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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방법론의 기저에 깔린 것

연구 방법론은 도구이자 한계가 된다.

by 권석준 Seok Joon Kwon

이번 학기에 가르치고 있는 대학원 이동현상은 그야말로 '편미방을 최대한 손으로 잘 풀어 보는 방법'에 가깝다. 정말 온갖 method와 approximation의 향연이 펼쳐진다. 오늘 강의 녹화하면서도 좀 이야기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냥 손으로 고생하며 approximated solution 구하는 과정까지 가느니, 그냥 코딩해버리는 것이 빠를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어차피 공대 이동현상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문제라 봐야 heat equation이거나 그것의 변형, 혹은 BVP 꼬아 놓은 문제들 아님? 그럴 거면 그냥 적절한 FEM이나 FDM, 필요하다면 adaptive mesh 써서 수치해석하는 것이 빠르잖음?'이라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했다.


'간혹 이렇게까지 손으로 열심히 풀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수치해석 방법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고, 솔루션도 멋지게 시각화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이런 문제를 이렇게 손으로 풀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공학자, 그것도 대학원 레벨 이상의 공학자들의 자격 중 하나가 바로 정성적인 판단을 위한 상한 혹은 하한 설정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문제 같은 경우 대략 몇 시간 정도 지나야 초기 온도의 X%가 변동할지를 예상하는 문제인데, 수치해석으로 풀면 정확한 숫자를 얻을 수 있겠지만, perturbation method를 활용하여 풀면 대략적으로, 그러나 꽤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정말 정확한 답이 필요하다면 수치해석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죠. 간단한 문제인 경우라면 이러한 방법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면 초기에 이렇게 approximate solution을 추산해보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대략 이 문제의 aymptote도 구할 수 있을뿐더러, 제대로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을 미리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 절약에도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펀더멘털 레벨에서는 수학적 센스를 공학적 문제 해결 능력에 가미하는 훈련을 하게 되므로, 다소 지겹더라도 본 강의에서 배운 방법론을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강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학생들은 특정한 이동현상 문제를 본인의 연구 테마 등에서 풀어보려 할 때, 대부분 아주 간단한 모델로 축소하거나, 다소 여유가 있는 학생이라면 comsol, ansys 등의 패키지를 사용하여 FEM 등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한다. 그런데 사실 펀더멘털 레벨에서 이러한 문제들의 수학적 특성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채 바로 패키지 사용으로 들어가면 계산된 값이 제대로 된 값인지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기 쉽다. 많은 학생들이 패키지에서 계산된 값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것을 논문이나 학위 논문에 썼다가 심사위원의 지적을 받고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른 방법으로 검증을 해보거나 수학적 증명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케이스겠으나, 하다 못해, 그 값이 특정한 한계 상황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미리 계산해 두었다면 그런 낭패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대개 패키지에만 의존하는 경우, 이런 교차검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예전 박사과정 시절, 콜로이드 동역학 문제를 푸는데 하나는 전통적인 랑제방 방정식으로, 하나는 coarse-grainde 방식으로 풀어서 두 값이 특정 조건에서 일치하는 것을 보인 바 있다. 그 결과를 들고 심사위원 교수님 한 분과 디스커션을 했는데, 그 교수님은 이 조건에서는 일치하지만, 본인 생각에는 다른 특정 조건에서는 두 방법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셨다. 실제로 연구실에 돌아와 그 조건으로 다시 계산한 결과를 비교해 보니, 과연 크게 차이나는 값을 얻었다. 그 말인즉슨, 두 방법 중 적어도 한 방법은 완벽한 논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고, 따라서 flaw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조건에서 활용하면 안 되는지를 명시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사례로부터 내가 배웠던 것은 어떤 방법론이든 내부에는 항상 flaw가 있을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케이스에 대해 다른 방법과 1:1로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므로, 방법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패키지가 근거를 두고 있는 방법론에 대한 숙지 없이 패키지가 계산하는 결과만 믿는다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예전에 FEM 배울 때도 특정한 경계면에서 adaptive mesh를 사용할 때와 아닐 때의 값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같은 adaptive mesh라도 adaptive profile를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복잡한 BVP의 솔루션이 달라지는 것도 확인했다. 이렇게 경계면에 민감한 ODE나 PDE들은 대개, 고차 미분항에 비선형 term이 붙어 있거나, 선형 term이더라도 그 term에 속한 parameter가 position dependent 하거나, 혹은 그 parameter 자체가 unstable 한 경우다. 이런 경우에 singular perturbation method를 이용하여 solution이 특정 asymptote에서 수렴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adaptive mesh를 활용하든 말든 해야 정상적인 풀이가 가능하다.


이동현상을 어렵게 가르치려면 한없이 어렵게 가르칠 수 있는데, 이론적인 detail에만 파묻힐 것이 아니라, 이러한 원리들을 조금 더 잘 전달하고 싶다. 수강생이 적어서 얼마나 영향력이 퍼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 우리 과 대학원 레벨에서 화공 전공으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이러한 철학과 원리를 숙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대학원 모든 과정이 이렇게 바뀔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학교나 학과가 세계 랭킹에 신경 쓴다면, 한 축은 이러한 대학원 레벨의 교육 과정 심화로 밸런스가 맞춰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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