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안하기 싫다.
이제 막 다섯 달이 된 둘째는 엄마몸을 타기 시작했는지 겨우 품안에 쌔끈쌔끈 잠들어서 아기 침대에 내려놓으려는 찰나마다 애애앵하고 바로 울어 재꼈다. 그 바람에 그녀는 가슴팍에 둘째를 품은채 몇시간씩 숨을 죽인 채로 꿈쩍도 못하고 않아서 저려오는 팔과 다리를 연신 비틀면서도 혹 아이가 깰까봐 침 넘기는 소리도 야속하기만 하다. 그녀는 아직 둘째의 아무리 가녀린 울음소리도 들어낼 자신이 없어서 이러기를 하루에도 몇 시간씩 벌써 몇 주째인지 모른다.
배 위에 고양이 마냥 꽈리를 틀고 누운 그 따뜻한 덩어리의 쌕쌕 숨소리가 커지는 만큼씩 더 벌어지는 입 안에서는 달큼한 우유냄새가 풍긴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 말고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헛 웃음소리까지 낼 때면 아,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품고 재우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그녀는 아기띠 안에서 잠든 아이를 가슴팍에 그대로 멘 채로 팔걸이가 크고 푹신한 그 수유의자에 걸터 앉아, 핸드폰으로 티비를 본다. 이어폰을 낀 채로 넷플렉스를 틀어 어제 보다 만 ‘베이비’ 라는 다큐멘터리를 틀어 마저 보기 시작했다. 신생아들의 뇌에 대해 최근 이뤄진 다양한 리서치 내용들을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보여주는데 그녀는 이 다큐멘터리를 벌써 세 번째 돌려 보고 있는 중이다.
둘째가 태어난 지 이 주차에 걸린 뇌척수염의 합병증으로 생겼던 뇌 고름집 때문일까. 발견했을 당시 1.2cm의 크기로 머리에 구멍을 내서 뽑아야 하는 2cm보다 작아 다행히 약물 치료만으로 말끔히 제거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작은 고름집 생각가 떠오를 때마다 또 불안한 마음에 여전히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곤 했다. 결국 그녀는 인간의 뇌가 갓난아이때부터 어떻게 발달하는지, 또 아이의 행동거지마다 어떤 뇌의 활성화 상태인지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염려증를 가지게 됐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표현하기 시작한 다섯 달 배기 아이의 작은 손짓, 발짓 그 움직임마다 지금 과연 아이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억척스럽게 추측하고 온갖 가설과 시나리오를 쏟아내곤 한다.
영아의 뇌척수염액 (meningitis)은 예후를 3년 동안 관찰한다. 소아 신경과 담당 선생님은 퇴원하면서 혹시 모를 이상 증후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완쾌된 후 가장 흔한 합병증은 뇌척수액이 흐르는 부위에 가장 가까운 듣기영역에서 점진적으로 듣는 능력을 상실하는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내일은 바로 그 듣기 검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병원을 향해 운전을 하는 20분 내내 아이는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듯 차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이 울음 소리는 어김 없이 그녀를 공황장애 상황으로 몰고 간다. 머리와 가슴이 터져버릴 것처럼 팽팽한 압력에 눌려 숨쉬기가 힘들어진 그녀는 내가 깜빡이를 제대로 켰는지, 빨간 등에 멈췄는지 조차 가물가물한 상태로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차를 세우고 카시트에서 아이를 안아 들고 가쁜 숨을 내쉬며 '미안해.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를 고장난 카세트 마냥 수십번을 반복한다.
둘째의 울음은 바로 내 안의 목소리를 불러온다.
'고름집이 생겼던 그 우뇌 전엽에 혹시라도 무슨 이상이 생긴 걸까? 미안해.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둘째가 뒤집기를 할 듯 할 듯, 뒤집지를 못한다. 그걸 바라보는 그녀에게 또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고름집이 생겼던 두뇌 탓일까? 미안해. 미안해. 다 내 탓이야.'
내 안의 목소리는 나를 극도의 신경 장애와 죄책감으로 몰고 간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 미안한 마음에서 빠져나올 구멍이 시멘트 덧칠로 완전히 막혀버린 듯 매일 매일이 미안해 하는 그녀는 미안하기 조차 지겹고 싫다.
아직 혼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이는 두리번 두리번 대느라 듣기 검사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결국 왼쪽 청력이 정상치 보다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아직 너무 어려서 변수 조절이 안되서 나온 결과일 거라는 위로의 말을 들었고, 병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어린이 보청기를 파는 가게에 잠깐 들러 제품 설명서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네번째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가는 그녀는 혼자 지하철을 탔다. 이제 몇 번의 심리치료라고 불리는 대화를 나눈 터라 그녀는 큰 기대도 없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다. 지난 번에 Dr. Ooi가 내 준 숙제를 하지 못한 그녀는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가져온 A4 용지의 ABC 워크시트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앉을 자리 없이 꽉 찬 지하철의 손잡이를 겨우 잡느라, 위로 쭉 뻗은 손목에 종이를 대고, 아무도 읽지 못할 것 같은 지렁이 모양의 글씨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꽤 바른 학창시절을 보냈던 그녀에게 숙제를 안해 가는 건 많이 부끄러운 일이라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겨우 세 장의 용지를 겨우 채우고 나니 오차드 역에 도착했다.
첫번째 Dr. Ooi를 만났던 공간으로 다시 안내돼었다. 그녀는 먼저 선뜻 ABC 워크 시트 용지를 꺼내기가 부끄러워서 혹시 물을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왜 보잔 소릴 안 할까? 마음 한 켠에 계속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온 A4용지 생각이 남아서 괜시리 언짢타.
그냥 짜증이 난 그녀는 Dr. Ooi가 묻는 질문도 가식적이이고, 내가 하는 답변도 어쩌면 광대같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그녀에 대한 불신이 생겨버려서 대부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 라고 일축해버린다. 결국 한 시간의 심리 치료 시간은 빈 공간을 채우려기 위한 대화로 끝나 버렸다. 내가 이 심리 치료를 왜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