죽고 벽에 똥칠, 아니 돈 칠할 때까지 건강하게 만수무강하면서 살아볼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21년 11월, 서른이 되기 전 스물아홉의 생각을 마무리했다.





[2022년 3월의 어느 날]


그리고 또 하나, 벽에 돈 칠할 때까지 살아보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돈이 아닌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보고자 한다. 내 사업을 통해 그것을 이뤄보고 싶다는 꿈 하나가 생겨 죽지 않고 버텨나갈 이유가 생겼다. 얼마 전까지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던 나라는 작은 존재의 사람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준다거나 깊게 관여를 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그 보편적 가치를 통해 나 혼자만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


 1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쓰이고 지워지는 수많은 퇴고를 거쳤음에도 다시 수정되고 있는  글처럼  나지는 않지만, 조금씩이나마 항상 나아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어느새 죽기로 결심했던 서른의 생일을  달도  남기지 않은 봄의 초입에 들어섰다. 서른의 3, 카페의  테라스에서 오래된 글을 수정하는  순간, 어느  다시 따스해진 바람이 기분좋게 뺨을 스치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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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편의 제목은 일본 소설인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제목을 오마주하여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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