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지하철 내부 전광판 영상에서 ‘새뜻하다’ 뜻을 묻는 한국어 퀴즈가 나왔다. ‘새뜻하다’는 새롭고 산뜻하다는 뜻이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 새로운 봄, 모두가 새뜻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도서관 창문을 열었다. 내려다본 창밖에는 살구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살구나무에 꽃이 피면 3월은 끝나간다. 살구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면, 운동장 반대편에 있는 벚꽃잎이 하나둘 피어난다. 그럼 난 이제 이 봄을 어여삐 즐긴다.
작년 4월 벚꽃이 피기 시작하던 즈음, 어머니에게 안동에는 벚꽃이 많이 피었냐고 물었다. 서울보다 아래쪽인 지역이라 벌써 만개했다고, 곧 있으면 꽃비가 내리겠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이신다. “예전에 장사할 때는 쉬는 날 없이 가게 문을 열어서 벚꽃 보러 가지도 못했잖아. 벚꽃이 예쁜지 모르고 지내다 어느 해에 한 번 나가봤다가 감동했는데. 감동해서 꼴깍 넘어갔잖아.” 짧은 순간 피고 지는 꽃구경은 어머니에게 사치였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가게 문을 1분이라도 더 늦게까지 열어두었다. 어머니는 궁색하지 않은 선에서 아낄 수 있을 만큼 아꼈다. 모든 시간과 모든 물건을.
어머니는 물건을 오래 쓰신다. 세련되고 편리한 기능이 추가된 상품이 출시되어도 가전제품은 수명이 다 됐을 때 처분한다. 가장 오래된 우리 집 가전제품은 선풍기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볼 법한 1984년도에 샀다는 파란색 날개가 달린 선풍기. 선풍기 고개는 앞으로 자꾸만 고꾸라지고 보호망 고정력도 약해졌지만, 선풍기는 보호망에 묶어둔 케이블 타이에 고개를 의지한 채 파란 날개를 힘차게 돌린다. 우리 집에 한 번 들어온 제품은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 어머니는 1996년도에 산 냉장고를 25년간 썼고, 1994년도에 산 전자레인지를 얼마 전에 교체했다. 가전제품은 고장 나지 않으면 절대 버리지 않는 분인데, 수리해서 쓰고 싶어도 부품이 없어서 새로 장만해야 하는 이 시대 가전은 수명이 짧아서 불만이다. “가전제품 회사에서는 날 미워하겠지만 고장 안 났는데 버릴 일이 있나.” 하는 어머니. 그러면서도 최근에 세탁기를 바꿨는데, 스마트폰 연동 기능들이 아주 신통방통하다며 요즘 제품이 좋긴 좋다고 하신다.
가전제품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가 입다가 싫증 난 옷이나 유행 지난 옷을 쉽게 버리지 않고 입으셨다. 영화 〈건축학개론〉에도 나온 장면이다. 서른다섯 승민은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먹먹해한다. 그 옷은 15년 전 승민이 스무 살이었을 적에 집어 던진 옷이었다. 입고 있던 옷이 유명 의류 브랜드 모조품이란 사실을 알고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용식 엄마도 2002 월드컵 붉은악마 티셔츠를 여태 입고 있다. 용식은 그 옷이 언제 적 옷이냐며 그 옷 좀 그만 입으라고 엄마에게 화를 낸다.
어머니는 내가 입고 싶다고 졸라서 사놓고는 유행이 지났다는 까닭으로 입지 않던 긴 기장 코트를 수선해 재킷으로 입으셨고, 옷장 속에 잠들어 있던 남동생 외투를 꺼내 입으셨다. 예전 사진첩을 들여다보면 우리 남매가 입었던 외투를 걸친 어머니 사진이 더러 보인다. 어머니는 유행이 대수냐며 외투는 따뜻하면 그만이다고 하셨다. 쇼핑을 즐기지도 않으셨다. 멋 내고 뽐내면서 장사를 어떻게 하냐며, 화려한 옷은 입고 나갈 곳도 없고, 옷은 편하면 되고, 춥고 더운 날씨에 체온을 보호해 주는 옷, 그런 옷이면 괜찮다고 하셨다.
옷에 단추가 떨어졌을 때, 실밥이 풀렸을 때, 어머니는 반짇고리함을 꺼내 오셨다. 반짇고리함도 우리 집에서 오래된 물건 중 하나이다. 함 뚜껑을 열면 어릴 적부터 쭉 봐오던 실뭉치와 가위가 그대로 들어있다. 놀랍게도 이 함을 열면 어느 하루가 함께 열린다. 어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고 있고 그 곁에서 나는 남동생과 뒹굴뒹굴하며 놀고 있다. 오랜 반짇고리함에는 어린 시절 평화로웠던 어느 날도 들어있다.
부엌에서도 어머니는 검소하다. 일회용품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고, 한 번 쓴 일회용품은 재사용하였다. 일회용기는 깨끗하게 씻어서 우리 남매에게 반찬 보낼 때 쓰였고, 비닐은 씻고 말려 여러 번 썼고, 페트병에는 외출할 때 마실 물을 담았다. 절약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환경을 생각해서 일회용품은 줄여야 한다고 말하셨다. 요즘이야 ‘텀블러 사용’, ‘용기내 캠페인’ 등 환경보호 실천법이 많지만 어머니는 검소한 생활을 통해 일찍부터 지구를 아끼고 계셨고 우리는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냉장고 안은 더욱더 검소하다. 어머니는 냉장고에 보관할 양만 장을 봐왔고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어중간한 양으로 남아있는 반찬들은 한데 모아 비빔밥을 했고, 자투리 채소들은 된장찌개에 넣었다. 콩나물국이 남으면 그 국물에 라면을 넣고 끓였다. 미역국이 남아도 라면을 넣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남은 국에 들어간 라면은 우리 남매 끼니 해결을 위한 유인책이었지 싶다. 남은 국을 먹이기는 해야겠는데, 몇 번 먹었던 국을 또 먹이자니 질려할까 봐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으로 식욕을 자극하려던 어머니 계획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하지만 어머니 계획과는 다르게 우리는 국에 들어간 라면을 맛없어했다. 짭조름한 라면스프 맛이 나야 하는데, 다른 국물과 만난 스프 맛은 대체로 밍밍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어머니가 라면을 끓이려 하면, 남동생이 얼른 나서서 라면만 넣은 라면을 끓이곤 했다.
어머니는 식재료 하나하나도 살뜰히 활용했다. 우리 집에는 농사짓는 친척과 지인들에게 받은 식재료가 언제나 쌓여있었는데, 어머니는 이 식재료들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를 다 알기에 낭비 없이 소중히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배추 한 포기만 있어도 해 먹을 음식이 김치, 배추쌈, 배추전, 배추무침, 배추된장국 등 여러 가지였다. 배추뿐인가. 무나물, 무생채, 무전, 무조림, 뭇국 등 무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다. 배추와 무의 변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춧잎과 무청을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 말리면 이들은 시래기로 다시 태어난다. 시래기는 또다시 시래기나물, 시래기밥, 시래깃국으로 변신한다. 버릴 부분 하나 없는 검박한 재료이다.
어머니는 무청을 엮어 집 담벼락에서 겨우내 말렸다. 겨울바람과 겨울 햇살로 잘 말린 시래기는 푹 삶겨 또 다른 모습으로 밥상 위에 오른다. 어머니는 시래기와 냉이, 무, 파, 콩가루를 찜기에 넣고 푹 쪘다. 찐 시래기와 냉이는 서로 어우러져 겨울과 봄이 만나는 맛을 낸다. 햇살은 따사로워도 바람은 찬 계절과 시래기 냉이 찜은 제법 어울린다. 어머니는 이 찜을 ‘시래기 냉이 콩가루 찜’이라고 부르셨다. 시래기만 넣으면 이 맛이 안 나는데, 콩가루를 넣으면 고소하고 단맛이 감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입춘이 다가올 때면 이 찜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이파리 하나, 줄기 하나, 무엇도 버려짐 없이 다시 태어나 제 쓰임을 다하는 시래기는 물건들을 아끼고 재사용하는 검소한 어머니 생활 습관과 닮았다. 어머니는 “낭비를 하지 않을 뿐. 궁핍한 삶은 아니다.” 하셨다. 궁색한 사람만큼 보잘것없는 게 없다며, 검소하지만 궁색하게 살지는 않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시간이 헛되지 않게, 씀씀이가 헤프지 않게, 아껴 쓰고 다시 썼을 뿐이라고 한다. 오래되었을지라도, 본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어머니 생활상이 반영된 모든 것들이 새뜻하기만 하다.
어머니에게 이 찜 만들 때 힘드셨겠다고 했더니, “힘든 일 하나도 없어. 어머니는 쉬워.”하신다. 무청도, 배춧잎도, 냉이도 없는 나는 만들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