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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터널링과 로또

by 지나온 시간들


방 안에서 탁구공을 가지고 방문을 향해 던지면 탁구공은 방문에 맞고 반사되어 내가 던진 쪽으로 되튕겨 나온다. 이번엔 탁구공이 아니라 내가 밖에 있는 사람에게 들리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하면 방 밖에 있는 사람은 내가 하는 말소리를 알아듣는다. 내 소리가 문밖으로 통과해 나갔기 때문이다. 어떤 차이가 있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바로 물질과 파동의 차이이다. 물질은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물을 만나면 반사되어 튕겨 나오고 통과하지는 못한다. 반면에 소리는 파동성을 가지고 있어 장애물 밖으로 통과되어 나갈 수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물질과 파동의 차이를 확연히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로 가면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난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질도 파동처럼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면 그 장애물을 통과할 수가 있다. 즉 반사되는 것도 있지만, 통과되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자이다. 전자는 어떤 장애물을 만나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통과한다. 전자는 분명히 질량을 가지고 있는 입자이지만 미시세계에서는 물질성뿐만 아니라 파동성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일이 가능해진다. 이런 현상을 흔히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 현상이라고 한다.


퀴리 부인이 발견하여 노벨상은 받은 폴로늄은 원자번호 84로 상당히 무거운 원소이다. 원자번호가 84번이므로 당연히 양성자는 84개가 있고 여기에 중성자가 128개가 합쳐지면 폴로늄 212로 존재하게 된다. 흔히 알파 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으로서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폴로늄 212안에 있는 알파 입자는 평상시에는 폴로늄의 핵 결합에너지라는 장벽으로 인해 폴로늄의 핵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이 결합에너지는 약 26 MeV 정도 된다.


폴로늄 핵 안에 있는 알파 입자의 운동에너지는 약 9 MeV 정도라서 폴로늄의 핵 결합에너지의 약 1/3 수준이다. 따라서 이 결합에너지는 알파 입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커다란 장벽이 되기 때문에 폴로늄 핵 안의 알파 입자가 이 장벽 밖으로 나오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끔씩 자신의 에너지보다 3배가 큰 에너지 장벽을 통과해 나올 수가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알파 입자가 전자보다 질량이 훨씬 크기는 하지만 원자라는 미시세계에서는 알파 입자 역시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핵 결합에너지를 통과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이 양자 터널링 현상은 전자 공학에 있어서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러한 양자 터널링 원리를 이용하면 전자가 반도체나 초전도체 존재하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제어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2개의 전도성 물질 사이에 부도체를 샌드위치처럼 끼워 넣으면 작은 양의 전자가 이 부도체라는 장벽을 통과해 다른 쪽 전도체로 이동할 수가 있는데 현재의 반도체 응용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제어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 터널링 현상을 이용하면 물질의 표면을 원자 수준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현미경을 주사형 터널 현미경, 즉 STM(Scanning tunnelling microscope)이라고 하는데, 1981년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IBM 연구소의 비닉(Gerd Binning)과 로러(Heinrich Rohrer)가 이를 처음 개발하였다. 그들은 이 논문을 써서 미국 물리학회의 가장 대표적인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PRL, Physical Review Letters)에 제출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이 똑같은 논문을 Applied Physics Letter에 제출하여 게재되었는데 이들은 이 연구업적으로 5년 후인 198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이 현미경의 수준은 원자 지름의 1% 이내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정확했다.


이러한 양자 터널링 현상은 우주에 존재하는 별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별 내부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수소가 존재한다. 이 수소의 핵은 양성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알다시피 양성자 간에는 전자기적 반발력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수소 간에는 이러한 전자기적 반발력에 의해 결합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주위의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수소의 원자핵의 운동에너지는 엄청나게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높아진 에너지는 전자기적 반발력을 능가하게 된다. 그러면서 수소의 양성자끼리 이러한 운동에너지로 인해 서로 충돌을 할 수 있게 된다. 온도가 낮은 환경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렇게 핵과 핵이 충돌을 하게 되면서 강한 핵력이 전자기적 반발력을 누르고 양성자와 양성자는 결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핵융합“이라 한다. 이때 충돌하기 전의 두 원자핵을 합친 질량보다 새로 결합한 원자핵의 질량이 더 작게 되는데 이 질량 차이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등가 원리에 의해 비록 사소한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핵융합 에너지“라 한다.


별은 내부의 온도가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보는 물질의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상태로 존재한다. 보통 물질의 상태는 고체, 액체, 기체로 세 가지 상태가 일반적이지만, 별 내부에서는 물질은 이러한 세 가지 상태가 아닌 다른 상태, 즉 네 번째 상태인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한다. 이는 쉽게 말해 온도가 너무 높아 이온화된 기체 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별은 소위 이러한 플라즈마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플라즈마 상태가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비록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터널링 현상이 나타나며 다른 에너지 장벽을 뛰어넘어 핵융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실 양자 터널링 현상은 확률이 극히 작은 미시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양자 터널링 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실제로 자연현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의 일상생활에도 그러한 일들이 나타난다. 아주 치료하기에도 불가능한 병이 낫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치료가 거의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낫는 경우도 있다. 유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에 걸렸을 때 담당 의사는 호킹에게 2~3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호킹은 그 이후로 40년 이상을 살면서 어마어마한 물리학적 업적을 남겼다.


내 친구는 주말마다 로또 한 장씩을 산다. 나는 로또가 얼마인지도 모르지만, 그 친구하고 토요일에 만나 저녁을 먹을 때면 꼭 로또 파는 집 앞에 들려서 그 친구가 로또를 사고 나서 밥을 먹으러 간다. 로또가 될 확률이 그 친구가 그러는데 800만 분의 1 정도 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할 때는 그것보다 더 낮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로또를 살 때마다 꼭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언젠가는 얻어걸릴 거야.” 나는 로또를 사 본 적이 없다. 그 확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물리학자가 아닌 내 친구는 양자 터널링 같은 확률이 아주 낮은 것을 믿는 것 같고, 물리학자인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그 친구가 산 로또가 언젠가는 1등에 당첨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그 친구가 나한테 크게 한턱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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