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 SNS구경하듯이 가볍게 스윽 훑고 가시면 됩니다.
우리는 편집된 글과 사진을 올리고
편집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곡 정도로 편집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편집된 글과 사진을 올리며
편집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편집되지 않은 순간들도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글의 에피소드가 마지막으로 접어들어 가며 목차를 보니 약 1년간의 파란만장한 삶의 부분을 성공스토리 혹은 대서사시처럼 잘 포장해서 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연 보여지는 게 다일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모두 편집된 게시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편집되지 않은 날 것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소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점 하나,
퇴사 후부터의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오히려 퇴사를 당하기 전 근무하던 때부터도 고민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난 분명 마케터로 채용됐는데 왜 여기서 다른 직무를 하고있는건가.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건가?' 하는 고민부터 갑자기 퇴사하고, 아니 퇴사를 당하고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모르는 수입을 위해 방에만 틀어박혀 고통스럽게 글만 쓰던 때를 혼자서만 기억한다. 커피값이 부담돼 카페도 함부로 가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상황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하필 그럴 때만 연락이 참 많이도 왔다. 회사 다니고 정작 바쁠 때는 연락 하나 없더니, 이건 과학이다. 세상 모두가 나를 향해 몰래카메라를 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건가.
- 어?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했어~ 잘 지내? 요즘 어때?
- 응 잘 지내!(고 싶어.) => 편집
굳이 일일이 설명하기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잘 지낸다고 답을 한다. 직장이야 다시 구하면 되는 거고 잘 지내는 건 맞으니 말이다. 물론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편집점 둘,
대학교를 4학년 마친 뒤 졸업을 미루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그러고 오니 1년이 사라져있었다.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값진 좋은 시간이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인스타에 올려놓은 그 화려하고 좋은 점들만 바라봤다. 하지만 그 덕에 취업시장에서 실력도 빽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던 내 경쟁력은 나이만 추가돼 비교적 더 힘들어졌다는 것은 나 혼자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앞의 에피소드에서 말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아닌 친척들에게만 해도 잘 나고 잘 나가는 것만 말해줘야 뭔가 응어리진 것들이 풀리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좋았던 경험들만 더 신나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 워홀이랑 유럽 어땠어?
- 완전 좋았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무섭고 힘들었던 적도 졸라게 많았고) => 편집
편집점 셋,
그렇게 어려운 기간을 버텨 2021년 봄 3월 즈음, 돈을 많이 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해 봄은 꽃을 구경조차 해본 적도 없이 봄이 지나갔었다. 퇴근은 오후 6시지만 아침 9시에 출근해 9시가 넘는 시간에 사무실을 나오다 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뭘 볼 수도 없었고 지쳐서 어딜가기도 힘들었으며, 일-집-일-집으로 항상 같았던 나의 동선에는 벚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야 요즘 벚꽃 너무 예쁘더라, 너도 꽃놀이 다녀왔니?
- 응. (다른 사람들 인스타그램으로) => 편집
남들이 SNS에 행복하게 꽃구경 사진을 올리던 때에 나는 내가 얻기 위한 것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졌다. 앞선 글에서 쓴 내용이 있다. 소득이 전보다 높아지면서 하나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전에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마냥 부러워만 했었다면 지금은 그 과정을 생각하며 그 위치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과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할 말은 아니지만 사는 게 이런건가 싶다.
여기에는 간단하게 편짐접을 세 개로 잡았지만 말하지 못한, 부끄럽고 보여주기 싫은 수 많은 편집점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영상 편집을 하다보면 정말 수많은 컷 편집 과정이 있다. 가끔은 '이게 이렇게까지 편집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집 전후의 차이가 많이 나는 영상들도 굉장히 많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프로그램은 엄청나게 많은 촬영 속 NG장면과 컷 편집들이 더해져 완벽해 보이는 결과물이 나온다. 실은 편집되어 정제된 결과물보다 잘려나간 부분들이 더욱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데도 말이다. 나 또한 현재의 나와, 나의 글을 부족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다듬고 편집하여 글로 그럴싸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 위주로 써냈을 뿐이다.
퇴근 후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 손목을 들어 애플워치를 본다. 이대로 가면 한 3분 지각이다. 사실 큰 상관은 없지만 괜히 늦게 도착해 사람들의 이목을 받고 싶지도, 준비 운동 절반을 날려 먹은 채로 시작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뛰고 싶진 않으니 발걸음만 재촉하는 걸로 합의해본다.
여전히 야근이 잦아 퇴근 후 체육관에 가면 운동시간에 맞춰 빠듯하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도 여전했다. 마찬가지로 빠듯하게 체육관으로 향하던 길에 빠르게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게 만든,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길가 담장에 예쁘게 핀 장미꽃이었다.
체육관을 가던 시간이 집에다가 바로 짐만 풀어두고 가야 겨우 늦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발걸음을 돌려 장미를 봤다. 그런데 내가 했던 행동은 오랜만에 본 꽃이 감격스러워 SNS에 올리려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감격을 혼자서 충분히 즐기는 게 아닌 남에게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려 찍는 것 같았다. 찰나에 스치는 장미꽃이 예뻐서 감상하는 시간이 아닌 오히려 나는 즐기지도 못한 채 사진 한 장으로 즐기고 있는 듯한 마음만 보여주려 했다는 사실에 사진과 영상으로 그 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결국 올리진 않았다. 편집된 나의 삶을 보여주며 그런 식으로 행복해 보이는 것이 내가 온전히 행복한 것보다 행복을 반감시켜준다고 느꼈다.
그리고는 원래 사진만 휙 하고 찍고 나서는 마저 가던 길을 급하게 가려 생각했었는데 생각을 바꿔 그냥 여유롭게 한참을 더 바라보다 체육관에 늦게 도착했다. 늦으면 늦는 대로 가야지. 지금 1분 늦으나 3분 늦으나 늦는 건 매한가지고, 그렇게 체육관을 늦는 것보다 지금 내가 이 꽃을 보고 느끼는 만족감이 클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SNS의 대명사가 돼버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잘 하지 않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자주 올리지는 않다 보니 보통 업로드는 특별한 것들을 올리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그 순간들만 기억이 되는 것 같아 다른 순간들은 반대로 소중하지 않아 더 잊혀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올리는 그 특별한 순간을 더 과장하고 편집해서 그 순간의 기억까지 왜곡해버리는 현상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행복하고 가슴에 벅찬 순간들을 담아 기록하는 건 정말 좋지만 왜곡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일부러 업로드를 줄이려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업로드가 뜸해졌다. 이토록 내가 행복해 보이는 척 왜곡이 심한 사람이었단 걸 반증이라도 하는 듯했다.
사실은 이 글도 그렇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나마 풀긴 했지만 이렇게 지낸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순조롭지는 않았으며(오히려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여전히 행복감과 고통은 공존하며 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 글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을 수도, 담고 싶지도 않았고 누구나 보여지기 싫은 모습이 있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모습만 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편집된 글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이렇게 편집된 글에서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사실이 있다. 글이 너무 우울해질까 무서워 어찌 보면 그간 겪은 고통의 시간과 감정은 이 글에 모두 드러내지 못하고 편집해버렸다는 점. 자는 시간을 줄여서 일했고 남들 유튜브 보고 TV보고 게임하고 놀 시간을 줄여 책 읽고 공부하는 데 시간을 썼다는 그런 뻔한 말들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시간이 가장 소중했고, 현재의 순간을 형성시킨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 보니 노력과 성과들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는 의미로만 폄하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간과하는 사실 중에 단순히 일이 잘 풀려서 혹은 운이 좋아서만 어떤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자신들이 놓친 수많은 기회를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성과를 운으로만 치부하며 노력 없이 천운만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현재의 내가 폄하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하나의 편집점을 끝내 살려두었다. 그리고 아무리 편집을 하더라도 깊은 이야기들로 인해 어떠한 프레임을 쓴 채로 나를 보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블로그와 브런치라는 공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철저히 격리시켜왔다.
그렇게 자기방어 수단으로 투영되는 것이 철저하게 편집된 SNS 속 사람들의 모습이자 나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가끔은 '삶을 사진이나 영상처럼 편집하여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올리고 싶은 것만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자주 마주하기엔 아직 내 맷집이 덜 완성된 탓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바랄 수 있는 건 편집되지 않은 모든 순간들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