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른 결과가 연결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큰 애가 어렸을 때 다녔던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가끔씩 아이들이 블록으로 만든 작품을 교실 밖 복도에 전시해 놓곤 했다. 블록 유닛의 모양은 일정하므로, 7세 아동들의 작품이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놀랍도록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큰 애는 몰펀 블록으로 다양한 형상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데, 오늘 방과 후에 그 녀석이 보여 준 것은 내가 생각지도 못 했던 양궁용 활이었다. 큰 애와 친하게 지내는 녀석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나오는 눈 결정을 hexagonal symmetry를 정확히 지키면서도 fractal-like geometry의 특징이 잘 살도록 만든 작품을 선 보였다.
아이들의 블록 작품 활동을 찬찬히 보면서 임팩트 있는 연구 논문 쓰는 것, 과학을 과학답게 연구하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연구자들에게는 그 사람이 노벨상 받은 대가급이든 이제 막 랩 생활을 시작한 석사 과정생이든 상관없이 자연의 법칙은 동등하다. 석사 과정 학생이 특정한 유기물을 합성할 때 공유 결합을 깨는 과정이 반드시 한 번 이상 필요하다면, 대가 역시 공유 결합을 깨지 않고서는 똑같은 유기물을 합성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는 마치 모든 아이들이 같은 규격 같은 연결 특성을 갖는 블록 유닛을 지급받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예시 설명서대로 아이들이 이 모양 저 모양을 따라 만든다. 이는 마치 교과서나 고전급 페이퍼, 혹은 매우 핫한 페이퍼에 나온 결과를 그대로 따라 해 보는 것과 유사하다.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어떤 아동은 따라 해 봤던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아예 그보다도 못한 더 단순한 작품만 만드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아동은 예시 작품을 응용하여 전혀 다른 형상을 만들거나, 심지어는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았던 블록 유닛을 연결하여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떤 연구자들은 한 가지 방법만 고수하여 한 가지 분야에만 골몰하여 창의적인 시도는 접은 채, 일기 쓰듯 데이터를 생산하고 그것을 페이퍼로 보고서 쓰듯 출판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연구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연결하고 비틀고 응용하여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이용하여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어서, 임팩트 있는 페이퍼를 쓴다.
어떤 아동이 계속 블록 네 개를 정사각형으로 연결한 작품을 일과 시간 내내 만들어서 백 개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아마 일부는 그 근면 성실함을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결국 금방 그 작품에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아동은 '색깔이 똑같아서 그런가?' 하면서 알록달록하게 정사각형 블록을 만들어서 전시해 보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원찮다. 반대로 어떤 아동이 블록 네 개를 직사각형으로 여러 개 만들고, 일과 시간 동안 그것을 이용하여 멋진 수도교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일단 친구들은 정사각형 모양을 수십 개 나열한 것보다는 당연히 더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모양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관심을 보일뿐더러, 어떤 친구에게는 '이런 연결 방법을 이용하면 이번에는 초고층 빌딩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조립이 가능하겠다' 같은 영감을 줄 수도 있다. 더 재밌는 것은 이것이다. 한 친구가 다가와서 네 작품과 내 작품이 이 부분에서 연결될 것 같은데, 한 번 연결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할 수 있는 부분인데, 진짜 연결해 보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주변 친구들은 이러한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서로 자극을 받고 어른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더 응용해 보려 시도한다. 그리고 '이렇게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A와 B가 보여 줬어요~'라고 크레디트도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블록 유닛이 풍부하게 많이 있다면, 어떤 친구는 모든 블록을 다 모아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일단 덩치가 큰 형상이 나오기 때문에, 친구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다만, 일부 친구들은 가지고 놀 블록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터뜨릴 수는 있다.
연구 논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묵묵히 현장에서 계속 같은 분야를 깊게 파 내려가면서 데이터를 꾸준하게 누적시켜서 보고하는 류의 과학자도 있다. 그리고 그런 연구도 꼭 필요한 연구임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대부분 그 성과로 나오는 페이퍼는 지극히 좁은 분야의 동료들에게만 도움이 될 뿐, 판도를 뒤바꿀 큰 영향력을 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특히, 아예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정사각형 백 개를 만드는 것 같은 연구보다는, 하루에 한 개만 만들어도 좋으니 차별화될 수 있고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 영감까지 줄 수 있는 작품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임팩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을 조립하는 것에 완전 초보였던 아동은 당연히 처음에는 일정 시간 블록의 조립과 남의 것 참조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남들이 만들어 보는 것을 꼭 재현해서 만들어 볼 필요도 있다. 꼭 거쳐야만 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블록 조립 기술도 발달하고, 블록 조립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단계에서 멈춘 아동의 작품은 결국 그 아동의 부모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과학계 역시 90년대 초중반부터 세계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로 각종 사업을 거쳐, 2010년대 들어와서는, 연구 논문의 숫자만 놓고 보면 나라 GDP 랭킹과 엇비슷한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렇지만, 나라 GDP 랭킹이 선진국 문턱을 넘어가는 마당에, 연구 논문의 임팩트 (주로 인용도로 측정)는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 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공고한 개수 위주의 선형 평가 시스템이 곳곳에서 여전히 중요한 평가 요소로서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정사각형 100개를 만들어서 한 개당 1점씩 카운트해 주는 시스템을 거치면 총 100점을 받을 수 있는데, 5점짜리 수도교 작품 한 개를 만들어 봐야 총 5점밖에 못 얻는다면, 현재까지의 과제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대부분 전자가 더 우수한 연구 성과 점수라고 인정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적 압박과 익숙함 때문에서라도 많은 연구자들이 수도교 같은 작품 만드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굳이 선택하려는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만든 작품과 다른 친구가 만든 작품, 나아가 다른 어린이집에 있는 친구가 만든 작품을 연결하여 더 크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게 되면, 점수를 참여한 친구들의 숫자로 나누는 시스템 때문에, 친구들끼리 혹은 어린이집끼리 굳이 크레디트를 공유할 동기 부여가 거의 되지 않는다. 선형 평가 요소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한, 영감을 줄 수 있고 제대로 된 임팩트를 선사할 수 있는 연구 논문 작업에 매달릴 여유가 있는 과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과제 평가와 인사 평가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주류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블록을 가지고 놀게 해 주고, 서로 자신의 작품을 다른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 주되, 품평하는 것은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하게 하지 말자. 한 아동이 만드는데 10일이나 걸리는 거대 피라미드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다면, 블록이 충분히 있다는 가정 하에, 그 아동이 걱정 없이 피라미드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자. 다른 친구가 자신의 블록 작품을 또 다른 친구의 블록 작품과 연결하겠다고 한다면, 작품의 사진만 찍어 두고, 새로운 시도를 해 보도록 격려하자. 정사각형 만드는 것 밖에 못 하는 친구가 있다면, 방향을 틀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 보되, 정사각형을 친구들에게 공급해서 더 큰 정육면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너무 다그치지는 말자. 친구들의 작품을 놀리는 아이가 있다면 잘 타이르고, 정말 괜찮은 작품의 아이디어가 있는데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라면, 여러 아이들이 같이 협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친구가 만들어 본 작품을 따라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도 격려하자. 새로운 방법과 응용을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른 어린이집 아동들에게 꽤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으면 여러 수단을 통해 널리 알리자.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블록 작품을 만들거나, 실수로 블록을 분실하거나 망가뜨려도 너무 나무라지 말자. 아이들은 애초에 과학자로 태어났고 예술가로 태어났다. 그들의 선한 동기와 호기심, 그리고 협력하는 마음과 뽐내고 싶은 마음의 싹을 어른의 눈으로 매도하거나 재단하려 들지 말자. 어른의 틀 안에 아이를 가둬 두면, 아이는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