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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Oct 02. 2020

이화. 플래시백

그녀는 기억 속에서  산다.  

그녀는 괴성을 지르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네 달 배기 둘째 방에 위험한 물건은 없다. 고작 한 움큼의 기저귀, 기저귀 매트, 여러 소프트 토이, 모빌, 젖병과 분유통 정도가 손에 닿아 집어던져지고 방 문간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애아빠는 베이비 크립 안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자지러지게 우는 둘째를 안아서 방 너머로 급히 사라졌다.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져 앉아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 안의 괴물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집어던진 물건에 맞아 빙그르르 돌아간 램프는 방의 구석을 비추고, 며칠 내내 찾았던 젖병 뚜껑과 쪽쪽이가 먼지를 한껏 뒤집어쓴 채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너덜너덜한 한숨이 나온다.


네 달 배기 둘째는 천사다. 갓난아이는 울음으로 얘기한다고 하는데, 둘째는 울음소리를 듣기 힘들다. 항상 방긋방긋 웃는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천사야. 정말 고마워.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보자.


하지만, 어쩌다가 둘째가 울기 시작하면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초조해진다. 그 울음소리는 그녀를 기억 속으로 끌고 간다. 여러 플래시백이 척척 척척 머릿속에 지나간다. 최첨단 의료 기구가 가득한 중환자 병실의 거대한 침대에 자칫 못 보고 지나칠 만큼 작은 한 점처럼 누워있는 갓난아이.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그 한 점 같은 아이의 양손과 발에 연결된 라인들이 보이고, 머리 밑에 놓인 얼음팩 위에서 가녈디 가녀린 신음 소리가 들린다. 40도가 넘는 내리지 않는 고열로 마를 대로 마른 입술과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눈, 보랏빛이 도는 수척한 얼굴이 보인다.

태어난 지 고작 15일째이니 아직 사람보다는 외계인의 모습인 둘째의 병실을 지키는 그녀는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돼 너덜너덜한 마스크를 쓴 채로 밤새 병실 한편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호흡이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그걸 벗지 못하겠다.


둘째는 41주 5일을 꽉꽉 채우고 세상으로 나왔다. 첫째의 제왕절개 이후,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고자 단단히 각오한 그녀였지만  임신 41주에 들어서고는 밤마다 꼬박 배를 움켜쥐고 혹시 진통이 온 걸까 잠을 못 잤다. 그렇게 싱가포르의 코비드 락다운 상태에서 마스크를 쓴 채 견뎌낸 진통 끝에 만난 아이는 잘 울지도 않고 천사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4인 체제의 락다운은 계속됐고, 일주일이 넘는 불면증 상태의 그녀는 암컷의 생명력으로 모두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부푼 가슴을 문지르고 아린 젖꼭지로 젖을 짜내면서, 한밤중 들이닥친 오한으로 30도의 날씨에 온갖 이불을 덮은 채로 바들바들 떨면서, 첫째의 질투와 성남을 무마하려 찢긴 밑동을 바닥에 데고 앉아 기차 레일 만들기를 하면서, 약발이 떨어져서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오는데 페인킬러를 어디 뒀는지 몰라 쓰레기통 바닥까지 뒤지는 꼴을 하면서. 그렇게 코비드 락다운 속에서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우린 매일매일 바닥을 쳐대면서 하루하루 생존일기를 써나가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 그래도 잘하고 있어 라고 서로서로를 칭찬하면서.


그러다가 둘째는 태어난 지 15일째에 패혈증과 급성 세균성 뇌척수액염 진단을 받았다. 세균은 그 작은 아이의 온몸으로 퍼져서 뇌까지 진입했고 그렇게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둘째는 너무 아픈 와중에도 큰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3일이 지나고 심박수과 맥박수가 정상수치로 돌아오면서 다시 입맛을 되찾아 드립을 빼고 젖병으로 마시기를 시작하자 둘째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27일 내내 항생제를 투여받으며 2번의 뇌 MRI, 3번의 Lumbar Punture (뇌척수액 검사), 셀 수 없이 많은 혈액과 소변 검사를 하면서 같은 병실에 수십 명의 환자가 들고 나는 시간을 보냈다.


내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진짜 그럴 뻔했다.  그 바로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둘째는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 100일 잔치도 하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하지만 둘째의 울음소리는 그녀에게 다시 이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기억케 한다. 중환사실의 플래시백은 둘째의 울음과 항상 함께 돌아온다. 그 크고 하얀 방안에 작은 점처럼 작은 둘째의 신음소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에게 들려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이 복받쳐 조절장애에 걸린다.


두 번째 심리치료는 첫 번째 보다 좀 더 넓은 방에서 이뤄졌다. 한 벽면에는 화이트보드가 다른 벽면에는 흑백의 추상화가 두 점 걸려있었다. 그녀는 두 그림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쳐다보면서 심리 치료사 Ooi와 첫 만남보다는 조금 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추가적인 질문지 하나를 작성해달라는 요청에 그녀는 다시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감정 스펙트럼의 어느 시점에 맞춰서 답변해야 하는 걸까. Ooi는 나의 증세가 단순 산후 우울증과는 조금 다르게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과거의 어떤 이벤트가 종료된 뒤에도 계속적으로 잔재하면서 정신불안을 일으키는 형태라고 한다. 그리고, 심리 치료는 Cognitive Behavior Therapy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다이아그램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벤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 이벤트에 대한 • 생각, • 감정, • 신체적 반응, 그리고 • 행동으로 네 가지 다른 형태로 도출되는데, 나는 둘째를 잃을 뻔했던 그 이벤트에 대한 생각이, 조바심과 분노라는 감정으로, 그리고 괴성을 지르거나 혹은 물건을 집어던지는 형태의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그녀는 분석했다.  


치료의 목표로는 이러한 행동으로 가기 전에 내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음주 치료날까지 숙제를 하나 냈다. 하루하루 자신의 몸이 생각과 감정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라는 것.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가슴에 응어리 지는 통증이 오거나, 두통이 오거나, 호흡이 빨라지거나 내 몸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이해을 위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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