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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Nov 14. 2023

마주한 슬픔

미역국

  처음부터 비옥한 땅은 아니었다. 땅속 깊이 돌덩이가 박혀 있고 자갈이 자잘한 땅이었다. 싹을 틔워 과실을 수확하기에는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돌부리를 잡아당겨 뽑아내고, 거친 땅을 다듬어 옥토로 만들었다. 시간을 들여 기름지게 만든 땅에 어느 날 싹 하나가 올라왔다. 선물처럼 돋아난 새싹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새싹을 통해 느낀 축복은 온 세상이 은혜롭고 성스러워 하루하루를 경이롭게 맞이하게 했다. 나란 사람은 축복이란 개념을 이제껏 잘못 알고 있었거나 축복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새싹은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예고 없이. 밤사이 도둑고양이가 밟고 지나갔는지, 들개가 뜯어 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땅은 이제 더 이상 움도 싹도 없을 불모라고 생각했다.


  증발해 버린 새싹이 잊힐 즈음, 새로운 싹이 움텄다. 햇살과 물과 바람을 골고루 주고, 영양분도 잊지 않았다. 여름을 보내는 동안 한 잎 두 잎 잎이 늘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어 나왔다. 꽃잎도 피었다. 어여쁜 암꽃이었다. 가을을 보내는 동안 작지만 생김새는 다 갖춘 열매가 맺혔다. 열매가 자라는 시간이 녹록지는 않았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은 흔들리며 울렁거렸고, 땅 곳곳에는 붉은 반점이 생겼다. 괴로웠지만 견뎌낼 만한 기쁜 날들이었다. 이듬해 봄이면 열매가 내 손 안에 담길 테니까. 그럴 줄 알았으니까.


  열매는 특별했다. 열매 씨앗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구멍 난 씨앗으로는 열매가 숨쉬기 힘들었다. 열매는 더 자라기 어려웠다. 날마다 잘 자라라 부르던 노래는 모진 현실 앞에 목이 메어 더는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에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가을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던 이 계절, 3년 전 오늘 열매는 떠나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매 순간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내고 미역국을 끓여 먹이셨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는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깨워 슬픔을 서둘러 종결했다. 슬픔을 깊이 들여다보고 보듬어 주는 법을 몰라 어두운 방 안에 가두고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예상보다는 괜찮은 날들을 보냈지만 빗장은 언제 녹아내릴지 모를 얼음 막대였고, 얼음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 녹아내렸다.


  볕 좋은 오후였다.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손주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에 행복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나도 꿈꾸었던 일, 나는 하지 못한 일, 나는 지어드리지 못한 얼굴. 열매가 떠나가고 한 달쯤 뒤, 동생네 부부 사이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첫 아이 출산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내게 전화하셨다. 아버지는 “딸... 괜찮지?” 하며 흐느껴 우셨다. 부모님은 첫 손자를 온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하셨다.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을 부모님이 떠올라 나는 하염없이 무너졌다.


  슬픔은 막고 서있던 문을 박차고 거세게 솟구쳤다. 그렇게 마주한 슬픔은 가여웠다. 나를 왜 위로하지 않느냐고 울부짖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뒤 슬픔을 바라보며 명상하고, 슬픔과 함께 걷고, 슬픔을 드러내고자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 번은 세상 밖으로 꺼내 허공에 흩뿌리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처연한 아픔이 한 줌 사그라들까, 하는 마음이다. 슬픔은 종결한다고 종결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알려준 그대로, 정리하지 않은 조리법

미역국


미역 한 시간 정도 불리기

깨끗하게 씻고 건져서 물기 빼기

참기름 넣고 미역과 소고기 볶기

쌀뜨물 넣기(없으면 그냥 물)

굵은소금과 집간장(조선간장)으로 간하기

푹 끓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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