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도 못했는데

by 지나온 시간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날도 학교가 파하자 뒷산에 올라가 한참 놀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지라 산에는 수많은 곤충들이 있어 나는 정신없이 곤충들을 잡는데 빠져 있었다. 참나무 구멍엔 풍뎅이니, 찌개 벌레가 수두룩했고, 수풀엔 여치, 방아깨비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슬금슬금 내게 다가왔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그리 크지 않은 고양이였다.


너무 귀여워 손을 내밀면서 다가가니 고양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에게로 왔다.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니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있었다. 둘러보니 다른 고양이들은 없었다. 같이 한참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산에서 내려오려는데 녀석이 자꾸 나를 따라왔다. 주인이 있다면 자기 집으로 갈 텐데 왜 자꾸 따라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뒤를 살살 따라오던 고양이는 결국 우리 집 가까이까지 왔다. 아무래도 주인이 없는 들고양이가 아닌가 싶어 품 안에 안아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웬 고양이냐고 하시기에, 주인도 없고 집도 없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만약 집이 있으면 조금 있다가 돌아갈 테니 걱정 마시라고 하고 계속 데리고 놀았다. 헛간에 가서 사과 궤짝을 가져다 고양이 집을 만들어 주었다. 물도 떠다 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었더니 배가 고팠던지 너무나 잘 먹었다.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배고프니까 많이 먹고 좀 놀다가 너희 집에 가라.” 이야기해 주었다. 고양이가 내 말은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먹을 거 먹고 조금 쉬다가 자기 집이 있으면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제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 고양이한테 가보았다. 고양이는 사과 궤짝 안에서 조용히 누워 있다가 내가 다가가니 부스스 일어나 말똥말똥 쳐다보는 것이었다. 하루 만에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주인도 없고 집도 없어서 내가 계속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쓰다듬어 주다가 잘 자라고 이야기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고양이한테 가보았다. 고양이는 거기서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누워있었는데 내가 다가가는 소리에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서는 내 손을 핥고 부비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주인도 없고 집도 없는 고양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고양이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어머니께서 반찬으로 고등어나 꽁치를 하시면 내가 먹을 양을 고양이에게 먹였다. 어머니는 사람 먹을 것을 고양이 준다며 걱정하셨지만 나는 고양이 먹는 것이 내가 먹는 것보다 더 좋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고양이 몸집이 커지면서 살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수돗가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 목욕도 시켜주고 집에 있던 강아지와 함께 뒷산에 데리고 올라가 풀밭에서 뒹굴면서 실컷 놀다 들어왔다.


그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집에 쥐들이 많아 부모님이 쥐덫을 놓고 쥐약도 놓으셨지만 쥐들이 줄어들지 않아 고민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께서 쥐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 같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고양이 때문일 거라고 말씀드렸다. 고양이가 쥐들을 밤에 다 잡은 거라고, 쥐들이 무서워서 다 도망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정말 신기하게도 쥐들이 자취를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쥐들이 “찍찍” 거려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여 쥐들한테 “야, 조용히 해!”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었다. 그런데 천장에 나는 소리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데리고 온 고양이가 우리 집에 있던 쥐들을 다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가 으쓱하곤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와 바로 고양이한테 가보았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데리고 평상시처럼 뒷산에 가서 놀다 오려고 했다. 그런데 고양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강아지는 줄로 묶어 놓았지만, 고양이는 묶어 두지 않아도 내가 학교에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고양이 집에 있었다. 집안을 이리저리 찾아도 고양이는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이상 집 근처를 돌아다니고, 혹시 고양이 혼자 뒷산에 갔나 싶어 올라가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허전하고 너무 허탈했다. 비록 두 달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께 여쭈어봐도 모르시고, 온 집안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겠지 싶어 계속 기다렸지만, 그날 밤이 깊어지도록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애가 타고 속이 상했다. 자려고 해도 잠도 안 오고 계속 머릿속에는 고양이 생각만 났다. 다음날도 다음날도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도 고양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는데....


당시 고양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나는 그 고양이 모습이 기억난다. 이별이 어찌 그뿐이겠나. 살아가다 보면 인사도 못한 채 헤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잘 지내라는 인사도 없이, 건강하라는 인사도 없이, 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없이 말이다. 유학 시절에 버려진 고양이처럼 외로운 내게 정을 준 이들이 많았다. 미국이라는 그 커다란 나라에 나 혼자밖에 없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모든 것을 나 혼자 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것이 서툰 나에게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나 역시 그들과 정이 들어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다, 고마웠다,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해보지만 어쩌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끔 그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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