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졌기에 조각이 생겼다. 깨어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렇게 깨어지고 나니 얻는 것도 있었다. 나는 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 그 깨어진 파편들을 다시 모아 처음부터 맞추어 나가야 한다.
깨어짐은 내가 성장하기 위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지했기에, 그리고 너무 무능했기에 그것을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무서웠을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작은 삶의 역사는 그러한 깨어짐으로 인해 다시 부활의 날개를 희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힘들고 무거웠다. 그래서 의지하고 싶었고 회피하기를 원했다.
삶은 잔인했다. 나를 산산이 깨어버리기에. 삶은 무자비했다. 인정사정 없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삶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내 중심적인 삶이 이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닌 것을 확신한다. 나는 나로 인해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의 소원은 나로 말미암지 않아야 함을 안다.
깨어짐의 이유를 나는 아직은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깨어졌다는 그 사실뿐이다. 그러한 깨어진 나의 삶의 파편들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삶은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오직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작정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성장해야 한다. 그러한 삶의 조각난 삶의 파편들을 위해서라도.
깨어진 것을 붙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나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에 그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깨어짐을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부한다고 해서 나의 그러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깨어지고 나서는 물에 빠져 가장 깊은 곳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없었고 그 밑바닥에서 헤어 나올 수도 없었다. 차라리 그곳에서 모든 것이 끝나길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삶의 파편은 나에겐 아직도 버겁다. 이제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냥 내려놓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적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깨닫고 나면 너무나 허탈하고 허무하다.
온전함이란 단어가 이렇게 소중한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온전함을 찾아 다시 그 삶의 파편들을 사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