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고추장
어머니와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몇 년 전에 어머니와 제주도를 다녀오고, 앞으로 단둘이 많이 다니자고 했다. 이번에는 청량리역과 안동역을 잇는 철도 중앙선 가운데인 단양으로 정했다. 나는 하행선을 타고 어머니는 상행선을 타고 단양역에서 만났다. 나보다 10분 일찍 온 어머니는 단양역 맞이방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기었다.
기차를 타고 단양을 지나갈 때면 창밖으로 보이던 길이 있다. 단양강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다. 강 위를 걷는 저곳은 무엇일까, 검색해 보았더니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로 '잔도'라고 한단다. 사계절 내내 궁금하고 예뻐 보였던 그 잔도를 어머니와 걷고 싶었다. 어머니와 이른 시각에 다다라서인지 잔도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부드러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유유히 흐르는 단양강 위를 걸었다. 어머니가 몇 년 전 이곳에 온 적이 있다길래 왔던 곳을 또 오면 재미없지 않냐고 하니, “누구랑 오는지가 다르니까. 딸이랑 오면 더 좋지.” 하신다.
잔도 끝은 단양 전경을 내려다보는 전망대 가는 길로 이어진다. 전망대 매표소에 서 있던 안내원이 경로자는 천 원 할인이라며 어머니에게 나이를 물었다. 나이 확인을 한 안내원은 경로우대 부분을 누르고 입장권을 발급해 줬다. 어머니가 이제 우대받는 경로자 위치에 들어섰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도 이제 경로우대 받는 할매 다 됐다.” 하는 어머니에게 “그래도 예뻐요.” 했더니, “딸이니까 그래 봐 주는 거지.” 하면서 살며시 웃으셨다. 전망대에는 아래가 훤히 비치는 유리 바닥이 있었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덜덜 떨며 유리 위에 발을 내디뎠다. 어머니는 내가 겁먹을까 “괜찮아. 나랑 같이 가잖아.” 하면서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우대는 외려 경로자인 어머니에게 내가 받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걸어왔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잔도를 다시 걸었다. 전망대 쪽으로 오면서 봤던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바위틈 곳곳에 구절초가 피어있었다. 어머니는 저 꽃씨들은 바위 사이에서 뿌리를 어떻게 내려 꽃을 피웠을까, 가을꽃도 참 예뻐, 와 같은 말들을 하며 가방 안에서 쑥떡을 꺼내셨다. “올봄에 한 떡인데 냉동실에 하나 남아 있길래 딸 주려고 가져왔지. 딸이 좋아하잖아.” 하며. 이 가을에 쑥떡이라니. 봄향을 입에 베어 물며 파란 가을 하늘과 하얀 구름이 내비치는 강물 위를 어머니와 계속 걸었다.
버스를 타고 전통시장으로 이동했다. 각 상점에서 시식으로 내어놓은 유과, 강정, 부각, 떡갈비들을 먹다 보니 뱃속이 차올랐다. 단양에서 유명하다는 쏘가리 매운탕을 먹어야 하는데, 먹을거리가 눈에 자꾸 보이면 어쩌냐면서도 시장 안에서 먹는 시식이 재미있어 멈추지 못했다. 단양은 마늘이 유명한지 마늘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이 보였다. 마늘 떡갈비, 마늘 통닭, 마늘빵, 마늘장아찌. 마늘이 들어간 음식들을 본 어머니는 “나는 마늘 고추장을 맛있게 잘 만들지.” 하셨다.
어머니는 가볍게 알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마늘 고추장을 만들어 우리 남매에게 보내주신다. 찌개 끓일 때 다진 마늘과 고추장을 따로 넣을 필요 없이 마늘 고추장 두어 술만 떠서 넣으면 되고, 무침을 요리할 때는 마늘 고추장 한 술만 뜨면 되니 편하다. 고기 먹을 때 된장 대신 찍어 먹어도 맛이 좋다. 마늘 떡볶이를 먹고 싶을 때 듬뿍 넣기도 한다. 여기저기 두루두루 그 쓰임이 아주 좋은 마늘 고추장이다.
쏘가리 매운탕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사장님은 초벌로 끓인 매운탕 냄비를 들고 오며 조금만 더 끓여 드시라고 했다. 끓고 있는 냄비에서 올라오는 매콤한 냄새를 맡으며 이런 매운탕을 만들 때도 마늘 고추장을 넣으면 딱 맞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안동에서 종종 먹던 메기매운탕 이야기를 하는 사이 쏘가리가 먹기 좋게 익었다.
쏘가리 가시를 바르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딸과 여행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답답하다고 하셨단다.
“딸이랑 점심 먹으러 가면 한나절은 걸리겠다. 먹고 말하고, 먹고 말하고, 그래 먹고 앉아있는 걸 어떻게 기다리노. 아이고 답답해래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예상해 보니더.”
“아이고 답답해래이.”
아버지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밥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먹어야 맛있어요.” 했고, 어머니는 “그래. 맞다. 천천히 먹자.” 하셨다. 늘 그렇듯,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어머니가 어쩐 일로 막걸리를 마시자고 하셨다. 제주도 여행 갔을 때 둘이 한 병을 못 비웠던 우리는 망설이다가 남으면 남기자며 한 병을 주문했다. 매운탕이 매워서 한 컵, 먹다 보니 비린 맛이 감돌아서 또 한 컵,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나는 한 병을 어느새 다 비웠다. 내가 마지막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자마자 어머니는 “한 시간 반이다.” 했고, 우리는 크게 웃었다. 답답하다고 고개를 젓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시장에서 시식하고 매운탕까지 먹은 상태라 배가 부를 때까지 불렀다. 어머니와 나는 소화시킬 겸 식당 앞 남한강 변을 걸었다. 걷다 보니 단양 관광 안내도가 보였고, 가까운 곳에 산림욕장이 있었다. 숲을 좋아하는 우리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초입에 들어서니 산내음이 풍겼고, 어머니는 “와, 좋아. 이런 게 좋지.” 하며 산 공기를 들이마셨다. 시간상 높이는 못 올라갔고, 초입 부근 잣나무 숲길을 걸었다. 유명지는 아닌 듯해서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더 좋았던 어머니와 나는 숲길에서 폴짝폴짝 뛰어놀았다. 정말 말 그대로, 아이들처럼 폴짝폴짝.
산림욕장 아래 작은 마을을 지나니 남한강이 다시 보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조금만 걸어도 강이 보이는 단양이었다. 어머니는 산길과 강변은 몇 시간씩 걸어도 좋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다. 대로변 소음을 들으며 걷는 한 시간과 자연 소리를 들으며 걷는 한 시간은 차이가 크다. 어머니는 코스모스, 메밀꽃, 이름 모를 가을꽃들을 하나하나씩 눈에 예쁘게 담으며 걷다가 일순 무엇인가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하셨다. 큰 나무였다.
“요즘 잘 못 보던 플라타너스네. 어릴 때 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숨바꼭질하고 그랬는데.”
우리는 나무 아래 긴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강물은 잔잔하게 흘렀고, 바람은 달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갈등과 관계 속에서 오는 고민을 꺼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한 쪽은 나였고, 어머니는 머리로 생각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넓게 써보라고 했다. 그 바탕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기였다. 다양한 매체에서도 강조하는 지침, 알고 있다. 오래도록 질리도록 들어서 알고 있지만, 내가 그릇된다고 생각하는 점들까지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 그 자체가 퍽 힘들다.
"우리 딸은 마음 넓게 쓰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속 좁게 살면 결국 니가 힘들데이."
복잡한 생각들은 강물에 우선 흘려보내기로 하고, 어머니와 나는 단양역에서 헤어졌다. 올 때와는 다르게 나는 상행선을 타고 어머니는 하행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내게 남편은 여행이 즐거웠냐고 물었다. 나는 "응! 발길 가는 대로 걷고 먹고 쉬다 왔어.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니까 좋아."하고 답했다. 그날 아버지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쉬엄쉬엄 가며 놀며 가며 놀며 다녀왔니더. 이것 저것 오물조물 먹고 시장 구경도 하고. 백 퍼센트 만족! 딸하고 둘이 여행 스타일이 맞는 것 같네."
발길 가는 대로 가고,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쉬는 여행.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가면 가는 대로, 하면 하는 대로, 보이면 보이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둬."라던 어머니 말이 이번에 다녀온 여행과 겹친다. 여행하듯 누군가를 무언가를 바라본다면 마음이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내게 마음 딱 맞는 여행 친구가 생겼듯이.
엿기름을 물에 불리고 거르기
엿기름 거른 물을 밥에 넣고 휘젓기-전기밥솥에 보온으로
8시간 후에 쌀이 10~20알 동동 떠 있으면, 찜통에 넣고 2시간 끓이기
끓일 때 쌀 조청 넣고 같이 끓이기
식으면 메줏가루, 밀 띄운 가루, 고춧가루 3근, 소금, 매실, 마늘 100통 정도 넣기
소금은 간 보면서 넣기
소주 조금 넣기(곰팡이 방지)
몇 개월 발효 후 먹기
-12월쯤 해두고 3~4월쯤 먹으면 맛있어!
* 고추장에 다진 마늘만 넣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에게 마늘 고추장 만드는 방법을 물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재료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줄 이제야 알았다. 따라서 만들 자신이 도저히 없다.
어머니만큼 마음이 넓어지는 그때가 되면 한번 도전해 보려나. 아직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