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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누리호 발사를 기념하며

by 권석준 Seok Joon Kwon

연구에 몸 담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 같은 국가 주도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다. (과제의 일부 브랜치에 약간 발 걸치며 들어간 적 밖에 없음.) 그래서 1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에 혼을 갈아 넣어 뭔가를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끝내 의미 있는 마일스톤을 만든 연구진의 노력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리고 그에 더해 이루 그 가치를 숫자로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 소중하다는 것도 믿는다. 그런 의미로 비록 최종 목표 달성을 100% 완수하지는 못 했더라도, 누리호의 설계와 개발, 시험 그리고 최종 발사까지 프로젝트 전 과정에 참여했던 800여 명의 연구개발 인력들에게 축하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어떤 연구와 개발이든 쉬운 것은 없다. 내 방의 학생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뭔가 연구가 쉬워 보이고 잘 되는 것 같다면, 그 연구가 정말 의미 있는 연구인지 한 번씩 뒤돌아 살펴봐야 한다. 이미 풀린 문제이든지, 풀어 봐야 큰 의미가 없는 문제이든지, 처음부터 문제 설정이 잘 못된 것이었는지 따져 봐야 한다. 만약 그런 류의 연구였다면 사실상 시간 낭비에 가까운 것일 뿐이다. 연구와 개발은 애초에 풀리지 않는 (않아 왔던) 문제이거나,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던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는 것이거나, 그간 풀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새롭게 다른 각도에서 그렇지 않다고 증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위성을 실어 대기권 바깥의 궤도에 안착시키기 위한 발사체 (로켓) 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6개국이 자국의 기술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이미 풀린 문제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로켓 기술은 이전이 거의 되지 않는 폐쇄적인 기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풀리지 않아 왔던 문제였다. 특히 다양한 위성을 탑재하여 원하는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기술은 한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위성 제작 기술과는 별개로, 그것을 탑재하여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는 계속 외국의 로켓과 외국의 발사장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당연히 한 번에 확보되는 경우가 드물며 수십-수백 번의 실패와 심지어 소중한 인명의 희생을 동반하면서까지 겨우겨우 확보될까 말까 한 기술이다. 누리호에 앞서 두 번의 실패를 겪었던 나로호 역시 이러한 기술 개발의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질곡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로호에서 실패를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그간 풀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의외로 발목을 잡아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입장에서는 누리호 발사, 그리고 절반의 성공은 그래서 그간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풀게 된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문제를 발굴한 시점이 되었으며, 풀었다고 생각했던 문제를 재조명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나머지 절반의 목표를 완수하고, 이후의 스텝을 밟아가며 계속 마일스톤을 놓는 것은 그래서 앞으로도 장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가야 하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고 불행하고 불운한 사고가 생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프로젝트는 이어가야 하는 것이고, 더 많은 참을성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문제가 하나씩 풀리고 또 새로운 문제가 발견됨으로써 한국의 로켓, 그리고 나아가 우주탐사 기술은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10년 넘는 실패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창원에서 대덕에서 외나로도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놓지 않은 800여 명의 연구자들께 다시 한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부디 이들의 노고가 제대로 크레디트를 받기를 바란다.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란다. 이들의 경험치가 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이 은퇴 후에도 그 프로젝트에 소속되었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30년 후쯤, 이들 중 한 명이 한국의 유인 화성탐사선 착륙 성공 기념식에 나와서 화성탐사선의 주춧돌에는 외나로도에서의 수많은 경험치가 녹아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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