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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Feb 24.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6. 행복한 꿈


”할머니, 할머니 자?“     


도나는 마루 기둥에 기대앉아 자고있는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대답이 없자 도나는 할머니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손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할머니는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도나는 할머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옆에 벌렁 누웠다. 할머니 따라 낮잠이나 자볼 계획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도나는 갑자기 신통한 각이 나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도나는 할머니의 이발 도구를 가지고 나왔다. 곤히 자고있는 할머니의 머리를 잘라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도나에게는 틀림없이 재미있는 도전이고 경험이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이발하는 모습을 봐온 도나는 머리 자르는 것쯤은 본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깊은 잠에 들었으니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도나는 빠르게 할머니에게 이발 가운을 씌우고 할머니가 평소 애정하는 모자도 살며시 벗겼다. 여름에는 항상 할머니가 쓰고 다니는 챙이  하얀색 모자였다. 도나는 가위와 빗을 들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름 익숙하게 왼손으로 할머니의  뒷머리부터 조금씩 자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가위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한참 머리 자르기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덥수룩했던 할머니의 머리가 조금은 정리되어 보였다. 아뿔사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뒤에 머리를 다듬으려고 보니 한쪽은 너무 짧고  한쪽은 여러 개의 층이  있었다. 도나는 순간 ”이제 어떡하지?“라며 걱정했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다시 가위질을 했다. 그동안 할머니가 머리 자르는 모습들을 봐와서인지 실수 했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한쪽 머리 길이와 같게  맞춰진  같아서   걸음 뒤에서 봤는데 웬걸, 머리카락 마저 점점 없어지고 두피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나는 이제 진짜 큰일 났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자르면 대머리가 되어 있는 할머니를 보게   같았다.  사이 할머니가 잠꼬대를 하며 조금씩 움직였다. 꿈을 꾸는지 가끔 입가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가끔은   없는 언어들을 구사하기도 했다. 도나는 할머니가 깨기 전에 얼른 마무리 지었다. 마치 아무  없었다는 듯이 할머니에게 모자까지 씌우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모자를 썼음에도 제멋대로인 할머니의 머리모양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방으로 들어가서도 할머니의 머리 모양만 생각하면 계속 웃음이 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할머니가 잠에서 깼다. 할머니는 모자를 벗을  항상 모자 뒷부분을 잡아서 벗는 습관이 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모자 뒷부분을 잡아서 벗었다. 할머니는 잠결머리를 만져봤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다시 만져  할머니 손에 잡힌 것은 머리카락 대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두피였다. 순간 할머니는 바로 도나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야, 최도나, 너 이리 와봐!!“

”왜?“     


도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화난 할머니의 모습을 본 도나는 또 한 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화가 많이 났는지 숨도 안쉬고 속사포로 한소리 했다. 미용사 머리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어떤 사람이 본인에게 머리를 맡기겠냐며 노발대발했다. 다시 생각해도 할머니의 머리는 대머리 되기 직전 그야말로 개 풀 뜯어 먹듯이 잘라놨다. 안 그래도 눈썹도 없는데 머리까지 다 잘라 버렸으니…머리까지 짧은 할머니 모습은 마치 모나리자 같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눈썹과 머리가 사람의 얼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깨달았다.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도나는 계속해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도나는 웃지 않으려고 슬픈 생각을 해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쾅쾅쾅!!! 쾅쾅


소리에 깜짝 놀란 도나는 벌떡 일어났다. 너무 생생해 현실인  알았던 조금  상황이 아쉽게도 꿈이었다. 어렸을  도나가 실제로 할머니에게 했던 상황이 꿈에 생생하게 나온 것이었다. 잠깐이었지만 행복한 순간이었. 도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혼잣 말을 했다.      


에이, 뭐야 할머니가 집에 있는  알았네근데 무슨 소리?”


그때 누군가 도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나야, 도나 집에 있니?“


목소리를 들으니 펜션 집 할아버지였다. 도나는 얼른 일어나 대문쪽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낮잠 잤어? 몇번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집에 없는 줄 알았잖어”

“정말요? 오랜만에 꿈 꿨더니 못 들었나봐요.”

”깽깽 깨개깽, 낑“     

!!! 할아버지  강아지는 뭐에요?? 설마 선물이에요?”


도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시크하게 ‘그려’라며 강아지를 도나에게 안겨줬다. 도나는 너무 신나서 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시는것도 깜빡하고 새끼강아지에게 빠졌다. 귀엽고 앙증맞은 것이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었다.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할머니에게 강아지를 키우면 안되냐고 했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앙증맞은 천사 같은 강아지가 도나 품에 있었다.     


”안녕, 넌 이름이 뭐니?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어떻게 우리 집에 왔을까?“


도나는 강아지에게 얼굴을 부비며 혼잣말을 했다.


”에구, 이 녀석 너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어?“

”어머, 할아버지 죄송해요…제가 너무 신나서“

”그나저나 무슨 잠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냐?“

”아...그게 어제 밤에 취업 준비로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헤헤“

”할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그럼, 해가 중천에 떴는데.“

”할아버지 그럼 수박이나 좀 드시고 가세요. 할머니가 지난주에 수박 사다 놨는데 맛있더라고요.“

”수박 좋~지.“     


할아버지는 마루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았다. 도나는 얼른 주방에 들어가 수박을 먹음직스럽게 썰어 내왔다. 할아버지는 수박 자르는 도나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표정뭔가 걱정 가득한 눈빛이었다. 도나는 아는지 모르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수박을 썰었다. 접시에 옮겨 담은 수박을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고 바로 뒷정리하러 갔다.


”이거 같이 먹고 하지...“

”금방 치우고 갈께요. 여름이라 바로 안치우면 날파리 꼬여서요.“     


도나는 후딱 치우고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수박을 먹었다.  와중에도 시선은 온통 새끼 강아지에게  있었다. 그런 도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강아지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도나는 수박을 입에 가득 넣은  말해 뭐하냐는 표정으로 대답 대신 긍정의 끄덕임을 했다.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뭘?“

”저는 강아지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왜? 너한데 잔소리 안 해서?“

아니요... 요즘 사람들이 강아지를 반려견으로 많이 키우잖아요?  마음이 이해가 돼요. 사회생활 하다보면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고 사람을 판단할 때가 많잖아요. 물론 눈으로 보이는 것이 결과이니 그럴  있지만, 강아지는 사람에게 바라는  없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반겨주잖아요. 슬픈 일이 있으나 기쁜 일이 있으나  같은 모습으로요.  모습이 저는  좋아요.“


도나는 할아버지의 가벼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진지한 도나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좀 당황했는지 바로 도나의 말에 수긍했다.


”그렇지. 강아지가 여러 가지로 사람에게 좋은 동물이지. 그건 그렇고 할머니는 작은 할머니집 간다더니 언제 온다더냐?“

”일주일정도 있다 온다고 했는데 이제 3일 지났으니 편하게 작은할머니 돌봐드리라고 연락 안 하고 있어요. 괜히 계속 연락하면 할머니가 또 저 걱정할 것 같아서요.“

”도나 이제 진짜 어른이 다 됐네. 기특하다.“     


할아버지는 도나가 할머니의 병에 대해 알고 있는지 떠보는  같아 오히려 모르는 척하고  밝은 모습으로 말했다. 마치 할머니 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사실  말을 하는 순간에도 도나의 마음은 쓸쓸하고 외롭기만 했다.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계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녀인 본인이 해줄  있는  없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도나가 혼자 외로워할  같아 강아지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할머니의 부탁이었는지 아니면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병세를 듣고 도나가 걱정되어 가져왔는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도나는 본인이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낼  같아서 강아지를 데려온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도나의 밝은 모습에 안심이 됐는지 이제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아지는 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 휘젓고 다녔다. 도나눈 할아버지를 배웅해드리고 마루바닥에 앉아 멍한 모습으로  산만 바라봤다.     


”이제 내가 뭘 해야되지? 아니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이제 막 성인이 돼서 모아둔 돈도 없는데...“     


도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나는 본인이 당장 할머니를 위해   있는게 없다는 것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낑낑낑.  때리고 있던 도나는 강아지가 낑낑대는 소리에 정신 차려보니 강아지가 작고 앙증맞은 혀로 정신없이 발을 핥고 있었다.  모습이 안쓰러워 도나는 강아지를 번쩍 들어 무릎에 올려놨다.     


”오구구, 내가 안 놀아줘서 서운했엉?“

”끙끙끙 해핵핵“

”그래… 많이 덥지?“

”...“

그래있어서  다행이다. 너가 아니었으면 언제까지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으휴...“     


도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새끼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고새 쌕쌕거리면서 자고 있었다. 쌔근거리며 자는 강아지를 보니 도나도 잠이 몰려 왔다. 도나도 강아지 옆에 조용히 누워 잠을 청했다.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에도 도나와 새끼 강아지는 달콤한 낮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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