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가는 길

by 지나온 시간들

작은 사슴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小鹿島(소록도), 일반인들의 편견과 외면으로 인해 나병 환자 그들끼리 모여 살고 있는 조그만 섬이다. 문둥병이라고도 하는 한센병 환자를 국립소록도병원에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시기였던 1917년이었다. 치료를 위한다고는 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국에 퍼져 있었던 한센인들을 모두 모아 강제적인 감금을 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1920년에 태어난 한하운은 일본 동경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북경대학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당시엔 농대가 가장 인기 있었던 분야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는 일제 강점기 시기 우리나라 최고 지식인 중의 한 명이었다. 그가 25살 되던 해, 고향인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서 근무하던 중 한센병에 걸렸음을 판명받았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가장 촉망받던 직장에 자리 잡아 미래에 대한 커다란 포부를 갖고 있을 때였다

.

그렇게 그는 나병에 걸려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한하운은 성혜원과 신명보육원을 세워 부모 없는 고아들을 보살피기 시작했고, 대한 한센연맹 위원장에 취임하여 나환자 구제사업을 전개한다. 또한, 무하 문화사라는 출판사도 경영한다. 하지만 그의 병은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손가락이 끊어지고 발가락이 뭉개져 나가는 문둥병,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그의 가슴도 찢겨나갔을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인텔리였기에 자신에게는 아주 커다란 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 화려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꿈도, 사랑도, 그의 밝은 미래도 이제 다 소용없었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그는 소록도를 향한다.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을 넘는데


가도 가도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


이제 어쩌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그 머나먼 길을 가야 했다. 얼마나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을까? 어째서 하늘은 그에게 그런 천형을 내렸던 것일까?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보리피리 불며 그 길을 갔다.

<보리 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눈물의 그 길을 그는 걸었다. 보리 가지 하나 뽑아 입에 넣고, 피리 삼아 불며 그 길을 걸었다. 고향의 따스한 봄이 생각이 나고, 어릴 적 꿈 많았던 그 시절이 그리웠지만 그 모든 것을 가슴에 담고 그 길을 걸었다.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삶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운명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의 꿈, 젊은 청춘,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떠나야 했다. 그는 파랑새 되어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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