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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Sep 24. 2024

짬뽕 한 그릇의 위로


낙태 수술을 받을 당시 국정원 원장님께서 보호자로 함께 병원으로 가주셨다. 일반적으로 국정원에서 조사만 받는다면 만날 수 없는 분이지만, 나는 특별관리 대상자여서 원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수술받았던 병원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이야기가 다 되어있었는지 바로 접수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원장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수술동의서를 작성해 주셨다. 나는 처음 하는 수술이 무서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수술 준비로 분주한 몇 명의 간호사와 수술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내가 수술대에 눕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수면 마치를 해줬다. 수면 마치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수술이 끝나고 수술했던 병실과는 다른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렴풋이 눈을 뜨고 몸을 뒤척이자 간호사가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몸은 내가 알던 몸이 아니었다. 누군가 송곳으로 내 아랫배를 마구 찌르고 있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마치가 점점 풀릴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병실에 누워있을 수 없었기에 나는 얼른 일어나 나왔다. 원장님은 수술받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한 국물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통증이 너무 심한 나는 원장님이 가자는 곳으로 따라갔다. 원장님은 날도 춥고 수술도 했으니 따뜻한 국물로 먹으라며 메뉴도 잘 모르는 나를 대신해 삼선짬뽕을 시켜줬다. 그때 처음 삼선짬뽕을 먹어봤다.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 입맛을 돌게 했다. 내가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원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마음 단단히 먹고살아. 앞으로 엄마 얼굴 못 보고 살 수도 있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원장님의 걱정 어린 말에 나는 마음속에 억누르고 있던 외로움과 슬픔이 왈칵 눈물로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꾹 참았다. 처음 경험하는 고통의 수술이었지만 원장님이 보호자로 함께 해주셔서 덜 외로웠다.

낙태 수술을 마치고 독방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는 나만 따로 미역국을 끓여줬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어느새 내가 수술받은 사실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독방으로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돼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독방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수술을 받고 독방에 혼자 있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수술한 다음 날부터 원장님이 직접 독방으로 찾아오셨다. 몸은 괜찮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며 사회 나가면 꼭 공부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곤 오실 때마다 항상 초콜릿을 사다 주셨다. 그리고 독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나를 도서관에 데려가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국정원에서 나는 관심병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책도 읽을 수 있었고, 난생처음 보는 영어사전으로 영어공부도 할 수 있었다. 원장님이 영어사전을 빌려다 주면서 영어사전 보는 방법을 알려주며 이거 보면서 혼자 공부하라고 하셨다. 영어사전을 보며 영어를 읽어주시는 원장님의 모습이 멋있었다. 원장님의 멋진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 원장님처럼 발음기호 없이도 영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 마음먹었다.

목숨은 건졌다고 안도의 숨을 쉬려 했을 때 나에겐 낙태라는 최악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견뎌야 이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견디고 견뎌내도 끝이 없는 내 삶의 현실에 잠시였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의 힘으로, 내 의지로 되는 것들이 없었으니까.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진짜 성폭행으로 생긴 아이가 맞냐며 몇 번이고 재확인하는 조사관 앞에서 나는 눈물로 호소했다. 만약, 낙태를 못 한다면 나는 살 이유가 없다고. 그리고 엄마의 얼굴도 볼 수도 없다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조사관의 태도에 실망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도 그분의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때 수술 후 국정원 원장님께서 사주신 따뜻한 짬뽕 한 그릇의 위로가 나에겐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그동안의 외로움과 슬픔에 억눌려 있던 나에게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가라며 말씀하시던 원장님의 말 한마디가 내 삶에 많은 도움이 됐다. 때로는 말 한마디의 위로, 음식 한 그릇의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원장님과 함께 난생처음 먹어본 칼칼하고 따뜻한 삼선짬뽕은 나에게 위로 그 자체였다. 고백하자면 그때 이후로도 난 삼선짬뽕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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