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미국에서 왔니?”
나와 처음 몇 마디 나눈 외국 친구들이 종종 물었다. ‘ 어머,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나…’ 처음에는 약간 으쓱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영어 실력에 대한 칭찬이 아니었고, 미국 사람의 억양을 가졌다는 것뿐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대학 시절 미국에 잠시 머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난 왜 우쭐했던 것일까. 나의 깊은 이면에는 미국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제 정신이 잔재했던 것이 아닐까. 육이오 전쟁 즈음부터 역사적으로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아 미국식 교육, 경영방식에 익숙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미국을 좀 더 닮아 가는 것을 선진국가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무의식 중에 믿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파리에서 베르사유를 거쳐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서야 겨우 다달을 수 있는 주이엉 죠사스 ( Jouy en Josas)에 위치한 에슈쎄 파히 (HEC Paris) 캠퍼스로 모여든 45개국에서 온 180명의 학생들과 함께하는 엠비에이 수업은 흥미진진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일을 하다가 이렇게 프랑스로 모여든 친구들과 매일매일 어울려 그룹 과제를 수행하고 팀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른 점에 처음에는 놀라기도 하고, 그 다름 속에서 공동의 의견을 찾아가는 과정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로벌 엠비에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세계적 교수들이 함께했지만, 유럽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프랑스, 독일, 이태리 등의 유럽 출신 교수들이 많았다. 각자 출신을 숨길 수 없이 독특한 악센트가 있어 교수들마다 그 캐릭터가 매우 재미있었는데, 나 로써는 캐릭터만큼이나 다양한 수업방식에 대해 크게 불만 없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들의 수업 방식에 불만이 심한 친구들이 바로 미국 친구들이었다는 점이다. 교수의 강연보다 학생들 의 자유 토론이 학습 시간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식 교육에 익숙한 그들에게 유럽식 수업이 교수 일방적으로 지배되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활발한 토론식 수업에 익숙하지 못한 나를 비롯한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국보다 활발한 토론식 수업이지만 교수가 토론을 수업에 효과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오히려 유리한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MBA 특성상 대부분의 수업들은 케이스 스터디로 구성되는데, 수업에 앞서 내용을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수들의 질문에 맞게 각자의 경험과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은 전체 수업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고, 특정 소수의 말 많은 친구들에게 몰릴 수 있는 발언권을 고르게 분포하기 위한 교수들의 노력도 있었다. 더불어 프랑스 교수 특유의 불친절함이랄까 에로건트한 특성이랄까 학생의 의견이 수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말목을 잘라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갈피 잡지 못해 한 없이 늘어지는 몇몇 학우들의 종알거림을 끊어주어 나한테는 오히려 고마운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영어에 대한 나의 낡은 미제 정신을 깨닫는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10명 내외로 구성되어 진행되는 비즈니스 스피치 수업이 있는데, 상당 수의 미국 친구들이 영어로 대중 앞에서 소통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제2 외국어의 용도로 영어를 배운 우리들은 퍼블릭 스피치 등의 목적으로 꾸준히 학습해왔기 때문에 혹은 필요한 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용도로 영어를 다져왔기 때문에 청산유수의 수식어구를 달지 못할지언정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조리 있게 잘 발표하는 반면, 몇몇 미국 친구 들은 문장이 거듭될수록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속도 때문에 청중과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가 하면 일상적인 대화 때는 경험하지 않는 버벅거림이나 두서없이 떠드는 이외의 상황도 빈번했다. 내 수업을 담당했던 연자는 영국인 연극배우 출신의 퍼블릭 스피치 강사였는데, 미국 친구 댄은 종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즉, 스피치 중 쉼표를 찍기 위해 공간을 걸으면서 발 박자를 세가며 속도를 제어하는 연습을 했고, 심지어는 우리 모두 앞에서 연극배우들이 발성을 위해 사용한다는 허리를 완전히 굽혀 얼굴을 발목까지 내린 상태로 심호흡을 여러 회에 걸쳐 함으로써 몸 안의 공기를 비워 스피치 중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호흡법을 연습하기도 했다. 또 다른 미국 친구 저스틴은 스피치를 서서 할 때 지나치게 굳어버려 말문이 터지지 않아 결국 앉아서 하는 형태의 스피치를 시도했는데, 훨씬 편안하게 주제에 대해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가능한 여건에서는 앉아서 스피치를 하는 형태를 사용하도록 권유받았다.
나의 경우는 청중과 소통을 하면서 스피치를 하는 스타일로 이 점을 장점으로 살리되, 침묵의 시간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채 정리되기 전에 말을 시작하여 문장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거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즉, 어느 정도의 침묵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침묵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 내가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을 할 때도 가지고 있는 결점이었고, 소통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 자체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가 어떻게 사고하고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느냐 하는 사고의 과정과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미국 사람처럼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조리 있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닌다.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 반 여러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참 알아듣기 힘든 영어를 쓰는 캐나다 친구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교수에게 항상 도전적인 질문을 많이 하는 친구였는데, 그의 영어는 항상 직설적이었지만 몇몇 교수님들은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 물론 많은 학생들 역시 그러했다.) 그 질의응답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시간 소모가 항상 있었기 때문에 소중한 수업 시간을 이렇게 소비하게 하는 션의 영어에 대해 많은 친구들이 불만을 토했다. “ 션의 영어는 정말 못 알아듣겠어. 션은 영어를 좀 더 바르게 써야 할 거 같지 않니?”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