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아, 재작년 여름 엄마 졸업식 기억나? 8월 말, 한여름 무더위가 여전히 한창이던 때였지. 엄마는 서른 살 봄에 박사 과정에 입학했는데, 서른 아홉 살 여름에 졸업해서 박사가 되었어. 장장 9년 반이 걸린 대장정이었지. 워킹맘인 엄마가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 쓰면서 노력했고, 또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지. 엄마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학교에 나가 실험하고 논문을 썼으니 아무래도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어.원래 박사가 되는 건 수년간 매일 연구실에 나가 하루종일 실험하고 논문 쓰는 데만 집중해야 가능한 일이거든. 엄마는 온전히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 못한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가량의 기간이 걸린 후에야 졸업 요건을 채울 수 있었고, 마침내 졸업을 위한 최종 논문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단다.
졸업 논문 심사에 통과하고 나면, 그 학기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교수님과 다른 학생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어. 엄마도 발표를 위해 하루 휴가를 내고 학교에 갔었지. 발표장에 모인 학생들중 엄마가 가장 학번이 높고 나이가 많더라. 엄마는 취업하고 4년이 지나 박사 과정에 입학했고, 직장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장 나이많은 학생이자 졸업하는 데 오래 걸린 학생이 됐지. 함께 발표하는 다른 학생들은 모두 엄마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린 것 같았어. 그 학생들은 석사마치고 바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거나석사와 박사 과정을 한 번에 밟고 졸업하는 학생들이었지.
엄마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늦게,서른아홉 살에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뭔가 '뒤떨어진' 학생일까? 그렇지는 않지. 엄마는 직장에서 업무를 하다가 학위를 더 가져야 할 필요를 느껴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거였으니까. 엄마가 공부를 더 해야 할 때를 엄마 스스로 결정한 거지.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반면 함께 졸업하는 다른 학생들은 먼저 학위를가진 후에 진로를 결정하기로한 거지. 다들 각자의 '때'를 선택했고, 그에 따라 노력을 했던 거야. 학위를 받는 시기는 학생들 각자가 정한 '때'가 중요한 요소가 된단다.
약 중에서도 이렇게 ‘때’와 관련된 약이 있어. 바로 키 크는 걸 조절하는 성장호르몬 주사지. 주사를 맞는 것으로 키가 더 클 수 있다니, 솔깃하지 않니? 요즘 아이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 핫한 이슈지. 성장호르몬 주사가 대체뭐길래 그럴까?
성장호르몬은 우리 몸의 뇌하수체 전엽에 있는 ‘성장호르몬 분비세포’에서 만들어지고 분비되는 호르몬이야. ‘소마토트로핀(somatotropin)’ 또는 사람 성장호르몬(human growth hormone, HGH)’이라고 하지. 성장호르몬은 191개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펩타이드 구조를 가진 호르몬이야.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비교적 적은 수로 연결된'단백질 조각'이라고 이해하면 쉬워)성장호르몬이 하는 일은 다양해. 뼈를 성장시키고 키가 얼마만큼 커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간에서 지방을 분해하게 하고 지방이 에너지로 활용되게 해서 몸의 에너지 사용량을 늘리고, 몸속의 물과 무기질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하기도 하지.
성장호르몬이 부족할 때, 외부에서 투여하기 위해 만든 게 성장호르몬 주사야.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과 유사하도록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소마트로핀(somatropin)’을 함유하지. 참고로,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약을 ‘유전자재조합의약품’이라고 해. ‘유전자재조합의약품’은 유전자조작 기술을 이용해서 원하는 단백질이나 펩타이드를 만드는 유전자를 대장균, 효모, 또는 동물세포에 넣고 배양해 만든 의약품이야. 우리 몸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단백질을 대량 생산해 약으로 만들 수 있고, 원하는 형태로도 변형시켜 만들 수 있지.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간단하게 요약한 그림이야. 성장호르몬 주사 성분인 '소마트로핀'도 이렇게 대장균에 유전자를 넣은 상태에서 대장균을 증식시켜 만들지. (출처=한겨레신문)
의학적으로 '키가 작다'고 말할 때는, 같은 성별의 또래 100명 중 키가 작은 앞의 2명에 해당하는 경우를 말해. 저신장이라고 해서 모두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아. 사춘기가 늦게 올 수도 있고 유전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지. 하지만 1년에 키가 4cm 이상 크지 않았다거나 같은 사이즈의 옷을 2년 이상 입는다면 의심해 볼 수 있어, 또는 같은 성별 친구들의 평균 키보다 10cm 이상 키가 작은 경우도 마찬가지야.
성장호르몬주사를 맞고 치료해야 하는 대상은 어린이와 성인으로 나눌 수 있어. 먼저 어린이의 경우는 성장호르몬 분비 부족과 터너 증후군 등 유전질환으로 인해 성장 부전을 겪고 있거나, 만성신부전증 또는 임신 주수에 비해 작게 태어난 이유로 성장이 느린 경우가 대상이야. 또 특별히 성장이 느린 원인이 없고 출생했을 때 체중도 정상이고 성장호르몬 분비도 정상이지만 신장이 작은 경우를 ‘소아 특발성 저신장증’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의사의 진단을 통해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이 될 수 있지. 그리고 성인의 경우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치료대상이 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성장호르몬 주사가 시판되고 있단다. (출처=메디칼타임즈)
성장호르몬 주사는 꾸준히, 그리고 주기적으로 투여해야 해. 성장호르몬 주사는 부모님이나 본인이 직접 몸에 주사하는,'자가투약' 주사야. 매일 허벅지 또는 엉덩이 부위의 피하조직에 돌아가며 주사하는데, 전날 주사한 부위에서 2~3cm에서 떨어진 곳에 주사해야 하지. 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손을 씻고 알코올 솜으로 주사 부위를 소독하는 건 기본이겠지? 그리고 몸에서 성장호르몬이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는 시간이 밤이니까, 자기 전 일정한 시간에 투여하는 것이 좋아. 성장호르몬 주사는 많이 아픈 주사는 아닌데, 주사를 매일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수 있어서 초등학생이 됐을 때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성장호르몬 주사는 단순히 키 크기를 원한다고 해서 그냥 맞을 수는 없어. 반드시 의사의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과 처방이 있어야만 투약할 수 있지.어린이의 경우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데, 시기는 빠를수록 좋고 성장이 끝날 때까지 치료를 지속해야 해.
보통 성장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처음 1년간 키가 가장 많이 크고 그 후로는 성장 속도가 점점 느려지게 돼. 뼈 나이 기준으로 남자아이의 경우 15~16세, 여자아이의 경우 14~15세, 그리고 키 기준으로 남자아이는 165cm, 여자아이는 153cm가 될 때까지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를 하지. 성장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일시적인 두통, 성장통, 손발부종, 그리고 척추측만증 등이 있어.
꼭 필요한 때만 치료를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장호르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어. 근육을 키우거나 에너지를 더 얻기 위해, 또는 노화를 방지하거나 체중을 감소시키기 위해 성장호르몬 투여를 하는 경우도 있단다. 하지만 건강한 성인이 성장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인데도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두통, 부종, 관절통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아주 미량만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호르몬 투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
의학적인 치료 이외에도, 생활 습관을 좋게 관리해 주면 키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밤에 일찍 잠들어 수면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서 성장호르몬이 제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그리고 규칙적으로 운동해서 에너지 대사를 왕성하게 하고, 영양을 고르게 섭취해서 뼈와 근육이 잘 클 수 있는 재료를 공급해야 하지. 보통 일주일에 3~4회, 30분 이상 땀이 나도록 운동해야 성장판이 자극된다고 해. 그리고 뼈가 크려면 뼈의 재료인 칼슘 섭취도 중요하겠지? 너무 단 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은 피해야 하고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는 게 무엇보다 도움이 되지. 그리고 뼈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낮에 30분 이상 햇빛을 쬐는 것도 키 크는 데 도움이 된단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몸의 성장 뿐 아니라 지적인 성장, 그러니까 공부에도 그런 '때'가 있어.
특별히 작은 키를 키우기 위해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면, 성장하는 시기에 맞춰 투약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어. 성장기가 지나면 성장호르몬을 투여해도 키 크는 효과는 볼 수 없으니까, 성장하는 ‘때’를 알고 그에 맞춰 약을 써야 하는 거지.
엄마가 생각하기에 몸의 성장 뿐 아니라 지적인 성장, 그러니까 공부에도 그런 '때'가 있어. 지금은 서윤이가 몸의 성장 뿐 아니라 머리와 마음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 시기지. 그래서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국어, 수학 말고도 여러 사회 예절에 대해 배우는 거란다. (까마득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십년 후에도 서윤이가 매일 학교에 가서 여러 시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스무 살이 되면 (아마도)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공부를 좀 더 깊게 하게 되겠지. 그게 서윤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가져야 할 ‘공부와 성장의 때’야. 때로는 마치 어른들이 다 정해놓은 걸 따르라는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이 배움의 '때'는 서윤이가 성장하는 데 무척 중요하고,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걸 꼭 기억해 주렴.
이렇게 각자가 가진 ‘때’가 다 있어. 서윤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그땐 너의 때를 직접 결정해야 하는 날도 올 거야.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새로 시작할 수도 있고, 결혼이나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을 결정할 수도 있지. 여기서 중요한 건, 내게 맞는 때를 내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내게 맞는 때를 잘 알려면, 스스로가 내리는 판단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해. 그러려면 평소에 너 자신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하지. 네가 뭘 좋아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를 말이야.
성장호르몬제가 때에 맞춰 키 크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것처럼, 서윤이 너의 ‘때’를 잘 알면 그걸 더 잘 활용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건 자기가 선택한 결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때 가능하지. 지금의 서윤이는, 인생에 필요한 경험을 점점 넓히고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 나가야 하는 시기야. 그리고 너의 때를 잘 알 수 있게 판단력을 키워주는 건, 지금 엄마가 서윤이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
각자의 '때'를 잘 알면 우리는 더 잘 클 수 있지. 서윤이와 엄마 둘 다에게 해당되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