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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Jan 24. 2023

엄마, 엄마, 엄마

국수 나물

  2022년 한글날 특집으로 문화방송(MBC)에서 방영한 다큐가 있다. 충남 논산시 ‘찾아가는 한글 대학’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문화방송 아나운서 4명이 일일 선생님이 되어 일대일 맞춤 수업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낮은 문맹률 가운데 1%는 여성과 70대 이상 노인이 해당한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 말살 정책과 일본식 성명 강요로 우리글을 배울 수 없었고, 광복 후 6·25 전쟁 발발로 인한 가난 속에서 여성에게 배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막내가 78세, 평균나이 여든셋인 할머니 일곱 분이 한글을 배우러 경로당으로 하나둘씩 모였다. 이름하여 칠공주다. 한글 대학에 모여든 할머니들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렸다. 돌아다니느라 숙제를 미처 못했다는 할머니, 연필을 꼭 쥔 손으로 자음과 모음을 꾹꾹 눌러쓰는 할머니, 밭일하다가 흙밭에 호미로 이름을 써보는 할머니, 밤하늘 아래 소녀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공부 열심히 해보자는 할머니들 눈이 별빛 보다 반짝였다.


  논산 칠공주는 한글을 배우면서 시를 직접 지었고, 아나운서들은 한글 시 낭독회를 준비했다. 할머니 가족을 초대하고, 밭을 배경으로 무대를 마련했다. 화창한 가을날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논산 칠공주의 작은 낭독회>가 시작됐다. 할머니들은 직접 쓴 시를 들고 무대에 올라와 시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갔다. 스무 살 나에게 전하는 시를 지은 할머니 낭독을 들으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고였다. 할머니들은 한 분씩 나를 울리면서도 웃겼다. 그중 끊임없이 눈물을 흐르게 한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분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한글날 특집다큐 한글, 마침내 만나다 "MBC 시사교양 특집", 363회, 38:58, 2022. 10. 9.
어머이가 보고심다
                          - 조희수(87세)

어머이가 보고싶다
그 어려운 시절 그 춘 시절
보리밥도 배가 고팠다
어머이가 보고싶다
가을 김장때면 소금도 부족하여
생배추 시서 머고 다 그렇게 살았다
어머이가 보고싶다
춥고 춘 겨울에 얼은 두 손 잡아주며
나를 사랑해주던 어머이가 보고싶다


출처: 한글날 특집다큐 한글, 마침내 만나다 "MBC 시사교양 특집", 363회, 38:58, 2022. 10. 9.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읊조리던 할머니 연세는 87세였다.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린아이가 되고, 여전히 애틋하고, 그립고, 보고 싶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내 마음을 이렇게 묵직하게 울리는구나. 언젠가 SBS 예능 방송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엄마들에게 “엄마들이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이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엄마”라고 답했다. 엄마. 엄마란 존재는 대체 무엇이길래. 생각하면 이토록 뜨거울까. 엄마, 엄마.


  엄마라고 따라 부르니 어색하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 남매에게 엄마 대신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하셨고, 어릴 때부터 부른 어머니가 익숙해져서 엄마라는 호칭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어머니는 우리를 예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다고 하셨다. 아빠, 엄마 대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 높임말이 자연스럽게 베이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다시 한번, 엄마를 나지막이 불러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니 외할머니께서 떠나시던 날이 눈앞에 나타난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사진을 품에 안고, 외할머니댁 마당을 하염없이 걸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목 놓아 부르며. 목메어 우는 소리에 담긴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우리를 반겨주던 외할머니는 이제 계시지 않았다.


  명절이면 아침과 점심은 아버지 본가에서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어머니 본가로 넘어갔다.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마당에 들어가면 외할머니는 차 시동이 꺼지기도 전에 마중을 나오셨다. 외할머니는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셨다.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 있나.”라고 물으시고, 없다고 하면 다른 말 없이 전화를 그냥 끊으실 정도였다. 우리에게 건네신 말들은 “앉거라.”, “먹거라.”였고, 조금 더 길게 말씀하셔봤자 “어여 먹거라.”였다.


  명절 저녁 외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에는 제사상에 올라갔다 내려왔을 여러 음식을 비롯해 각종 나물무침, 된장찌개, 고추장 그리고 간장에 버무린 국수가 있었다. 나물처럼 비벼 먹는다고 국수 나물이라고 했다. 넓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 나물, 국수, 된장찌개, 고추장을 한데 넣고 비볐다. 국수 나물을 넣은 비빔밥은 아침부터 먹은 명절 음식으로 기름진 내장을 깔끔하게 닦아냈다. 북적대던 명절 마무리는 언제나 국수 나물 비빔밥이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시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끼리 방구석에 모여앉아 놀곤 했다. 그 옆엔 언제나 주전부리 쟁반이 놓여 있었는데, 외할머니는 쟁반이 빌 틈을 주지 않고 먹을거리를 채워주셨다. 그리곤 이런 우리 모습을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앉아계셨다.


  말씀이 워낙 없으셨던 분이라 외할머니께 들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나 기억에 남는 말은 거의 없다. 다만, 할머니께서 내시던 소리들은 기억한다. 비녀를 풀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사부작 빗질하던 소리, 베틀 위에서 달그락달그락하며 삼베 짜던 소리, 낯 씻으라며 떠다 준 차가운 지하수가 담긴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콸콸 붓던 소리, 빈 대야를 시멘트 마당에 내려놓을 때 나던 쨍그랑 소리들.


  쨍그랑 소리가 나던 그 마당에서, 어머니는 엄마를 목이 메어라 부르고 또 불렀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싫은 훗날이지만, 어머니가 떠나게 되는 날에 난 어머니를 부르게 될까 엄마를 부르게 될까.



※ 성평등 호칭에 따라 외할머니를 ‘지역명+할머니’로 부르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어린 시절 부르던 외할머니를 한 번 더 부르고 싶은 마음에 ‘외할머니’ 호칭을 그대로 썼습니다.

 







어머니가 알려준 그대로, 정리하지 않은 조리법

국수 나물


삶은 국수 찬물로 씻고 물기 빼기

국수 삶을 땐 물 넘칠 수 있으니 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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