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있다

by 지나온 시간들

수술을 할 수 없음은 마지막 희망이 없다는 건지 모른다. 84세 되신 아버지의 뇌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아버지 연세 때문에 수술을 전혀 권하지 않았다. MRI를 다 찍고 나서 결과를 의사 선생님과 함께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을 느꼈다. 몇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사실 나도 크게 절망했다. 아니길 바랬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느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식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 20분 정도를 상의한 것 같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뇌출혈로 인해 입 주위의 근육이 전부 마비되어 물을 먹여 드려도 물을 삼키기는커녕 입 주위로 전부 흘러내렸다. 방 옆에 있는 화장실도 혼자 가실 수 없어서 부축해서 가야 했다. 나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나를 힘들게 할 것 같아 아예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차단했다. 힘들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냥 그 순간순간을 살아내기만 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죽을 쑤어 입에 넣어 드려도 삼킬 수 없으니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다. 혹시나 몰라 한의원에 매일 모시고 가서 침을 맞았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알약을 삼킬 수가 없으니 갈아서 조금씩 입에 넣어 드렸다. 반 정도는 다시 입 밖으로 나와 버렸지만 그래도 계속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약봉지를 들고 다시 약국으로 가서 최대한 작은 분말 가루로 갈아 달라고 했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물에 타서 한 숟갈씩 먹여 드렸다.


사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의식적으로 끊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아버지의 혀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물이 목을 타고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어디선가 희망의 빛이 조그마한 틈새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어둠의 그림자가 밝은 빛으로 물러갈 것 같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2주 정도가 지나면서 아버지의 얼굴 근육이 서서히 풀렸다. 물을 먹여 드렸을 때 삼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약이 입 밖으로 도로 나오지 않았다. 혀 근육이 풀려서 말을 하시기 시작했다. 어떤 발음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죽을 드실 때 아직 많이 흘리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목 안으로 넘겨 삼킬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얼굴 근육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물은 전혀 흘리지 않았고 약도 전부 다 삼킬 수 있었다.


물리학을 30년 이상 공부한 나는 가장 객관적인 것만 믿는다. 정확한 계산으로 증명되고 수많은 실험의 반복으로 확인된 것만 의심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그러한 것이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잠재해 있다. 나는 언론의 말은 전혀 믿지 않을뿐더러 아예 참고조차 하지 않는 성격이다. 신문에 나오는 사설이나 칼럼 같은 것을 읽기는 하지만 아예 소설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다. 확률도 오차 범위 안에서만 받아들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난 몇 개월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작은 기적을 느꼈다. 과학자인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어떤 무언가를 느꼈다. 아버지가 회복되지 않으셨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거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이상하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기적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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