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집

by 지나온 시간들

https://youtu.be/8XpeZTQK0jY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현규와 함께 우리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운보의 집을 다녀왔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지만, 현규가 청주에 왔길래 바람도 쐴 겸 운보의 집을 찾았다. 김기창 화백이 살아 있을 때도 부모님과 함께 가서 직접 얼굴도 뵙고 했던 기억이 났다.


김기창 화백은 아주 어릴 때 장티푸스를 앓아 들리지도 않고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 어릴 때 그의 세계는 얼마나 암울했을까? 하지만 그는 그 어둠의 세계를 극복해 낸다.


운보의 집에는 그가 쓴 어릴 적 시절의 이야기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마음 괴로운 순간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는 한 줄기 빛이 어디에선가 비껴 들어오고 있었다. (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선택받은 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 살이란 어린 내가 열병을 앓아 귀를 앓아 먹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이란 것을 절감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운보는 그 후 어머니의 소개로 김은호 화백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1년 운보는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판상 도무(板上跳舞)”라는 작품으로 입선을 한다. 조선 미술 전람회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어려운 최고의 미술 대회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귀도 먹고 말도 못 하는 17살 소년이 입선했다고 대서특필했다. 이어 운보는 같은 대회에서 1940년까지 6회 입선, 3회 특선을 한다. 그 이후 그는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 화가로 발돋움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 지폐의 세종대왕 초상화도 운보가 그린 것이다.


운보는 결혼 후 그의 아내로부터 구화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약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아내가 1976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삶의 허탈함을 견디지 못하고 청주에 있는 운보의 집에서 오직 그림만 그렸다.

이 무렵 운보는 삼중 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삼중 스님은 30년 동안 전국의 사형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해온 분이었다. 그가 청송교도소를 방문했을 때 교도소장은 재소자들의 정서를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림을 기증받고 싶다는 뜻을 삼중 스님에게 전달한다. 특히 교도소장은 바보 산수로 유명한 운보의 그림이 재소자들을 위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에 삼중 스님은 운보의 아들에게 전화를 해 운보의 그림을 기증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며칠 후 삼중 스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운보가 직접 그림을 가지고 청송교도소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화가의 그림을 기부받는 자리에 모든 청송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모여 행사를 하였다. 이에 운보는 삼중 스님에게 자신도 한마디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순서에 없었던 일이었지만 삼중 스님은 운보의 손을 잡고 단상에 올라가 운보를 마이크 앞에 세워준다. 이에 운보가 재소자들에게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말은 “벼씨 새끼트라(병신 새끼들아)”였다.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말을 하고 싶다고 하여 단상에 올랐는데 첫마디가 욕이었다. 당시 청송교도소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새로 설립된 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운보는 그러한 것에 전혀 연연해하지 않고 재소자들에게 연설이 아닌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운보가 그날 재소자들에게 한 말의 핵심은 “자신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는 진짜 병신 머저리인데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너희들은 왜 지옥 같은 이곳에서 인생을 썩히고 있느냐, 자신 같은 병신도 노력해서 화가로 성공했는데 들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는 너희들은 뭐냐?”라는 내용의 말이었다.


놀라운 것은 전국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이 모인 그곳에서 운보의 말을 듣고 있는 재소자들이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재소자들은 아마 폭동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운보는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감방에 직접 찾아가 거기 있는 재소자의 볼을 비비며 마구 우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지 말고 얼른 밖으로 나와 떳떳하게 살라며 서로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삼중 스님마저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진정한 병신과 머저리는 누구일까? 사지가 멀쩡한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의 문제를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문제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깨닫거나 고치지 못한 채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운보의 병신과 머저리라는 호통이 오늘 나에게도 너무나 선명히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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