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평대생활> 23일째
버스 타고 성산읍 신산리까지 이동했다. 제주 일주도로의 동쪽을 커버하는 201번 버스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차 없이 사는 내겐 가장 믿음직한 버스노선이다. 걷다 말았던 올레 3코스의 나머지를 걷고 오기로 했다. 표선해수욕장까지의 구간이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일출봉은 동네 뒷산처럼 익숙하다. 창을 따라 흘러가는 풍광이 편안했고 그게 흐뭇했다. 버스 안은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제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참 좋겠다. 근데 그게 복인 줄은 알까 싶다가, 대한민국 어디에나 학교는 숨 막히는 곳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으로 대체해버렸다. 신발을 질질 끌고 나서는 나의 출근길처럼 아이들에겐 등교가 그렇겠지. 아이들 입장에선 딱 봐도 놀러 가는 행색의 아저씨가 사이에 끼었으니 ‘저 아저씨는 놀아서 좋겠다’ 했을 거다.
신산리에서 내려 해안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갔다. 사진관 앞에 또 걸음이 멈췄다. ‘사진관 앞에서는 멈춰’라고 프로그래밍된 것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기웃거려본다. 어떻게 꾸몄나? 장사는 좀 되나? ‘출장 중’이라는 문패가 걸렸다. 반려견 한 마리가 잠에서 깨 게으른 경계의 시선을 던진다. 어디로 출장 갔을까? 어떤 사진을 찍을까? 웨딩사진? 가족사진? 광고사진? 기-승-전-‘여기서 나는 사진 찍으며 먹고살 수 있을까’로 귀결되고 난 뒤에 발걸음을 뗀다.
걷는 동안에는 감각이 예민하게 때론 과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둔한 감각의 소유자인데도 그렇다. 감각의 총동원령이랄까. 삼달리 해안에는 생선가공 공장들이 즐비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였고, 분주한 움직임에 생선 비린내가 조금 끼쳐왔다. 공장의 모양과 외벽의 색에 희한하게 끌려들었다. 벽을 따라 오래 흘러내린 물 자국에 눈길이 붙잡혔다. 이미 찍기로 돼 있었던 것처럼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이런 건 뭘까? 물처럼 흐르는 일련의 과정을 의심한다. 즉흥적인 감각일까, 아니면 어떤 시각적 경험이 개입되는 걸까.
노란 벽을 타고 흐르는 검은 물때를 보며 어디서 본 듯한 작품을 그려봤다. 그 순간에는 몰랐고 뒤에 기억해 찾아보게 됐다. 난 추상 표현주의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떠올렸던 것이다. 정확히 어떤 작품을 생각했다기보다 그런 느낌에 붙들렸던 것이다. 물때에서 작품의 느낌을 발견한 이 낯선 시선은 일종의 도발이었다. 걷는 중에 일어나는 도발적 감각이다. 내게 오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을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의 상태를 뭐라고 해야 할까. 직장생활 중에 얻은 한 달이라는 예외적인 시간과 공간에 나름의 사유와 행위가 보태져서 일어난 생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서울에서 저런 물때를 보았다면 과연 카메라를 들었을까.
‘바다목장’을 지난다. 말 그대로 바다와 맞닿아 탁 트인 목장이었다. 바다와 목장 사이의 길을 걸으며 차분하고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불쑥 질문이 생겼다. 근데 ‘아무것’은 무엇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또 무엇일까. 흔히 쓰지만 참 모호한 말이라고 깨닫는다.
한낮에 표선해수욕장은 무척 한가했다. 주변은 평대와 달리 카페와 호텔, 음식점이 길 따라 들어서서 요란했다. 물이 빠져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에서 사람 없는 한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눕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게 있다. 얇은 구름이 해를 가린 날씨는 “좀 누워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드러누웠다. 피로감인지 스르르 눈이 감겼다. 차분한 파도소리, 먼 제트스키 엔진 소리, 바나나보트에 올라탄 이들의 탄성, ‘터보’ 같은 1990년대의 인기가요 메들리가 나른한 공기 중에 떠돌았고 바람이 여리게 불었다. 깊지 않은 잠이 들었다. 의식과 무의식, 꿈인 듯 꿈 아닌 듯 모호한 상태의 수면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눈이 떠졌을 때 햇볕이 쨍했고, 내 까맣게 탄 팔과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을린 팔다리보다 반바지와 티셔츠에 가려졌던 허벅지와 배와 가슴이 하얗다는 게 거슬렸다. 내가 이렇게 흰 피부의 소유자였던가. 자다 깨서인지 나의 하양이 눈부셨다. 타고 안 탄 부분의 경계가 또렷했다. 한 몸인데 부위별 ‘노출 차(밝고 어두움)’가 컸다. 드러누운 김에 하얀 부위를 햇볕에 좀 태워볼까.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아니, 해수욕장인데 뭐 어때. 누가 뭐라겠어. 반바지를 바짝 걷어 올리고, 웃옷을 벗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다시 껴입고 말았다. 가끔 지나는 인기척에 신경이 쓰였다. 물렁한 ‘원팩’의 속살을 드러내고 누운 내 모습이 그려졌다. 타인의 시선으로 본 내 모습이 별로였다. 이런 식의 검열이 눈치 없이 살지 말자는 소신 같으면서도 소심한 자아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해수욕장에서의 사소한 내적 갈등이 밤에 다시 소환됐다. 밤은 낮의 생각과 행동이 불려 나와 심판을 받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 살들을 태웠어야 한다는 쪽으로 내 안의 배심원이 손을 들어주고 있었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이 작은 갈등은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축소하고 있는 대유법적 사건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평대에서 지내면서 ‘진짜 나’에 대해 자꾸 묻는다.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 건 서울에서보다 조금 덜 위선적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조금 더 진짜 같은 나를 느꼈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 순도 100%의 나라는 게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니, 70% 정도쯤에 타협하면 어떨까. 내게 그런 제안을 해본다. 이를 악물고 한참은 올라야 할 산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