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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Sep 18. 2022

글쓰기와 민망함의 상관관계

다소 민망한 차 이야기

글을 쓴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요. 그러는 와중에도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여기서 부끄럽다는 말이 제가 감히 글쓰기를 폄하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란 건 아실 겁니다.


보통은 글을 쓴다고 하면 어떤 글을 쓰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하는 것부터 대표적인 글감이라도 하나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인데요.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먼저, 어떤 글을 쓰냐는 물음을 받으면 자주 받는 질문임에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고요. 사실 마땅한 주제랄 게 없어 그냥 에세이라는 말로 갖다 붙이는데, 에세이를 쓴다고 직접 말하면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 에세이라는 친구에게 항상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다음은 ‘대표적인 글감’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되는데요. 글이란 게 제가 가진 생각의 파편에서 비롯된 것인데, 겨우 파편일 뿐인 글감 하나를 보고 제 생각을 혹은 저를 온통 표현한 것이라 생각할까 봐 겁나는 게 있고요. 반대로 파편일 뿐이지만 직접 말하지 못하고 있던 깊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스스로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더군다나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하나 그 사람은 내 깊은 곳까지 한순간에 일방적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마치 나 혼자서 발가벗겨진 상태로 상대방의 시선을 느끼는 기분, 상대방의 패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내 것만 모두 보여준 느낌이라고 말하면 비유가 적절할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준다는 행위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저를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오픈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경우 본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저를 보려 하지 않고요. 기존의 저와 글 속에 있는 저를 견주어보려 굳이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서로의 컴포트 존을 지키며 아무 편견 없이 글 자체만을 바라봐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저를 봐줍니다.


글을 평가받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평가받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넘어 두려운 느낌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제 글을 보여주지 않는 편이고요. 글을 쓴다는 사실조차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사서 민망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건 민망함을 무릅쓰는 일입니다.


차에도 민망하다는 단어와 관련 있는 차가 있는데요. 그 주인공은 ‘황차'입니다. 황차는 민황이라는 독특한 제조과정을 거치는데, 민황의 ‘민(憫)’이라는 글자가 민망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황의 제조과정을 쉽게 비유해보자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축축한 빨랫감들을 덥고 습한 방에 켜켜이 쌓아두고 발효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빨래에서 어떤 냄새가 날까요? 쉰내가 납니다. 황차에서는 이 민황과정을 통해 특유의 빨래 덜 마른 듯한 향이 나는데요. 덜 마른 빨래를 입으면 냄새가 나 민망하다는 느낌을 예전부터 알고 이런 의미가 전해 내려왔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이 제조과정의 이름을 민망하다는 뜻을 사용하여 '민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황차의 향을 맡으면요. 향에 예민한 사람들은 빨래 덜 마른 듯한 쉰내를 잘 캐치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민황의 발효과정에서 쉰 듯한 향을 원래 찻잎의 아로마인 과일과 꽃의 오묘한 향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생산량이 적어 귀한 차에 속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은 아닙니다. 후각이 예민한 건지, 저에게는 과일과 꽃의 아로마보다는 쉰내와 같은 특징이 더 도드라지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민망한 상황을 견디고, 긴장하고 땀 흘리는 제조과정이 왠지 애처롭게 느껴지는데요. 그 모습이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어리숙하여 뚝딱거리고 바보같이 민망해하며 땀 흘리던, 어린 시절의 저를 보는 것 같아 괜히 눈길을 피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보기 힘든 차이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황차를 보신다면 제 이야기를 떠올려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께 보여드리기 민망한, 치부를 드러내는 글들을 열심히 써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부끄러우니까 돔'황차'..큭..ㅎ,,


왼쪽이 '황차(Yellow tea)', 오른쪽이 녹차(Green tea)


* T(ea)MI : 황차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요. 현재는 다류를 색으로 분류하여 백차, 황차, 녹차, 청차, 홍차, 흑차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원래 황차(黃茶)는 색상으로 분류한 건 아니었고요. 황제에게 바쳤던 최고급 백차와 녹차라고 해서 ‘황차(皇茶)’라는 이름이 붙었는데요. 위에서 말한 민황이라는 후발효과정 때문에 현재 황차는 백차, 녹차와는 다른 약간은 더 홍차스러운 느낌이 드는 차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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