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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Oct 20. 2020

삼화. 비정상적 평화

그녀는 분노의 차를 타고 돌진한다.

두두두두두두. 침대에 누워 발로 벽 구르기가 벌써 몇 분 째인지. 세 살 배기 첫째는 아빠랑 잘래. 아빠랑 잘래. 아빠랑 잘래. 를 마치 고장한 카세트를 틀어놓은 양 같은 어조로 셀 수 없이 반복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 등 댈 곳 없이 우두커니 앉아 네 달 배기 둘째에게 젖을 물린 채 숨 죽이고 앉아 있던 그녀는 조용히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이유도 영문도 모르는 그저 멈춰지지 않는 눈물이 흐르고 흘러내려 그녀의 아린 어깨팍와 손목을 적신다.


그녀가 만삭의 배를 움켜잡고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빠듯할 무렵, 코비드 락다운이 시작됐다.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맘껏 뛰고 넘어지고 구를 수 있는 바깥출입을 못하게 되었고, 장난감을 빼앗고 빼앗기고 밀치고 울다가 금세 까르르르 웃으며 어른은 이해 불가한 언어로 소통하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에너지가 넘치고 넘쳐나는 세 살배기 남자아이는 심술이 늘었다.  한 달로 예정된 락다운은 두 달이 넘게 계속됐고 그 간 화장실 청소 한 번으로 버텨낸  집 구녕은 개미떼와 바퀴벌레의 출현이 잦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뎅기열 시즌이 돌아왔고 싱가포르는 역대 최악의 뎅기열 전염을  앓았다. 그녀는 코비드와 뎅기열로부터 태아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첫째의 쿵푸 수련에 가까운 펀치, 킥, 점프로 부터 만삭의 배를 지키기 위해 항상 촉수가 잔뜩 올라있었다. 반면, 남편은 재택 근무 와중에 틈틈이 첫째와 놀아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첫째를 목욕시키고 책을 읽다가 잠을 재웠다. 락다운 하루 끝의 초토화된 집 정리를 대충 하고  침실로 향하다 보면 깔깔깔깔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첫째의 침실 앞에 우두커니 선 채,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 번째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가는 달리는 차 안, 신호에 걸릴 때마다 뒷 자석에는 네 달 배기 둘째가 잠투정을 해댄다. 최근 이앓이를 시작한 둘째는 어젯밤 몇 번씩 깨어 울어댔고 그녀와 남편은 번갈아 가며 일어나는라 퀭한 눈으로 서로 말이 없다. 아니 실은 몇 번의 흐느낌과 괴성을 목격한 이후, 남편은 그녀 주변에서 마치 살 걸음판을 걷듯 한다. 대화는 시도하지만 5분을 넘기기 힘들다. 그녀가 매주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 남편은 반나절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내고 둘째를 봐준다. 오늘은 치료 시간에 늦을 까 봐 클리닉까지 데려다주는 그런 남편이 그녀는 참 고맙다.


아, 다음 피딩 Feeding 이 언제지?

 

응, 아침 9시에 먹었으니깐 한번 재우고 나서 12시쯤 먹여. 이앓이 때문에 잠잘 못 들 텐데, 캐리어에 안고 재우면 그래도 한 시간은 쭉 잘 거야.


오케이.이지 치지 Easy Cheesy.


남편은 여느 때처럼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대답한다.

 

그래, 넌 참 좋겠다. 회사도 가서 일도 하고, 집에 오면 태오랑 놀아주고, 매일매일 그 많은 역할을 그렇게 다 잘 해내서 얼마나 만족스럽겠어. 모든 걸 다 잘 해내는 니 자신이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그렇겠네. 넌 참 잘나서 좋겠다.


고마워.라는 말 대신 그녀는 한바탕 윽박을 지르고 울음을 터트린다. 에너지 넘쳐나는 첫째를 도맡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매일 저녁 6시 칼퇴근해서 날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매주 회사 일정까지 조율해가며 내가 심리 치료받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또 뾰족한 손톱을 내밀어 남편 면상에 또 할큄 질을 해댔을까.


남편의 이지 치지- 한마디는 무슨 기억 머신의 버튼처럼 3년도 더 지난 첫째 출산 시절의 사소한 기억의 조각들을 0.1초 간격으로 그녀의 머릿속으로 총집합시킨다. 양수가 갑자기 반으로 줄어 그날 밤 바로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는 의사 말에 놀라 어쩔 줄 모르면서 병원 가방을 싸는 그녀, 같은 시각 집에 친구를 불러 피자를 시켜 맥주를 마시는 남편. 쿨한 척, 그래 잘했어하고는 유도 분만에 좋다는 뜨끈한 물을 담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혼자 흐느끼던 순간. 출산 후 친구들과 아빠 된 걸 축하하는 술자리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 들어설 때 났던 술냄새. 술로 지낸 다음 날 저녁에 한국에서 날아온 친정엄마 아빠가 남편이 아직 공항에 안 왔다는 문자에 확인 전화를 거니 지금 가는 중이라고 신경질 가득했던 목소리. 제왕절개로 출산 후 첫 내원 전 날 남편이 무심하게 핸드폰만 쳐다보면서 회사 일이 바쁘니 혼자 가라던 목소리. 8주간 젖 물기를 거부하는 첫째에게 모유를 먹이겠다고 2시간 간격으로 40분씩 펌핑질을 하는 나를 보면서 모유는 너무 디스커스팅 ( Disgusting) 하다며 찌푸리던 얼굴. 널씽 (Nursing) 의자를 사러 이케아 가구점에서 훌쩍훌쩍 울면서 스무 개도 넘은 암체어 ( Armchair)에 앉고 또 앉아보던 순간.


그녀에게 첫 번째 출산은 실패를 상징한다. 의도치 않은 제왕 절개로 아이를 낳았고, 젖꼭지가 찢어지고 피가 나도록 무지하게 모유수유가 안됐고, 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산후우울증이 몰아닥친 그녀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 발톱 같은 말들에 많이 할큄을 당했던 남편, 반면에 그녀는 아직도 남편의 철없던 행동들이 기억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둘은 절대 접하지 않을 평행선을 긋는 대화로 언성을 높이곤 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마음에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품은 채 시간은 흐르고, 첫째는 거의 두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첫 번째의 패배감을 만회하고 두 사람의 깊은 상처를 아물도록 둘째의 임신을 원했다. 반면에 남편은 다시 그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 둘째 이야기만 나오면 둘은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의 대화로 상처가 아직 남아있음을 그리고 그 상처가 아직도 많이 아리다는 것만 확인한 채 다시 원 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 심리 치료에서 Ms. Ooing 은 지난주 숙제 체크부터 한다. 소리 지르고 물건 던지는 드라마 없이 평화로운 한 주였다고, 그래서 이런 심리 치료가 계속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답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건 비정상적인 평화라는 걸 알고 있다. 24시간 내내 살얼음판을 걷듯 입 밖으로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주의해야 하는 남편과 둘째의 울음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하루하루가 정상적인 삶은 아니다.

 

Ms. Ooing은 내가 분노의 차를 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는 생각들이 휘발유로 분노의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순간 그 차는 부우우우우우우웅 돌진한다. 치료사는 비유법에 이어  뇌신경학적으로 설명을 거든다. 인간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뇌 부위는 아미그달라 ( Amigdala). 그곳에서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그 어떤 감정이 감지되면, 뇌 옆집 친구인 히포 캄푸스 (Hippocampus)는 그 감정으로 기억하는 여러 이벤트들을 아미그달라로 공급하기 시작한다. 남편의 이지 치지- 한마디가 나의 아미그달라에 분노라는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이 바로 내가 분노의 차에 탑승을 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웃사촌 히포 캄푸스는 남편과 관련해 분노 폴더에 저장된 기억들을 모두 송출해낸다. 그것들은 대부분 3년 도 더 넘어 낡고 너덜너덜한 철없던 남편 혹은 초짜 아빠의 크고 작은 실수들이다. 그렇게 그녀는 1초 전까지 하고자 했던 고맙다는 말 대신, 아미그달라와 히포 캄푸스의 효과적인 협업으로 인해 분노의 차를 타고 이미 돌진을 해버린다.


그럼 진작에 분노의 차에 탑승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Ms. Ooing은 그녀에게 또 다른 숙제를 내어줬다. 남편에게 분노의 차를 타고 돌진한 것처럼 내가 또 분노의 차에 탄 채 분노기억 휘발유가 콸콸콸 탱크를 채울 때, 아래와 같이 A-B-C 워크시트에 맞춰서 분석을 하라는 것이다.

A- Activating Event  "Something happens"

B - Beliefe "I tell myself something"  

C- Consequence  " I feel something"


여섯 장의 워크시트를 프린트해서 건네 두는 Ms.Ooing에게 이걸 다 채울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치료실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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