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평가로 연구력을 평가하는 것은 점점 시대착오적인 방식이 되고 있다
가끔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카데미아가 문제가 되고 있는 까닭 중 하나는, 논문과 저널이 너무 많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체감컨대, 지금의 저널 혹은 페이퍼 개수는 10년 전보다 두 배, 20년 전보다는 5배 이상인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내가 처음 대학원에 발을 디딘 2002년만 해도 연구실 선배들이 내는 저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종류가 제한되었다. 매번 내는 저널에만 페이퍼를 보내고, 주로 논문 검색도 그쪽 분야로만 하는 등, 저널 선택에 대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때도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저널에 대한 선망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막강한 권위가 부여되는 저널이라기보다는, 종합 학술지라는 뉘앙스가 강했고, 딱히, 광범위한 학계에 보고해야 할 내용이 아니라면, 연구자들은 본인의 관련 저널에 꾸준히 페이퍼를 내는 것이 상식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도만 해도, Letter 지 (A4와 비슷한 사이즈지만 좀 더 널따란 규격의 종이)에 프린트한 manuscript를 항공우편 용 서류 봉투에 고이 담아, 교신 저자인 선생님이 직접 사인하신 Cover letter와 함께 동봉하여 우체국에서 EMS 등의 국제우편으로 해당 저널의 에디터 사서함에 보내곤 했다. 당연히 지금처럼 몇 주 안에 페이퍼의 결론이 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몇 달씩 걸리는 것이 예사였으며, 심지어 1-2년씩 걸리는 페이퍼도 흔했다. 박사 졸업생들은 보통 2편, 많으면 3편 정도의 페이퍼를 들고 졸업했으며, 가끔 outlier도 나오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나의 연구실 선배이기도 하시고, 지금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작고하신 故 서**교수님 같은 케이스인데, 서 교수님은 박사 졸업 당시 25편인가의 페이퍼를 쓰고 졸업하여 대단한 박사님으로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BK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고, 대학원생 숫자와 교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학생 당, 교수 당 논문 출판 개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04-08 약 4년 반 기간 동안, 나는 KIST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는데, 나 역시 박사 유학을 좋은 곳으로 가 보려고 아득바득 페이퍼 공장처럼 페이퍼를 많이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괜찮은 페이퍼로 생각하지만, 게 중에는 딱히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구석이 없는 페이퍼, 즉,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박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어서, 어떤 분야 (예를 들어 에너지 재료 분야)는 박사 졸업생들이 평균 두 자리 수의 페이퍼를 들고 졸업하는 것이 표준이 되어 버렸고, 심지어 네이처 자매지 2-3편 정도는 들고 졸업하는 것이 예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페이퍼 인플레가 일어난 것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그렇게 페이퍼를 많이 쓴 졸업생들은 어찌 된 것이 해가 갈수록, 좋은 잡을 잡기 어려워지더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사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연구 논문 수 증가와도 맞물려 있는데, 사실 지난 10년 간 중국은 분야 가리지 않고 대학원생과 교수 숫자가 급증하였고, 그 급증한 숫자만큼의 연구원 * 연구 논문 출판 증가율이 곱해져서, 그야말로 중국에서 출판되는 연구 논문의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다. 동아시아에서 답지하는 manuscript의 개수는 폭발하는데, 저널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빨리 캐치한 일부 상업 출판사와 학회는 부랴부랴 각종 저널들을 출범시키기 시작했고, 이는 각종 자매지, 자매지의 자매지, 한 학회에서 비슷한 저널 2-3개씩 출판하는 것으로 이어지다가, 급기야는 open access라는 미명 하에, 온라인으로만 출판하는 환경에서도, accept 된 논문 한 편에 수 천 불씩 출판료를 받는 저널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오죽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장은 Nature Springer 출판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중국은 대놓고 페이퍼 인센티브로, 많게는 같은 급의 교수들 사이에서도 연봉 격차가 7-8배씩 나게끔 평가 제도가 설계되어서 그런지, 쓰레기급의 페이퍼와 보석 같은 페이퍼 모두 급증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 10-15년 간 논문 숫자가 증가한 주원인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 아무래도 다름 아닌, 연구 과제와 인사 평가의 기준이 논문 편수에 선형 비례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논문의 질 (IF, eigen factor, H-index 등)를 보는 구조로 많이 바뀌고 있다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연구 기관과 학교, 회사에서 연구자를 평가하는 1차 기준은 페이퍼의 개수이고, 그중에서도 교신 혹은 1 저자 페이퍼의 개수다. 이 때문에, '일단 뭐가 어찌 되었든, 퍼블리쉬하고 보자!'는 경향이 연구자들 사이에 팽배했고, 그래서 채 익지도 않은 데이터를 허겁지겁 정리하여 빨리빨리 내 보내기에 바쁜 경향이 딱히 이상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반면, 가치가 있는 데이타임에도 불구하고, 승진 데드라인이나 과제 디펜스 때문에 억지로 밀어 넣다 보니, 어이없는 저널에 팔려 가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등학생의 1 저자 페이퍼 사례도 이러한 경향 속에 빚어진 촌극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한다. 재현성 테스트는 개나 줘 버리고, 통계 처리도 멋대로에, 자기 표절은 예사고, 교수는 학생이 써 오는 manuscript를 제대로 proof-reading 하기도 벅찰 정도로 페이퍼의 홍수가 밀어닥쳤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의 등록금이, 국공립 혹은 사립 할 것 없이, 거의 10년 넘게 동결되면서, 대학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논문 인센티브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몰렸으며, 결국 이는 논문을 위한 논문의 양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 속에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본 대상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특히, 박사 과정 학생의 경우, 학생 한 명 한 명이 제대로 된 학자로 키워져야 하는데, 교수와 학생은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만 쓰다 보니, 학문적 훈련은 언감생심이고 연구윤리, 글쓰기, 이론적 배경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특히 최근에 점점 문제로 보이는 경향은, 박사 과정 학생들이 몇 년씩이나 학교에서 연구 훈련을 받는 와중에도 글쓰기 훈련은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수들은 과제에 치여 살고, 거의 1년 내내 있는 각종 과제 기획, 발표, 점검, 보고서 작성, 평가/피평가, 출장에 시달리다 보니, 흥미와 주제 의식에 의한 연구보다는, 과제를 위해 연구하게 되어, 대학원생들은 학생이 아닌 그저 '연구 보조원'으로 5-6년을 보내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교수가 책상에 학생을 옆에 앉혀 놓고 논문 한 줄 한 줄, 한 글자 한 글자 같이 써내려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원생들은 석사 박사 할 것 없이, 그저 실험하는 기계, 보고서 쓰는 기계가 되었고, 졸업할 때 페이퍼를 두 자리 수로 들고 졸업하든 세 자리 수로 들고 졸업하든, '학자'로서는 제대로 훈련 못 받은 박사 학위자들이 양산되는 케이스가 급증했다. 차라리 석사만 하고 졸업할 요량이었다면, 이러한 페이퍼 공장 노동자 경험이 도움이야 되었겠지만, 박사 학생들은 정말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 것인데, 졸업하고 나서 흘러 간 시간과 잃어버린 기회비용은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교수들 입장에서는 박사 한 명의 배출이 정말 어렵고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지만, 그리고 자신의 네트워크가 확장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배출된 박사의 생각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문제는, 이렇게 양산된 박사들은 랩이라는 좁은 우물 속에서, 페이퍼 개수만 채우면 되는 줄 알고 살다가, 막상 학위 받고 필드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혼자서 살아 남기 힘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인데, 대부분 연구한 데이터를 가지고 오리지널 페이퍼를 A-Z까지 혼자 쓰고 마무리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벌어지게 되는 사단이다. 그러니, 몇 달 전에 포스팅한 어떤 박사과정 학생의 하소연 같은 촌극이 벌어지게 되는 것인데, 그 학생의 경우, 자신이 열심히 실험하여 데이터를 가져다주면, '당연히' 교수가 페이퍼를 써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 는 억울함을 공개 게시판에서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케이스 역시, 지도교수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들어 보니, '좋은 학교 가보겠다고 하는 고등학생을 1 저자 만들어 주기 위해 자신이 페이퍼의 대부분을 작성했음'에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는 직업윤리 위반이기도 한 부분이다. 그러나, 박사 학생의 경우, 교수들이 페이퍼를 대신 써 주고, 본인은 실험만 열심히 하여 페이퍼를 잔뜩 들고 졸업하면, 졸업은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 현업에서 전문가로 살아남기는 매우 매우 어려워진다. 계속 지도교수의 그늘에서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버텨 보려 한다면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그런 연구자는 결국 반쪽자리 박사, 심하게는 물박사가 되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기는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의 연구 과제 혹은 인사 평가의 구조가 조금씩 양적 기준에서 질적 기준으로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중심에는 좋은 페이퍼를 몇 편 썼는지가 가장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연히 여유가 되고 여건이 된다면 좋은 연구를 좋은 저널에 많이 출판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연구를 위한 페이퍼가 아니라, 페이퍼를 위한 페이퍼, 인센티브를 위한 페이퍼, 이른바 '화폐'처럼 쓰이게 되는 페이퍼가 되면, 결국 학계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0으로 수렴하게 된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맥락 때문에서라도, 연구자 한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페이퍼 개수에 제한을 둬야 한다. 그래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고, 함부로 이 페이퍼 저 페이퍼에 프리 라이딩하려고 기웃거리는 일이 없어진다. 또한 교수들도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배출할 수 있는 박사 제자의 숫자에 제한을 둘 각오를 해야 한다. 언젠가 내가 미분방정식 풀면서 시뮬레이션한 결과로 페북에 포스팅하며 증명한 바 있지만, 교수가 평균 30년 재직하면서, 박사 한 명 배출에 평균 5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학계가 그나마 equilibrium을 유지하는 조건이 교수 한 명당 max 2명의 박사를 학계로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기업이나 기타 다른 분야로 보내는 숫자에도 이러한 제한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학계를 떠받쳐 온 인구 피라미드 구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 세대를 중심으로 peak 이뤘던 인구는 점점 내리막이고, 인구 구조는 점점 역 피라미드 구조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막 조교수쯤 되는 세대가 테뉴어 받을 시점에서는 학부 신입생이 전국적으로 30만이 안 될 것이다. 당연히 대학원 진학생은 훨씬 더 적어질 것이며, 지금 같은 공장 구조의 대학원, 페이퍼 찍어내기 식의 연구, 과제 방어용 연구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PI급 연구자들, 특히 교수들이 제자 양성이라는 명목과 과제 방어, 그리고 학교에 오버헤드 점수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다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대학원생을 랩에 들여 설익은 상태로 졸업시키고, 필드로 내보내는 흐름이 지속되면, 학계는 피라미드 사업의 종단에 있는 회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다가 망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차례차례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흐름에 저항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이제 학계는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 학계의 지속 가능성과, 학문 후속세대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연구다운 연구를 할 준비가 되었는지, 페이퍼 개수 기준을 버리고, 일정한 기준이 만족되었다면, 정성 평가를 상호 신뢰할 준비가 되었는지, 페이퍼 한 편에 5년을 바친 학자를 학계의 동료로 받아 줄 준비가 되었는지, 살라미 페이퍼 찍어 내는 학자를 퇴출시킬 준비가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학계가 이러한 고민을 먼저 스스로 시작해야 펀드 주체에게 면이 서고 할 말이 생긴다. 특히, 정부 세금으로 연구하는 PI급 연구자들은 세금으로 하는 연구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맘 편하게 있으면 불운해질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가만있으면, 그저 공멸로 가는 길이 가속화될 뿐이다. 학계가 다 같이 정신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