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뇌경색

by 지나온 시간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안 좋으셨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묻기도 전에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하셨다. 얼른 안방에 가 보니 아버지가 누워계셨는데 평상시 하고 완전히 달랐다. 일단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시긴 하는데 발음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축 처져 누워계시는 모습이 완전히 중환자 같아 보였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입이 돌아간 채 안면이 마비되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밤에 화장실도 가기 힘드셔서 부축해서 간신히 다녀왔다고 하셨다. 팔다리도 마비가 된 건지 확인해 보니 천만다행으로 그건 아니었다. 일단 뭐라도 드셔야 할 것 같아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밤에 물을 떠다 드렸는데 물을 삼키지 못하고 다 흘리신다는 거였다. 입하고 혀의 근육이 마비된 것이다. 하필이면 일요일이라 병원 갈 생각을 못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응급실로 갔어야 했는데 당시 내 판단의 잘못이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아버지를 모시고 충북대병원 신경외과를 갔다. 예약 환자가 너무 많아 예약이 안 돼서 그냥 현장 접수로 기다릴 테니 최대한 빨리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 의사 선생님께 진료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한참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확인해 보더니 와사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영 확신을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와사하고 뇌경색은 기전이 다르니 치료 방법과 약 처방도 다르다. 처음 판단이 중요하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애매모호한 모습에 와사하고 뇌경색이 어느 정도 같이 올 경우는 없냐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병의 원인은 하나라 그럴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단 와사라는 진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MRI 한 번이라도 찍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실비보험은 있냐고 해서 그런 건 없다고 했더니 비용이 많이 든다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니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예전에 의대 학생들에게 의료 물리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다. 물리학을 응용해 어떻게 의료기구들을 개발을 하고 물리학의 원리가 어떻게 의료 장비에 적용되어 사용되는지를 가르치는 과목이었다. 초음파를 이용해 어떻게 영상이 나타나고, 자기장의 공명을 이용해 어떻게 영상이 만들어지는지, 그 외 수많은 의료기구의 원리 등을 이해하는 과목이었다. 자기장을 이용해 만든 영상 장치가 MRI이고 현재 충북대에서는 이 장치가 가장 정밀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일단 그날은 예약이 차서 안 되고 다음 날로 예약을 잡아주셨다. 그리고 일단 의사 선생님이 와사로 진단을 하고 처방전을 주셔서 약국에 가 약을 받았는데 한 번에 먹는 알약만 16개였다. 의사 선생님께 한약방에 가서 침을 좀 맞아보는 것은 어떨지 상의를 해 보았다. 진료를 한 의사한테 물어보기는 그랬지만 아버지를 위해선 못 할 게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별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육거리에 있는 한방 병원에 가서 침을 맞게 해 드렸다. 어머니께서 한약도 좀 드시게 해 드리자고 해서 뭘 좀 많이 드셔야 할 것 같아 식욕이 많이 생길 수 있는 것을 넣어 한 달치 정도의 한약을 지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오후에 출근해서 학교 일을 처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일어나지를 못하시고 식사를 삼킬 수도 없어 어머니하고 식탁에 둘이 앉아 밥을 먹으려 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막 우시는 거였다. 아버지 편찮으신 이래 어머니는 한 번도 울지 않으셨다. 처음 우는 모습이셨다. 그러면서 형하고 누나를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다. 그것은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오늘 MRI 결과도 보고 더 상황을 지켜봐도 늦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팔다리까지 마비가 오지 않은 것 보면 상태가 호전될 수도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어 전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아버지가 다른 더 큰 질환이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것은 아닐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 억지로 밥을 욱여넣고 부모님을 모시고 충대병원을 갔다. MRI 결과가 나와 의사 선생님이 자세히 보는 것을 옆에서 어깨너머로 보았다. 내가 자꾸 사진을 보니 아예 나를 불러 사진을 자세하게 보게 해 주었다. 몇 번을 확대하고 이리 보고 저리 보던 중 의사 선생님이 “아 여기가 잘못된 듯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뇌혈관의 일부가 터져 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다. 저 정도 크기면 그래도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아버지는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수술은 불가능하니 혈전을 녹이는 약을 먹고 더 이상 확대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평생 약을 먹어 더 진행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를 하자고 했다. 나도 수술은 아버지 연세에 무리라 판단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첫 번째 진단한 와사를 뒤집고 뇌경색으로 바꾸어 처음부터 다시 치료를 해나가자고 했다. 어느 정도 호전될지는 모르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를 것이라 했다. 만약 뇌혈관이 터진 게 상대적으로 컸다면 아버지는 전신마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하늘이 도운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병원에서 5시간 정도 주사를 맞으셨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약국에 가서 뇌경색에 해당하는 약을 타서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이제 평생 뇌경색 약을 드셔야 한다. 운이 나빠 그 부위가 더 확대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약을 꾸준히 드시는 것도 중요하고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았다. 일단 잘 드셔야 할 것 같아 그날부터 이것저것 사다 나르기 시작했다. 얼른 얼굴 마비라도 풀려야 식사를 하실 수 있으니 혹시나 몰라 이틀에 한 번씩 침도 맞으러 모시고 다녔다. 다행히 한약에 식욕을 증진시키는 성분이 있었던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는데 조금씩 식사를 하셨고 걷기도 힘드셨는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화장실도 당신 혼자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도 조금씩 아버지가 회복되는 게 신기하신지 이것저것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하루 종일 계속 뭐를 드시게 하셨다.


나도 이틀에 한 번씩 수원으로 청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허리가 내려앉아 버렸다. 물리치료받고 약 먹고 나라도 없으면 부모님은 어찌할까 싶어 아픈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났는데 방에서 누워서 죽만 드시던 아버지가 식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안면 마비가 서서히 풀렸다. 사실 어머니가 우셨던 것은 아버지가 자꾸 엉뚱한 말씀을 하시고, 뭔가를 물어보면 질문과는 상관없는 대답을 하셔서 인지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그런 것은 없어졌다. 뇌혈관에 터져 있었던 혈전이 다 녹아서 그런 건지 나도 잘은 모른다.


뇌경색이 있은 지 이제 3주 정도 지났다. 아버지의 얼굴 마비가 거의 다 풀렸다. 입도 거의 제 자리를 찾았다. 물로 삼키지 못하고 흘리셨지만, 이제는 식사도 거의 정상적으로 하신다. 많이는 못 드시지만, 밥을 씹어 삼키신다.


지난 3주 나는 조그만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 아버지하고 다시 식탁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조금 다투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사실 너무 행복했다. 아버지가 많이 회복되셨고 어머니도 아버지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증거다.


조그만 기적이지만 나에겐 커다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내년이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결혼한 지 60년이 되신다. 그날 나는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사진 찍을 것이다.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 나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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