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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8. 2021

80년생 김지영

나잇값 하지 않기로

나는 해외 거주 12년 차이다. 일이 년쯤 일하려고 왔던 이곳 싱가포르에 어쩌다 눌러 산 지도 만 9년을 맞이했다. 이렇게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내 나이를 까맣게 잊고 산다. 대화 상대의 연령과 상관없이 “ 하이 피터” , “하이 지영” 서로서로 이름을 부르는 영어가 주 언어인 게 가장 큰 이유일 게다. 그래서 나잇값 생각 안 하고 괜히 더 어른스러운 척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돌이켜 보니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가뿐히 내 삼십 대를 살았던 것도 영어 생활권이었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싱가포르에서는 일하면서는 상대방이 과장님인지, 이사님인지, 아님 그냥 말단 사원인지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든 자기가 생각하는 걸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다닌 회사들이 영국, 스위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었다는 점, 그리고 상대 존칭이 없는 영어를 제1언어로 업무를 진행한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처럼 호칭에 매우 약한 사람에게 이건 너무나 편리한 시스템이었고, 상하 관계보다는 평행 관계 위주로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단순 타이틀만 바뀌는 승진에 대한 동경은 없었고 그저 내가 하는 일이 조직과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더 커지느냐에 대한 좀 더 정성적인 평가를 따랐던 거 같다. ( 뒤돌아 보면 내가 좀 많이 나이브했던 거였다.)


그렇지만 회사에 계속되는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 조직 이동이 계속 일어났고, 그렇게 회사 생활을 12년이 넘게 하다 보니 이런 영향력도 사내 정치에 휘말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를 하루가 멀다 하고 느끼기 일수였다. 뭔가 내 커리어에 내 인생에 정체기에 이른 것 같았다. 회사 안 밖으로 멘토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롤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뭔가가 어이없게도 감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었다. 마치 강아지 한 마리를 들이고 싶다고 생각하듯 그렇게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내 회사 동료들이 직위나 성별을 막론하고, 아이들 픽업할 시간이라며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를 뜰 수 있는 그 눈치보기 없는 당당함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그들의 속내는 까맣게 모른 체 그 당당함에 끌렸다.


그리고 내 나이 37살, 예약해둔 산전 검사를 하루 앞두고 운 좋게도 임신한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의 체크 리스트 중 하나를 클릭한 정도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 출산 후 4달의 산휴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을 했다. 당시 사무실은 싱가포르 최고의 랜드 마크가 한눈에 보이는 MBFC라는 마리나 샌드 파이낸스 센터라는 이름이 붙은 고급진 빌딩의 15층에 있었고, 커피머신 앞에 서면 싱가포르 관광청 홈페이지 사진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경이다. 회사에 복귀한 뒤에는 보모가 아이를 데리고 점심시간에 맞춰 회사 앞으로 왔고, 나는 건물 앞 잔디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네 달 배기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테이크 아웃한 점심을 먹고 아이와 잠깐 놀면서 소중한 1시간의 점심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무난하게 회사 복귀를 하는 줄 알았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나는 아직 6개월째 모유 수유 중으로  에스트로겐이 시도 때도 없이 뻗치고 있었다. 그렇게 싱가포르 인사부와 스위스 본사에 있는 내 상사로부터 내 업무를 중단하고 스위스 본사에 새로운 직무를 만들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억울해서 눈물이 난 건지, 그냥 호르몬이 넘쳐났던 건지 지금 돌이켜 보면 간흠이 어렵다. 그러게 나는 소위 경단녀가 되었다. 회사를 관두고 전업맘으로 전향 후, 매일매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아침 9시 넘으면 싱가포르는 이미 30도를 웃도는 온도와 머리카락에서는 탄 내가 날 것만 같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했고, 가슴팍에 아이를 안고 동네 산책을 나가자 치면 가슴골을 따라 주룩주룩 소나기라도 내리는 마냥 땀이 흘렀다.


이렇듯 엄마가 되고 나서  인생에는 많은 균열이 생겼다. (그 수많은 균열들은 각각 하나의 글로 써야 옳은 것 같아 다른 글에서 적어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 나는  책의 주인공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믿을  없었다. 내가 해외 살기를 하는 동안 카세트 테이프의 빨리 감기 기능으로 삐리리리릿 스킵했던 한국의 삼십  여인의 현대상이라고 믿기에 너무 고전극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가슴 깊숙이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 중에 듣고 보고 느꼈던 그런 불합리함, 쿨한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수많은 세대에 걸친 인간 번식과 진화 과정에서 거의 유전자처럼 부정할  없는 그런 여성의 숙명과 비애가 느껴졌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책이 엄청한 반향을 일으키고, 특히 여혐 주의까지 역으로 생성됐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저 나처럼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은 균열을 걷은  여성의 일상을 담은 소설일 뿐인데. 속은 곪아 터지는데 겉으로는 인자한 그런 외유내강형의 현모양처를 아직 현대의 어머니상으로 찾고 있는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80년생 김지영'이다. 여전히 나이 값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마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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