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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Mar 20. 2022

"상관없어"라는 말.

문제 될 것이 없다.

첫째는 “상관없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가 6살이던 때, 유치원을 마치면 놀이터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의자에 앉을 틈 없이 뛰노는데 아이는 친구들과 놀다가도 자주 의자에 앉아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나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에게 “이제 30분 후면 집에 가야 하는데 이렇게 앉아 있으면 있다가 후회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게 무슨 문제라는 듯 “아니. 상관없어!”라고 말했다. 


 이사 온 지 2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을 한 달밖에 다니지 못하고 조기 졸업했다. 그리고 아는 친구 한 명 없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아이가 학교를 낯설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아는 친구가 없어서 조금 어색할 수 도 있겠다. 괜찮아?”라고 물으면 여전히 아이는 “괜찮은데? 상관없어~”라고 답했다.


집에서 레고를 만들 때 원하는 부품이 없어도 “상관없어”

친구에게 양보할 일이 생겨도 “상관없어”


아이의 “상관없어”를 들을 때마다 아이가 주관이 없는 것 아닐까, 혹은 속상한데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아이에 비해 좋고 싫음이 확실한 엄마라서 아이의 “상관없어”가 좋고 싫음이 없는 모습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육아는 아이의 생각을 나의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가끔은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상관없어는 어떤 뜻인지 물었다. 

“진짜 상관없다는 뜻이지. 이렇게 돼도 저렇게 돼도 싫지 않다는 거야. 나도 하기 싫은 일은 상관없다고 안 하지~”






“상관없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1.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 2. 문제 될 것이 없다>이다.

아이의 “상관없어”는 “문제 될 것이 없다”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가 “상관없어”라고 대답했던 때는 다양한 선택지들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문제(걱정, 아쉬움이 포함된)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아이는 괜찮은지를 묻는 상황이었고 그때마다 아이는 그건 문제 될 상황이 아니라고 답했던 것이다. 


놀이터에서 “상관없어”는 “놀이터에서 나는 충분히 놀았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의자에 앉아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도 소중해”였고, 입학할 때 “상관없어”는 “지금은 아는 친구가 없지만 곧 친구가 생길 거야”였다.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상관없어”는 “원하는 것은 없지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으면 해결 가능한 문제야”였고 친구에게 양보할 때는 “친구에게 주고 싶은 게 진짜 내 마음이야”였다. 아이는 상관없어했고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을 증명해 보이듯 (내가) 걱정했던 문제들은 상관없어졌다.


문제 될 것이 없다 라니. 몇 년 동안 아이를 지켜보며 아이의 “상관없어”는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 내 행동은 나의 마음을 충실하게 반영한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을 바꿀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 꼭 내가 쥐고 있지 않고 양보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행복이라는 것. 아이는 이 모든 것에 확신했다. 누구보다(그게 엄마일지라도)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는 좋고 싫음이 확실한 아이였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아이였다.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아이였다. 


중요한 건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가 아니라 문제가 되는지 문제 될 것이 없는 지다. 똑같은 상황도 누군가에겐 문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이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는 사람에게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니다.


나도 편안하게 “상관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나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나에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를 더 배려할 수 있고 뭐든지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상관없어”는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말인지 아이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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