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수술

by 지나온 시간들

단식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리거나 늦추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을 굳혔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안 먹겠다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리고 방문을 잠가 버렸다. 아침 차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내 방문에 오셔서 밥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점심때도 나는 묵묵부답했고, 저녁때도 방에서 꿈쩍도 안 했다. 먹은 게 없으니 소변볼 일도 없어 하루 일 화장실을 두 번 정도만 다녀왔다.


나는 사실 밥 굶는 거는 일가견이 있다. 한 끼나 두 끼 아니 세끼를 굶어도 별로 배고픈 걸 모른다. 먹는 양도 적지만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밥은 그냥 죽지 않기 위해 먹는 거라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혼자 자취하면서 라면을 먹거나 밥에 물 말아서 계란 후라이 하나로 5분 만에 끝낸 적이 대부분이었다. 결혼해서도 새벽에 눈 뜨면 그냥 씻고 나오기 때문에 아침 안 먹은 날이 더 많았다. 바쁠 땐 점심도 그냥 건너뛰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말해 굶는 건 자신 있었다. 그리고 이 방법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하루만 지나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저녁때가 지나자 아버지가 백기를 드셨다.

“알았어, 병원에 갈게. 내일 바로 갈게.”

방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정말 고마웠다. 내일 이제 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고 집 앞에 있는 비뇨기과에 가서 3차 진료 기관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바로 충북대학교 병원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예약을 못 했지만 오래 기다려도 좋으니 당일로 진료를 잡아달라고 원무과에 부탁을 했다.


한 시간 좀 넘게 기다렸고, 비뇨기과 의사에게 그간의 사정 얘기를 하고 처음으로 진료를 받았다. 일단 그날은 검사를 하는 수밖에 없어서 필요한 모든 검사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부모님을 모시고 비뇨기과에 가서 순서를 기다렸다.


간호사에게 부탁해 일단 나 먼저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나만 혼자 진료실로 들어가 검사 결과를 보고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했다. 한 20여 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이미 80대 중반이시다. 나는 정상적인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편하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기저귀를 채우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정신력이 약해진다. 그 부분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의사는 내 결정에 따라주었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부모님께 내가 부탁한 대로 설명을 잘해 주었다. 그리고는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하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좀 더 멀리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지만 이제 어디 좋을 곳을 갈 수도 없다. 한 시간 이상 되는 거리를 이제는 가시지 못한다. 예전에 좀 더 좋은 구경을 많이 시켜 드릴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났다.


수술 날이 다가와 충북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술받기 전 여러 가지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병원이 너무 복잡하고 검사받는 곳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검사받는 데만 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 수술을 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좀 더 일찍 병원에 왔으면 좋았을 것을. 수술은 네 시간 정도 걸렸다. 어쨌든 그래도 이제 소변만큼은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미련이 많이 남았지만,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더 이상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오신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병원 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버지 좋아하시는 설렁탕을 사서 어머니하고 두 분이 드시게 해 드렸다.


집으로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침에 눈을 떠 핸드폰을 보니 병원에서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병원에 전화해보니 아버지가 병원을 탈출하셨다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나 씻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을 너무 싫어한 아버지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수술 후 꽂혀 있던 호스나 주사도 당신이 다 빼버리고 어머니가 만류를 해도 옷을 갈아입고 새벽에 병원을 탈출하신 것이다.


나는 병원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가며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핸드폰도 집에 놓고 입원을 하셨으니 연락도 안 되었다. 두 시간을 찾아다녀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배에 꽂혀 있던 호스라도 달고 가시지,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시는지 앞이 깜깜했다. 나도 지쳤고 연세 많으신 어머니도 지쳤다. 너무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점심때가 되어서 병실로 슬그머니 돌아오셨다. 의사가 급히 달려와 조치를 취했다. 나는 아버지께 답답하셔셔 밖에 다녀오신 거냐며 그 말만 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병원 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사 왔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든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아버지에게 뭐라 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와 언제까지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냥 왠지 마음이 짠하다. 언젠가는 아버지께서 혼자 식사를 못 하시는 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아버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그 시간만이라도 편하게 지내시면 좋을 것 같다. 자식 눈치 보지 마시고,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드시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마음껏 만나고 하시면서 놀이하듯 남아 있는 시간 실컷 노시면 좋을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의 십자가다. 그 십자가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십자가를 기쁨으로 짊어질 것이다. 그 무게에 견디지 못해 가다가 내 무릎이 꺾이면 다시 일어나 짊어지고 가야 한다. 가다 다시 무릎이 꺾여 못 일어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멈추면 된다. 그게 나의 운명이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데 까지만 가면 된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먹는 저녁이 정말 오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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