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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과학기술 연구를 어디까지 주도해야 하는가

구소련의 몰락이 주는 교훈

by 권석준 Seok Joon Kwon

구소련이 서방세계 맞서고 있던 시절, 서방권에서 자주 회자되던 반 농담스러운 이야기는, '소련은 로켓과 핵잠수함을 잘 만들지는 몰라도, 냉장고와 자동차는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구소련 같은, 철저한 계획경제 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당의 top-down 방식에 의거하여 사업이 추진되었기 때문에, 소련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인력과 자원은 주로 기술력 과시 및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덕분에, 구소련의 최전성기 시절에는 나라 전체적으로 4천여 개에 달하는 각급 연구소 혹은 조직이 있었고, 노벨 과학상도 그 냉전 시대에도 5회나, 그리고 구소련 붕괴 후에도 구소련 시절의 유산으로 2회나 수상할 정도로 기초 과학의 저변이 탄탄했다. 당과 국가는 최고 과학기술인에 대한 대우를 인민영웅급으로 격상해 주었으며, 특히 물리학, 화학, 수학 등의 수준은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 혹은 일부 분야는 압도할 정도의 수준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소련 붕괴 이후 탈출한 3만 명이 넘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이 90년대 이후의 서방 기초 학문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나도 미국에서 유학할 때, 구소련 붕괴 시점 전후로 도미한 러시아 출신 과학자 몇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만, 국가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과 연구 자원이 우주, 군사, 기초과학의 일부 분야에만 집중되고, 그나마도 그런 첨단 연구들로부터 파생된 고급 지식이 산업 기술로 연계되는 것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구소련 민중들은 삶은 국가 단위의 R&D의 혜택을 제대로 입지는 못 했다. 우주 개발에 쓰이는 첨단 신소재, 제어기술, 계산과학, 로켓 엔진 설계기술, 항법 기술 등은 산업용 합금재료, 자동화 기술, 컴퓨터, 자동차 엔진, GPS 같은 하위 레벨의 산업 기술로 적절하게 응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단적인 예로, 소련이 자랑하던 고급 세단인 M13 차이카 같은 자동차는 겨우 천 대 정도만 생산되었는데, 그나마도, 당의 고위 간부급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정도였을 뿐이었다. 만약, 구소련이 이러한 산업적 응용에도 눈을 떠, 자국의 R&D 성과를 단지 군사력과 기술력 과시에만 쓸 것이 아니라, 소련 및 바르샤바 조약기구 산하 국가들 + 중국을 블록으로 묶어, 그 나라들 사이에서 기술 표준을 확립하고 기술 정보 공유와 보급에 힘쓰고, 하위 레벨 산업 분야에서의 응용을 장려했더라면, 냉전의 종식은 훨씬 늦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소련이 산업 기술 개발에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 계획경제 시스템 때문이다. 자국의 경계 안에서, 서방 세계와의 기술 및 정보 교류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산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정보, 기술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 그 드넓은 국토와 자원, 그리고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가지고도 미국을 위시로 한 서방세계의 산업 기술 개발 속도를 못 쫓아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수천 기에 달했을 정도의 핵무기 시스템 유지, 핵잠수함과 대륙간 탄도탄 기술, 우주 개발 기술 같은 분야는 그야말로 돈 잡아먹는 분야이기 때문에, 아무리 구소련의 자원과 인력이 풍부했다 하더라도, 다른 분야에까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국가가 미리 산업의 중요성을 재단하여 '필요한 만큼만'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경제란 살아 움직이는 복잡한 생물 같아서, 어느 규모 이상 커지면 더 이상 국가가 A-Z까지 관여하여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의 정부와 공산당은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밀어붙였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최우선 순위가 아닌 산업 (주로 경공업)은 지속적으로 도외시될 수밖에 없어, 결국 경쟁력은 0을 넘어, 마이너스로 땅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로켓을 쏘아 올리고, 금성과 화성에 무인 우주선이지만, 어쨌든 착륙까지 시킬 수 있었던 첨단 기술을 가진 나라가, 도대체 왜 포니보다도 못한 일반 서민 용 자동차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치 미적분학 배운 사람이 덧셈 뺄셈 못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소련 그리고 소련이 지배하는 경제 블록권 내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 경제 블록권 내에서의 산업 체인 + 분업화 시스템이 자리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제조업 전반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았고, 한 때 적국이었던 서독과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가 포함된 블록 + 아시아 신흥국들을 밸류체인에 적극 끌어들여, 이들 국가와 경제적으로 굳건하게 형성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경제적 블록화는 2차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는 정치적 동맹 혹은 협조 관계를 굳건히 하는 밑바탕이 되었는데, 다시 이는 시장주의 +자유무역주의를 받아들이는 국가들의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를 강화하는 positive feedback loop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분업 체제의 놀라운 효율성과 경제성은 두말할 필요 없이 밸류체인 하에 있는 나라들의 경제 성장의 밑바탕이 되었고, 각자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기술적 산업적 생태계가 한 나라뿐만 아니라, 블록권 내의 나라들 사이에 형성되어, 기술 표준을 공유하고, 과학기술정보가 공유되며, 시스템이 정교화되어, 비용적 측면에서나 효율성 측면에서나 구소련 중심의 블록권 나라들을 압도할 수 있게 되었다.


구소련은 이러한 서방 세계의 경제적 성장을 지켜보면서도, 계획경제의 철학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데, 애초 소련의 국가 철학이 반 자본주의, 반 시장경제이고, 노동자+농민 중심의 가치 분배가 밑바탕에 깔려, 그것을 주도해야 하는 주체는 국가 (당)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소련 성립 초반에는 국가 주도의 시스템이 2차 대전, 그리고 전후 소련 주도의 경제 블록권의 규모 자체를 키우는 과정에는 큰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소련의 영향권 하에 있던 북한도 7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 규모 면에서 한국을 앞서기도 했었고, 한국 역시 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제개발계획 같은 계획경제 성격이 강한 정책을 추진함 (그리고 그 과정에 국가의 자원을 집중 투입함)으로써 공업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도 했으니, 계획경제 시스템은 국가의 산업화 초기에는 분명히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업의 phase가 바뀌는 시점부터는 더 이상 이러한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시스템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7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경제 규모는 미국에 압도적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더불어, 남한의 경제 규모도 북한의 그것을 능가하기 시작했으며, 소련은 자존심을 접고, 상대적으로 자국의 경쟁력이 훨씬 떨어지는 식품, 의류, 의약품 같은 분야의 소비재를 서방 세계로부터 수입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구소련이 이들 분야의 중요성을 느껴 경제 노선을 수정하려 했던 80년대는 이미 그 시기를 놓친 지 한참 되었을 때고, 그 시점은 더 이상 소련 주도의 경제 블록권이 미국 주도의 시장경제 블록권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지나가는 아이도 알 정도의 시점이었다. 마치 미적분학만 하다가 간단한 덧셈 뺄셈 하는 법을 까먹은 학생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국가가 까라면 까는 노동자들이었는데, 그 노동자들은 현재보다 어떻게 자동차를 더 잘 만들 수 있는지, 방법도, 아이디어도, 동기도, 돈도, 그리고 정보도 없었으니, 60년대 수준의 자동차 기술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간 셈이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구소련의 실패 사례를 다시금 상기하는 까닭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정책, 나아가 경제 정책에는 한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초부터 시작된 한-일 관계의 경색 국면 속에, 정부 각 부처는 이 국면에 대한 대처와 더불어, 중장기적인 타개책, 특히 일본이 무기로 삼고 있는 각종 부품, 소재, 기계, 지적재산권 등에 대한 대처 방안을 부지런히 수립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특히,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는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일본이 무기로 삼고 있는 세부 기술의 '국산화'를 기치로 내걸고, 각 분야 과학기술인들, 그리고 기업들에게 국산화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연구개발에 임해 달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국책연 박사들에게는 국산화 가능성에 대한 분석, 국산화 로드맵, 국산화 전략, 국산화 품목 분류 등에 대한 작업이 상명 하달되었는데, 이는 마치 bottom-up을 가장하지만, 결국 국가 주도의 top-down 산업화 전략의 일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제한 정책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이 대일본 기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국가 주도의 기계 국산화, 소재 국산화, 부품 국산화 정책에 이끌려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산업적 동기가 충분하다면 각 기업은 그것을 자사의 기술로 확보하든, 수입처를 다변화하든, 외국 기업을 M&A하든, 어쩌든, 알아서 전략을 수립할 것이고, 기업이 별로 신경 쓸 여력이 없거나, 동기가 부족하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은 정부 연구소에서 중장기 과제로 공청회도 열고 RFP도 수립하고, PM도 임명하는 등 체계적으로 로드맵 짜서 개발하면 될 일이다. 거창하게 기술 독립을 외치며 국가 주도로 한 달 만에 '국산화 전략'이랍시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공무원과 국책연 볶아쳐 내어 놓고, 한국의 산학연 관련 기관들이 이 전략에 따라주십사 외치는 것은 70년대 구소련의 실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할 일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국가 주도의 A-Z까지의 세부 기술 '국산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한 그럴 수도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제조업이든 지식산업이든, 미국 주도의 밸류체인에 깊숙하게 노드 한 개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굳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면, 그것은 산업기술의 국산화가 아닌, 산업기술 생태계의 robustness를 강화하기 위한 네트워크 강화일 것이다. 그를 위해, 할 일은 정부도 잘 알 것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정부가 진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소련이 과거에 그러했듯, 고사해 가는 기초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일 것이다. 한 번 고사하고 나면, 망해버린 구소련 경제가 살아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리 물 주고 비료 줘도 기초과학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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