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소설가가 있었어. <개미>라는 소설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프랑스 작가야. 엄마는 그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을 좋아했는데, 책에서 <뼈대>라는 제목의 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글은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바깥에 있는 것이 나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뼈가 몸 밖에 있으면 딱딱한 껍데기 형태가 되고, 그 안에서 보호받는 살은 물렁물렁해지다 못해 액체에 가까워지지. 만약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뭔가 침입하면 그 안의 살은 속수무책으로 타격을 입지. 반면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가늘고 단단한 막대 모양을 띠게 돼. 그러면 살은 몸 가장 바깥쪽에 있으면서 모든 위험에 노출되고, 수없이 많은 상처와 자극을 받으면서 저항력을 갖추게되지.
엄마가 좋아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출처=예스24)
중학생이었던 엄마는 작가의 고찰이 무척 신기했어. 그러고보니 동물 중에는 게나 곤충같이 겉껍질이 딱딱한 종류가 있는가 하면, 고양이나 물고기, 그리고 사람처럼 단단한 막대 모양의 뼈를 가진 종류도 있더라는 거지. 그리고 우리 몸 가장 바깥을 감싸고 있는 피부가 많은 침입과 자극을 받으면서, 그에 대응할 수 있게 방어력을 갖추도록 변해왔다는 걸 알게 됐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몸의 가장 바깥을 감싸고 있는 ‘살’, 즉 피부는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 몸 내부를 보호하고 있지. 마치 최전방에서 몸 안쪽의 중요한 것들을 지키는 ‘성벽’ 같은 역할을 하는 거지. 그 덕에 몸 안의 장기와 뼈, 근육이 자기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 피부는 ‘최전방’에 위치했다는 특징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곤 해. 넘어지거나 쓸려서 상처와 딱지가 생기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수분과 유분 균형이 조금만 무너져도 가렵거나 뭐가 나곤 하지. 벌레에 물려 붉게 부어오르기도 하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번식하기도 하고 말이야.
피부에 상처가 나거나 가려우면 우리는피부에 직접 연고를 바르지. '연고'는 짜서 바를 수 있도록 튜브에 담겨 있는 형태의 제품을 말해. 연고 말고도 로션, 크림, 겔처럼 피부에 바르도록 만든 제품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연고는 물보다 기름 성분을 훨씬 많이 함유하도록 만든 것이지. 기름 성분이 피부에 막을 형성해서 약효 성분이 다른 제형보다 좀 더 피부에 오래 머무를 수 있어.
우리가 피부에 많이 바르는 연고로는, 염증에 쓰는 것과 각종 감염에 쓰는 것이 있어. 염증에 쓰는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스테로이드 연고'가 있지. '스테로이드'는 우리 몸의 부신피질 호르몬('코르티솔'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어)과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만든 약이야. 부신피질 호르몬은 우리 몸이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염증반응과 면역반응을 억제해. 부신피질 호르몬과 비슷하게 일하도록 만든 약인 스테로이드는 다양한 염증 질환에 많이 사용되고 있어.
피부에 바르는 스테로이드 연고는 다양한 염증성 피부질환에 사용할 수 있어. 피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염증반응과 면역반응을 억제하기 때문에, 아토피성 피부염을 비롯해 접촉성 피부염, 습진 등에 확실한 효과를 내지.
스테로이드 연고는 강도와 제형에 따라 7단계로 분류돼 있지.(출처=대한소아과학회)
스테로이드 연고는 성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강도에 따라 7개 등급으로 나눌 수 있어. 1단계가 가장 강하고, 숫자가 커질수록 점점 약해지니7단계가 가장 약한 약이지. 증상이 어떤지, 어느 부위에 증상이 있는지에 따라 맞는 등급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써야 해. 사용하는 양과 방법도 중요한데, 연고는 성인 두 번째 손가락 마디 하나에 5mm 두께로 짰을 때 약 0.5g 정도 되는데, 이 정도가 두 손바닥 넓이만큼 바를 수 있는 양이라고 생각하고 바르면 돼. (이만큼을 'FTU(finger tip unit)'라고 해.) 바르는 부위마다 피부 두께가 다르니 사용하는 양도 달라. 정해진 양보다 너무 적거나 많이 바르면 약효를 제대로 볼 수 없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
부위별로, 나이별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연고 양이 FTU로 정해져 있어. (출처=서울경제)
스테로이드 연고를 쓸 때 또 주의할 점은, 감염된 피부에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피부가 세균에 감염되면 빨개지고 붓고 뜨거워지는데, 이 상태에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피부에 쓰게 되면 감염을 억제시키는 효과 때문에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스테로이드 연고는 효과가 확실한 대신에 잘못 썼을 때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 염증 반응을 억제하기 때문에 감염에 취약해지고 피부가 얇아지고 위축되는 부작용이야.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무조건 쓰지 않거나 순한 것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증상에 맞지 않는 너무 약한 것을 쓰거나 필요한 양보다 적게 쓰는 바람에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너무 오랫동안 쓰게 되면 원하는 효과 대신 부작용만 나타날 수 있지. 스테로이드 연고도 적정한 강도와 필요한 양을 정해진 기간만큼 사용하면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
염증에 쓰는 스테로이드 연고 뿐만 아니라 감염에 쓰는 항생제,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연고가 있어. (출처=중앙일보헬스미디어)
스테로이드 연고가 염증에 쓰이는 연고라면, 세균, 진균,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에 쓰는 연고도 있어.먼저 세균 감염에 사용되는 항생제 연고로는 ‘퓨시드산’, ‘무피로신’, ‘겐타마이신’, ‘바시트라신’, ‘네오마이신’ 성분의 연고가 있어. 상처가 생겨서 세균이 침투했을 때 균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 모든 집에 하나씩 가지고들 있는 ‘후시딘 연고’가 대표적인 항생제 연고야. 항생제 연고는 한 가지 연고만 너무 오래 사용하면 약이 잘 듣지 않는 내성이 생길 수 있어서, 5일 이내로 짧은 기간만 써야 해.
그리고 항진균제 연고는 곰팡이, 즉 진균에 감염됐을 때 사용해. 습하고 통풍이 잘 안 되는 발에 생기는 '무좀'이 대표적인 진균 감염이지. 항진균제 성분 연고로는 테르비나핀, 시클로피록스, 케토코나졸, 클로트리마졸등을 함유한 연고들이 있어. 진균 감염 치료는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하는데, 특히 항진균제 연고를 쓸 때 증상이 개선되는 것 같아보여도 정해진 치료 기간 동안 계속 꾸준히 써야만 효과를 볼 수 있어.
마지막으로 항바이러스제 연고는 입 안이나 입술 주변에 나타나는 단순 포진이나 대상 포진에 사용하지. 대표적인 항바이러스제 성분으로는 아시클로버와 리바비린이 있지. 바이러스 감염 치료를 위해 한 가지 약을 일주일 동안 사용해도 효과가 없거나 증상이 더 나빠지면 치료법을 바꿔봐야 해. 혹시 연고를 바르다가 자칫해서 다른 부위로 바이러스가 퍼질 수도 있으니 면봉이나 일회용 장갑을 이용해 그 부분에만 바르도록 해야 하지.
피부 연고를 바르기 전에는 손과 상처 부위를 깨끗이 하고, 면봉으로 덜어 사용하는 게 좋아. 그리고 연고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용기에 표시된 기한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뚜껑을 열면 그 시점부터 사용기간이 6개월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해야 해. 그래서 뚜껑을 개봉한 날짜를 따로 적어두고 사용하는 게 좋아. 사실 피부 연고를 한 번에 끝까지 다 쓰는 경우는 잘 없고, 필요할 때 약상자를 뒤져 예전에 쓰던 이리저리 비틀어진 걸 찾아내서 쓰곤 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안 바르느니만 못할 수 있으니 사용기한이 지난 건 과감히 버리고 새 연고를 사서 쓰도록 하자.
피부 연고제를 사용할 때도 지켜야 할 사항이 있어. (출처=식품의약품안전처 페이스북 페이지)
그리고 연고는 너무 적거나 많게 사용하면 안 되고 적정량 발라야 효과를 볼 수 있어. 그래서 처방받은 내용이나 설명서 대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해. 만약 연고를 발라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화끈거리고 통증과 가려움증이 생기면 그만 사용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베르베르 작가의 말대로, 피부는 우리 몸 가장 바깥에 위치해서 우리 몸 안쪽을 보호하고 있지. 그래서 피부 위에는 항상 많은 일이 생겨. 넘어져서 생긴 상처에 피가 나면 딱지가 생기고, 때론 그 자리에 흉터가 남지. 신발이나 손목시계에 피부가 닿아서 접촉성 피부염이 생기기도 하고 말이야. 이렇게 다양한 일을 겪는 피부에 쓰는 연고도 종류가 다양해.
피부에 생긴 질환은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지. 그렇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 항생제 연고가 필요한 곳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써서는 안 되고, 스테로이드 연고도 부위와 증상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바깥에 보인다고 해서 사용법을 가볍게 생각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잘 보이고 잘 아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거야.
피부 질환에 쓰는 연고처럼, 살면서 겪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잘 보이는 만큼알고 대처할 수 있지.엄마가 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 어떻게 흘러 가는지보이는 때가 오더라고.한 유명한 할머니 작가는책에서 '마흔 살이란 사는 게 뭔지대충 감 잡은 때'라고 말한 적이있어. 그 나이쯤 되면 살면서 어느 정도 쌓인 빅데이터가작동한다는 뜻이겠지. 사람마다 경험치의 종류와 양은 다르니 그 시기도 다르겠지만, 엄마의 경우도 마흔 살 무렵에야'뭔가 보이는 게' 생기더라고. 자연스레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해 아는 것도 늘어나고, 대처하는 방법도 좀더 알게 됐지. 그래서 네게 필요한 삶의 조언도 조금씩 나누어 줄 수 있겠구나생각했어. 아직은 서윤이 네게 마흔 살은 까마득하게 먼 나이 같겠지만, 언젠가 너도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잘 보이고 잘 아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게 될 거야. 마치 상처가 생겨 세균에 감염된 피부에는 항생제 연고를 발라 주고 염증이 생겨 가려운 피부에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 주는 것처럼말이야. 혹 경험치가 좀 더 필요하다고느껴진다면, 엄마가 늘 곁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엄마 것을 빌려 가도 좋아.(사실 엄마는 지금도 엄마의 엄마에게 그렇게 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