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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재 Sep 28. 2024

우리 어머니

1996년 10월 29일 화요일 일기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밥상을 차리는 일이었다. 학교 갔다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도 않은데, 일찍 오나 늦게 오나 어머니는 내가 도착하면 밥상을 뚝딱 차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밥솥 안에는 따뜻한 밥이 언제나 당연하게 있는 줄로만 알았다. 


  사춘기 때 어머니한테 하는 크고도 유일한 반항은 밥 안 먹기였다. 밥을 안 먹으면 그렇게나 속상해하셨으니까. 남동생 밥 먹이려고 밥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놀이터까지 쫓아갔다는 일은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일화다. 나 역시 아버지한테 야단맞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밥숟가락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어머니가 옆에서 천천히 마저 먹으라고 하셨으니까. 


  어머니에게 밥은 그만큼 중요했다.


  부모님 품을 떠나 자취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물으셨다. 밥은 먹었나. 밥은 뭐 해 먹었노.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그 중요한 밥을 잘 차려 먹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물었고, 하나씩 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먹다 보니, 음식 만들기란 시간과 정성이 꽤 들어감을 알았다. 더구나 어머니가 안동에서 보내준 식재료를 가지고 아무렇게나 대충해 먹어버리면 큰 잘못을 저지른 듯이 마음이 불편했다.


  자취 8년, 주부 9년 차여도 손에 익지 않는 칼질, 속도, 간 조절 실패. 음식 만드는 일은 여전히 서툴지만, 어느새 음식 재료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려는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수없이 많은 날 속 음식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알려준 방법대로 음식을 따라 만들고, 어머니와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글로 남겼다. 음식들은 어머니가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 혼수 그릇에 담았다. 무언가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그 마음을 닮고 싶어서. 이러다 보면 어머니가 가진 정성스러움, 올곧음, 단단함, 검소함, 근면함, 긍정적인 마음마저 닮게 되겠지. 어머니처럼 살고 싶다.


  초등학생 때 쓴 일기장에서, ‘우리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요리는 정말 맛있다.’라고 쓴 일기를 찾았다. 유려한 미사여구들이 많지만, 어머니 밥은 ‘정말 맛있다.’가 가장 어울린다. 어린이가 했던 최고 표현, 그 어린이가 마흔이 되어도 다양한 수식어 가운데 ‘정말 맛있다.’를 이기는 말은 없다고 생각하는 표현.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들은 정말 맛있다.



1996년 10월 29일 화요일 날씨 맑음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께서는 정말 차분하신다.
시간이 있으면 독서를 하시는데 전에는 내가 책방이나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을 가져와서 읽으시곤 한다.

‘며칠 전에 한 감주 벌써 다 먹었나? 어제 한 깍두기는?’
우리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요리는 정말 맛있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이다.
난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보다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이 확실히 맛이 있다.

어머니께서 우리 보고 항상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하시고 말을 할 때는 상대방 입장도 생각해 보고 말해라시면서 나와 동생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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