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by 지나온 시간들

누군가를 사랑하니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 예전에 그냥 아무런 느낌도 없는 하늘이었건만, 이제는 똑같은 하늘이지만 에메랄드 같이 빛나 보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니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다. 하나도 받지 않아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고 싶었다. 이익이란 단어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베풂뿐이었다. 그리고 그 주는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니 가슴이 터질 듯했다.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삶 자체가 무의미한 듯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우체국에 가서 수백 통의 편지를 매일 같이 보냈다.


누군가를 사랑하니 기다릴 수 있었다. 평소엔 1~2분 늦게 오는 버스도 원망스러웠지만, 나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니 버스가 오지 않으면 걸어가도 좋았다. 편지를 보내고 기다림의 시간으로 그렇게 살았다. 몇 년이 지나 드디어 그의 마음도 열렸다. 그리고 나를 받아 주었다. 기다림은 그렇게 빛을 보았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니 힘든 상황이 와도 버틸 수 있었다. 세상의 고된 바람이 나에게 불어도 나에게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 꽃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후회도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을 뿐이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은 그렇게 이영도를 사랑하고 교통사고로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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