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격리하다-2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빨리 퍼져야 하는 소문이 있다.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소문이 딱 그런 경우다. 딸아이의 확진과 나의 밀접접촉 사실이 회사 안팎의 선후배들에게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매일 기록이 깨지는 확진자 숫자의 막연함보다 지인 가족의 확진과 밀접접촉이라는 사실이 훨씬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침부터 휴대폰과 카톡이 번갈아가며 울렸다. 나의 안부와 딸아이의 증상을 물었다. 음성과 문자에 배려가 있다고 느껴졌다. 고열 같은 심각한 증상이 없다는 답에 “다행이다”라며 안도했다. 이어 몸 잘 챙기라는 위로의 말을 보탰다. 별 것 아닌 흔한 말들인데 ‘격리’라는 특수한 순간에는 별 것이 되어버린다.
나와 접촉했던 이들도 PCR 검사와 신속항원검사 결과가 ‘음성’이라고 속속 알려왔다. 나의 우려를 덜어주려는 마음이 읽혔다. 가슴 졸이면서 번거로운 일을 감당해줘서 참 고마웠다. 이런 귀한 마음들이 이 팬데믹의 터널을 견디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감염병의 시대가 우리의 연결을 새삼 깨닫게 하면서 동시에 그 연결의 내용까지 곱씹게 만들었다.
전날 퇴근하면서 PCR 검사를 한 나는 오전이 지나는 동안에도 문자를 못 받고 있었다. 코로나 확산 속도가 가팔라져 일일 확진자가 3만 6000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본다. 속수무책으로 정신없을 보건소 직원들을 생각하니 문자가 좀 늦을 수 있겠거니 했다. 오후가 되니 불안해졌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은 다음에야 이럴 리가 없다.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서너 개의 번호를 돌려가며 꽤 오래 통화를 시도했지만 마찬가지. 은근한 짜증과 의심이 솟아났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일부러 안 받는 건 아닐까.
긴 통화 연결음 뒤에 보건소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실패한 통화에 대한 불만을 살짝 얘기하려고 하는데 수화기에서 들려온 친절하면서도 절제된 목소리. 그건 꼭 ‘그 불안하고 답답했던 마음 이해합니다. 문의 전화가 많아서 통화가 안 된 거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품고 있었다. 응당 받아야 할 서비스로 생각하고 화와 짜증을 탑재한 채 따지듯 물었을 통화들에 시달렸을 테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는 투의 목소리에 지난 몇 시간의 짜증을 반성하고 말았다. 10명 단위로 묶어서 검사하는데 결과 1차 ‘미결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10명 검사치 안에 양성 수치가 있었다는 것. 이럴 경우 다시 10명 개개인에 대한 2차 검사가 이뤄져 늦어졌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결과를 확인해주겠다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왔고, 이를 처리하는 그 짧은 순간에 '양성'일 경우 감당해야 할 별별 것들에 대한 생각이 지나갔다. “음성입니다.” 꼭 ‘축하합니다’처럼 들렸다. 세상이 환해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뭐든 열심히 잘할 것 같은 마음이 생겨났다.
책 읽다가 가물가물 졸고 있는데 “똑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하고 불러도 답이 없다. 노크는 더 이상 없었다. 택배가 왔나 싶어 나가 봤더니, 바닥에 놓인 에코백에 과일과 백세주 한 병이 들어있었다. 앞 동 사는 이웃이 챙겨놓고 사라진 것이다. 또 앞집 부부는 퇴근길에 일부러 들러서 샀을 크루아상와플 가득한 봉지를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놓고 갔다. “먹으면 코로나에 절대 안 걸린다”는 마법의 비타민과 효과 좋은 감기약도 함께 챙겨서 넣어두었다. 이웃의 고립 소식에 가만있을 수 없는 선한 사람들이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이 삭막한 코로나 시대의 연대이자 위로겠지.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동시에 살며 갚아야 할 빚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들이 진~짜 ‘백신’ 아니겠는가. /ya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