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을 다시 오른다면

by 지나온 시간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청주에 있는 우암산 밑이었다. 당시는 행정구역상 수동이었는데 텔레비전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와 “카인과 아벨”을 찍었던 곳이기도 하다. 드라마 찍은 장소는 수동에서도 수암골이라는 곳인데, 이 지역은 사실 예전엔 사람만 지나다닐 수 있는 아주 좁은 골목길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가난한 동네였다. 드라마에서 가난한 장소를 배경으로 찍기 위해 아직까지 개발이 안 된 채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을 찾다가 여기에서 촬영을 한 듯하다.


지금도 40~50년 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드라마 이후 유명해져서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해 청주시에서 벽화도 그려놓고 체험 마을 형태로 가꾸어서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근처엔 카페들도 상당수 들어서 있다. 바로 산 밑이라 청주 시내가 다 보인다. 예전에 가난한 동네는 산 바로 밑이었던 것 같다. 수암골 밑에는 예전에 육군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는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본 기억은 없고, 이 병원으로 인해 6·25 때 피난민과 부상병들이 몰려 살게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집은 수암골에서 오른쪽으로 좀 더 가서 용화사라는 절 너머 성공회 교회 바로 밑이었다. 어릴 때 주말이면 아버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성공회 교회를 지나 우암산 정상까지 등산을 하곤 했다. 아버지도 젊으셨을 때 등산을 좋아하셔서 형과 나 그리고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메리를 데리고 우암산 정상까지 삼부자가 올라가곤 했다.


우암산은 그리 험하지 않고, 높이도 300여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와 함께 올라가는 데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집에서 출발해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한 시간 남짓 걸려 우암산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메리는 발발이였는데 내가 항상 목줄을 해서 데리고 다녔다. 아주 강아지였을 때 데려와 15년 정도 키웠고 우리 집에서 자연사로 죽었다.


당시 아버지 나이는 40 전후 셨기 때문에 나와 형까지 챙기시면서 이것저것 말씀하시며 등산을 즐기셨다. 사실 나로서는 조금은 조금은 벅찰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와 형과 함께하는 그 시간이 좋아 힘들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항상 따라다녔다.


정상까지 올라가고 나면 내려오면서 용화사라는 절을 꼭 들렀다. 용화사에 있는 약수터 때문이었다. 한참 땀을 흘려 등산을 하고 난 후에 마시는 시원한 물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 용화사 밑에 있는 삼일 공원에 가기도 했다. 삼일 공원은 1919년 삼일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33명 중에서 6명이 충북 출신이라 그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6명의 동상을 세워 놓은 아담한 공원이었다. 6명 중에 다른 분은 잘 모르겠고 손병희 선생은 기억이 난다. 삼일 공원을 한 바퀴 빙 돌고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서 해주셔서 먹는 일요일 아침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밥 한 공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산을 좋아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우암산을 많이 올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학 가서도 친구들과 산을 많이 다녔다. 산은 올라갈 때는 힘이 들지만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준다. 새로운 도전의 마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비록 순간일지 모르지만 많은 것을 잊을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 생긴다. 힘이 들어도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교통사고로 인해 오래도록 산을 다니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는 다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홀로 한라산 정상 백록담도 오르고, 다른 친구나 지인들과 덕유산, 오대산, 속리산 등도 얼마 전에 올랐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아직 올라보지 못한 유명한 산들과 백두대간 그리고 북한의 백두산도 한번 가보고 싶다. 더 큰 꿈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킬리만자로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오르고 싶은 산은 우암산이다. 나 홀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처럼 아버지와 함께 우암산 정상을 밟았으면 좋겠다. 그날이 올 수 있기를 지금도 마음속으로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무리 유명한 명산을 오른 것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우암산 정상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다면 그 사진은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간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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