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오랜 친구와 채식당을 찾았다. 둘 다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라 좋은 식재료를 쓰는 식당을 알아내면 이 친구와 함께하려 한다. 친구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운동장 조회를 하러 반 아이들과 내려가는 계단에서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 너랑 친구 하고 싶어.” 보통 한동네에 살거나 학교에서 어울리며 친구를 자연스럽게 사귀었던 내게, 누군가 친구 하고 싶다며 다가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난 신선함을 느끼며 그러자고 했다.
반에서 같은 성(姓)이 우리 둘뿐이었고, 앞뒤로 앉은 데다 집도 가깝고, 부모님 직업도 같아서 우리에겐 서로 공감하고 공유할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그때부터 친구와는 30년 가까이 많은 일상을 함께 해왔고, 살아가면서 만나는 굵직한 경험을 비슷한 시기에 겪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서울에 올라왔고, 한 동네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같은 해 같은 달에 결혼했으며, 개명도 하였다(난 한자 뜻만 변경하였지만). 전반적으로 인생사가 닮은 친구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 내가 쓴 브런치 글을 읽었다며 말을 꺼낸다.
친구는 내가 쓴 ‘어머니’ 글들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글에서 만난 지난 시절이 그립고, 어린 날 우리 집에 놀러 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되살아나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몇 번씩 들었단다. 친구는 글 속 어머니를 통해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내 행동과 말, 생활 습관들을 이해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눈물을 왈칵 쏟으며, “난 진짜 너희 어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도 건강하셔야지만 너희 어머니가 진짜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어. 진짜. 진짜.” 하며 눈물을 계속 흘렸다. 나도 덩달아서 눈물이 났고, 우리는 한갓진 일요일 오전에 찾은 식당에서 서로서로 건강하고 부모님도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 친구가 그랬다. “난 너희 어머니가 좋은 점만 말해서, 넌 장점이 많은 친구구나 생각했어. 그리고 어머니가 언제나 밝게 웃기만 하셔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없는 줄 알았어.”
어머니는 나에 관하여 어떤 이야기를 하셨길래, 친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찌 보면 자식 자랑으로 비치겠으나 어머니는 자랑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도 부정적이고 어두운 일은 드러내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철석같이 믿으시는 분이다. “귀찮아.”, “싫어.” 같은 부정어를 내뱉으면 “그런 말 자꾸 하면 그런 일들만 생겨. 긍정적으로 생각해.” 하셨고, “날씨 너무 더워서 짜증 나.” 하면 “니가 아무리 짜증 내도 니 힘으로 더운 날씨를 바꿀 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여라.”라고 하셨다. 가족 중 누군가 아파서 걱정하며 울고만 있으면, “운다고 병이 사라지나. 병원이 있고 약이 있는데 울고만 있으면 뭐하겠노.” 하셨다. 어머니는 좋은 일, 기쁜 일들 위주로 생각하고 힘든 상황들은 긍정하려 애쓰셨다. 이런 어머니이기에 딸과 아들 이야기들은 뜻하지 않은 자식 자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엔 어머니에게 자랑이 될 만한 기쁨 거리를 제법 만들어 드린 딸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책상 정리하기를 좋아하고, 청소를 하면 아주 깔끔히 잘했다고 한다. 집안 곳곳 물건 정리 정돈도 곧잘 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세상에! 우리 딸이 청소한 거 보면 얼음 알 같다.” 하며 칭찬하셨고, 그 칭찬에 신이 난 나는 부모님 옷장이나 남동생 옷장 문을 열며 여기 옷 정리도 내가 다 하고 싶다며 도맡아 하기를 즐겼다.
책 읽기도 그렇게 좋아했단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자기 전까지도 누워서 책 읽기를 좋아해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기억 속에도 어머니 손 잡고 시장에 따라갈 때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갔을 정도로 틈만 나면 책을 펼쳤다. 동화책 전집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도 난다. 1권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한 권씩 완독해서 전집을 다 읽었을 때 느꼈던 뿌듯함이 아직 생생하다.
학교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은 어머니에게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우수한 성적은 중학교까지는 이어졌으나 고등학교를 가면서부터 서서히 가라앉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예전만 못한 성적표는 어머니에게 내심 실망을 안겼을지 모른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으나 상위권이던 아이가 이젠 그렇지 않으니 여간 아쉬운 마음이 컸으리라. 성적 우수생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교를 갔다.
대학교에 가고 아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기쁨은커녕 걱정거리를 만들어 드리는 날들이 계속이었다. 진로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다가 도서관 사서를 하기 위해 이리 돌아가고 저리 돌아가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머니는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마음 졸이며 채근하고 싶으셨겠지만, 좀 더 나은 직장에 미련을 보이고 싶으셨겠지만. 딸이 들었을 때 의욕이 떨어지는 말, 기분 상할 말, 딸에게 했을 때 부정적으로 다가갈 말들은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잘 찾아가도록 곁에서 가만히 나를 응원해 주고만 계셨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우리 남매를 올곧은 쪽으로 이끌고는 가되, 어머니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저 알아서 하는 거지, 뭐.”하며 우리를 지켜보셨다. 분명 못마땅한 모습들이 많았을 텐데도 그 불만족스러운 마음들은 속으로 삼키셨다. “상대가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을 하면 뭐가 좋겠노. 그 말을 하는 나도 기분 나쁘고 듣는 상대도 기분 나쁜데.” 하며 부정적인 생각과 말은 세상 쓸데없다고 하셨다. 부정보다는 긍정하는 마음은 작은 행동을 큰 기쁨으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음을 어머니를 통해 깨닫는다. 어머니에게 내재한 긍정이 있었기에, 사소한 행동들이 어머니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갔음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밥만 먹어도 잘했다, 방 정리를 조금만 해도 잘했다, 하는 칭찬은 내가 잘해서 나온 말들이 아니었다.
그저 제 갈 길을 잘 가기만을, 그저 그 모습 그대로를 잘 지키기만을, 곁에서 잠잠히 지켜보는 어머니 시선은 마치 부침 옆에 놓인 작은 간장 같다. 감각할 수 있는 거리에서 긍정 가득한 눈길로 나를 지켜봐 주는 어머니 마음이 꼭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간장 같다.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청양고추, 파, 통깨 같은 재료를 섞어 만든 간장이 부침 맛을 돋우어 주듯 사랑, 믿음, 수용, 이해, 용기, 격려와 같은 긍정 정서만으로 꽉 찬 어머니 성정은 나를 나답게 키워 주었다.
덧붙이고 싶은 말 하나.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간다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내 성향을 직면했다. 단 1점 차로 등수 차이가 확 밀려나는 학업 분위기는 나와 맞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 1점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고 수능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치열했지만, 나는 그 1점 때문에 욕심부리고 싶지 않고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본체 승리욕이 없고, 회피하는 성향은 점수 차로 예민해지는 환경에서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그렇게 무엇 하나 특출나지 않은 학생으로 그냥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성향은 중요했다.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일자리라도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거나 실적을 내야 하는 일자리는 내게 맞지 않았다. 나를 중심으로 일하기보다 뒤에서 옆에서 조력하는 일자리를 선호했다. 그렇게 찾은 교수학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학교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은 내게 제격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부침 옆에 놓인 간장 같다고 생각하곤 했다. 작지만 필요한 간장처럼, 내 위치도 그렇게 놓아두고 싶다.
덧붙이고 싶은 말 둘.
내게 글쓰기는 멀게만 느껴지던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솔직하게 끄집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글을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쑥스러웠다. 처음엔 남편에게만, 다음은 가족에게만, 그다음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시작으로 가까운 이들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서서히 알렸다. 가까울수록 민망하고 어색한 마음이 갑절이 되어 용기는 여러 곱절 필요했다.
어머니에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했다. 어머니는 예상외로 아주 기뻐하셨다. 딸이 글 쓰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기뻐하셨다. 브런치에 글 한 편을 올리면 어머니는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좋아요’를 누른다. 2년 전 브런치에 쓴 학교도서관 사서 이야기를 보고, 한 교육 콘텐츠 플랫폼이 학교도서관 아이들을 주제로 연재 요청을 했다. 어머니는 그곳에도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며 로그인하는 방법을 알려달라 하셨다. ‘좋아요’ 안 눌러도 된다고 했더니, 안된단다. 꼭 눌러야 한단다. 로그인 방법을 알려드리자 어김없이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잘 썼다고 글 좋다고 칭찬한다. 어머니는 여전히 긍정하는 마음으로 나를 기르고 계신다. 글을 쓴다고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잘했다.
우리 어머니가 건강하시기를 바란다며 울어줄 친구는 또 어디 있으랴. 진심 어린 눈물을 흘려준 오랜 친구에게도 글 쓴다고 말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기쁘다.
※ 연재 글을 올렸던 교육 콘텐츠 플랫폼은 '스쿨잼'입니다. 저는 1년 반 짧게 썼지만, 유익한 자료들이 많으니 초중고 자녀가 있거나 교육 현장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학교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주제로 2022. 1.~2023. 6. 동안 연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