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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Feb 20.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5. 알고 싶지 않은 진실


“저기 도나 아니여?”

“어디?”

“저기 걸어오는 여자애 말이야.”

“맞네 맞어! 아이구 도나도 참 안됐어. 엄마, 아빠를 불러도 보기 전에 부모를 잃었으니,,,쯧쯧”

“계집애가 기가 세서 지엄마를 잡아먹은 거지 뭐...”

“애가 무슨 죄가 있어, 그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게 더 안됐지 뭐. 차사고로 그렇게 됐다며?”

“무슨 소리야!! 언니가 몰라서 그래. 저 계집애 때문에 명순 언니 딸이 죽었잖아. 명순 언니가 그렇게 낳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낳겠다고 고집부려서는 저 계집애 낳다가 죽었어. 하여튼 재수 없는 계집애라니까.”     

“그래? 차사고 당했다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그럼 사위는?”

“사위? 사위는 처음부터 없었어. 언니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딸이 사귀던 남자랑 사고쳐서 낳은 거야. 애가 생겼다는 말에 남자는 도망가고 그래서 명순 언니가 애를 낳지 말라고 그렇게 반대한 거야… 그때는 딸이 나이도 어리고 또 미혼모로 애 키우는 게 남들 시선에도 보기 안 좋고. 부모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지. 나였어도 반대했어.”

“어쨌거나 참 안됐다 명순 언니도 쟤도...”


도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아줌마의 이야기는 너무 또렷하게 들렸다.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버스가 도착했다. 여태껏  궁금했던 부모님의 사고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것이다. 도나는 갑자기 모든 퍼줄 조각들이 맞춰지듯 예전에 할머니와 했던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맞아떨어졌다. 부모님 사고에 대해 물어보면 예민했던 할머니의 반응과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물으면  상황을 회피하려던 모습까지도 모든 상황들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났다. 결국 도나의 아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사고를 당한 적도 없었다. 도나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었지만, 할머니에게는 잊고 싶은 존재였던 것이었다.


도나는 갑자기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본인이 잘못 들은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억울함과 원망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도나의 마음과 달리 창밖에 날씨는 너무 맑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했다. 그런 하늘을 보니 더욱 눈물이 흘렀다. 도나는 본인을 욕하는 것까지는 참을  있었지만, 할머니까지 욕보이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걸까? 처음부터 난 태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버스에서 내릴 때쯤 핸드폰으로 얼굴을 확인해보니 너무 울어서 눈알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이상태로 집에 가면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게 분명했다. 도나는 곧장 집으로 안 가고 행운 계곡으로 향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면 찾는 도나의 쉼터였다. 도나는 그곳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도나는 계곡물에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일어났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이미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늘  이렇게 늦게 왔냐며 얼른 저녁 먹자고 했다. 도나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얼른  갈아입고 나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먹으면서 도나는 평소보다  들뜬 모습으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난 이 세상에서 할머니가 해준 밥이 젤로 맛있더라.”

“뭐여, 갑자기 싱겁게.”   

  

할머니는 손녀의 칭찬에 쑥스러웠는지 별소릴 다 한다며 얼른 말을 돌렸다.


“저기, 도나야 할머니가 며칠 작은 할머니네 집에 다녀올까 하는데 혼자 밥 잘 챙겨 먹고 있을 수 있지?”

“웅? 갑자기 작은 할머니 집은 왜?”

“작은 할머니가 몸이 편찮다고 하네, 내가 가서 좀 봐줘야 쓰겠어. 나이도 어린것이 벌써 아파서는 에효...”

“그럼 다녀와. 작은할머니 옆에 아무도 없으니 할머니가 가서 잘 치료해주고 와.”

“난 혼자서도 잘 지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뭐 저번부터 말했던 강아지 한 마리 데려다주면 좋고.”


도나는 할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는 그런 도나의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옅은 미소를 띠며 우리 손녀딸 정말 이제 어른이 다 됐다며 칭찬했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싸느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나는 할머니가  싸는 소리에 잠에서   상태로 일어나서 할머니  싸는 것을 도왔다. 짐을 대충  챙기고 할머니가 출발할 때쯤에서야 도나는 잠에서 완전히 . 할머니는 도나를  안아주면서 할머니 없는 동안   챙겨 먹고 잠도  자라면서 무슨  있으면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도나는 그런 할머니를 보며 갔다가   사람처럼  그러냐며 작은할머니   드리고 오라고 했다. 도나는 짐이 무거울  같아서 버스정류장까지만  들어다 드린다고 기어이 같이 따라나섰다.  

    

“아침 공기 좋~다.”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속담도 있잖아. 없는 사람일수록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고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더 알차게 써야 해.”

알았어요, 알았.  다녀오시기나 해요.”   

  

도나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버스도 곧 왔다. 도나는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서 자리에 앉는 것까지 보고 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새벽같이 일어난 도나는 알바 가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은 것을 확인하고 아침밥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도나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알람을 꺼버리고 다시 잠들었다. 5분 후 다시 띠리리링, 띠리리링 알람은 반복해서 울렸다. 그때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도나는 평소에도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적이 없다. 항상 알람은 두 번 이상 울려야 하며, 일어나서도 눈은 최소 5분 정도는 감고 얕은 잠을 더 자야만 일어나는 특이한 습관이 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알람 소리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침대에서 엎드린 채 얕은 잠을 자고 나서야 겨우 일어났다. 대충 양치부터 하고 머리를 감고 아르바이트 갈 준비를 했다. 아르바이트 가서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어 대충 집에 있는 자두 두 개를 챙겨 먹고 일하러 갔다. 출근하는 길에 할머니가 잘 도착했는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여보세요?”

“어, 붕어빵 할머니 잘 도착했어. 지금 일하러 가고 있어?”

“웅. 이제 가고 있어. 할머니 점심은? 작은 할머니는 어때?

”이제 같이 먹으려고, 작은 할머니 심각하진 않고 그냥 힘이 조금 없어 보이긴 하는데 괜찮아. “

”알겠어. 점심 맛있게 먹고 날도 더운데 좀 쉬어. 이따 퇴근하고 또 연락할게. “

”그려, 항상 차 조심 사람 조심하고 알겠지? “

”알겠어. “

”붕어빵 사랑한다. “

”뭐야 어색하게. 끊어. “  

        

도나는 할머니의 사랑고백이 너무 어색해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와의 통화를 마치고 나니 벌써 피자집 앞이었다. 아직 낮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주방에서는 재료 준비로 바빠 보였다. 도나는 얼른 옷 갈아입고 주방장 삼촌에게 가서 도울 게 있냐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주방장 삼촌은 눈치도 빠르고 일손도 빠른 도나를 늘 칭찬했다.      


"도나는 어디 내놔도 굶어 죽진 않겠다. 일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이게 다 할머니가 저를 잘 키워주신 덕분이죠."


주방장 삼촌과의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퇴근할 때까지 서로 바빠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살인적인 무더위는 저녁이 되어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낮 동안 내리쬔 햇빛 때문인지 뜨거운 공기는 여전했다. 도나는 오랜만에 버스를 안 타고 걸어갔다. 버스로 약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를 걸어서 가니 1시간 정도는 걸렸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안에 들어서니 왠지 모를 우스스 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을 더 느끼기 전에 서둘러 불부터 켰다. 안방부터 시작해서 부엌, 마루까지 집 안에 있는 불은 다 켜놓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도나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서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었다. 시골 마을의 밤은 참 정감 깊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밥 짓는 냄새와 숲 속의 내음, 그리고 부엉이 울음소리까지 도시의 음악이 부럽지 않았다. 그 소리와 냄새에 취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벌써 저녁 8시가 훌쩍 지나버렸다.


저녁은 대충 냉동고에 있는 옥수수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돌려놓고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옥수수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도나를 위해 할머니가 해마다 고구마, 옥수수, 감자  먹기 편하게 냉동시키거나 말려서 보관해뒀다. 도나는 항상 먹기 전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옥수수를 식탁에 올리고 노트북과 공책을 준비해서 앉았다.  그래왔던 것처럼 멀티플레이를 좋아하는 도나는 오늘도 옥수수를 먹으며 공채 시험공부를  생각이었다. 이제 정말 3 남짓 남은 시험을 앞두고 하루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야심차게 옥수수 한입을 크게 베어 물고 바로 볼펜을 들었다. 옥수수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에도 시선은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과 경제적인 이유로 학원은 가지 못하고 온라인 강의를 보면서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올해는 시험준비 기간도 길지 않으니 경험 삼아 볼 생각이었지만, 이왕이면 열심히 해서  번에 합격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왈왈왈, 왈왈왈, 한참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데 진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도나야, 너 괜찮아? “


진주는 많이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뭐가? “

”할머니 병원에 입원했다면서,,, 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엄마가 너의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해줘서 걱정돼서 바로 전화했어. “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할머니는 작은할머니 병간호 해주러 간... 다고 했는데...? 일단 진주야 끊어봐 내가 다시 전화할게. “


도나는 급하게 진주와의 통화를 끝내고 바로 할머니에게 전화 걸었다. 오늘따라 전화 연결음이 길게만 느껴졌다.      


”하... 제발 받아라. 빨리 받아... “

    

도나는 어느새 테이블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세 번의 전화통화 연결음이 나온 후에야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붕어빵 저녁은 먹었어? “


할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할머니 지금 어디야? 작은할머니 집이야? “


도나는 다그쳐 물었다. 눈가는 이미 촉촉해져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막 작은할머니랑 저녁 먹으려던 참이야. 저녁은? 너 또 안 챙겨 먹었지? “

    

할머니는 평소와 같이 끼니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잔소리했다. 그런 할머니의 말에 도나는 더 마음이 아팠다. 아픈 와중에도 손녀딸이 걱정돼서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할머니를 생각하니 결국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도나는 간신히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할머니와 통화했다.

    

저녁 먹었어. 할머니가 얼려둔 옥수수  먹었어. 할머니 보고 싶은데 며칠  기다려야 되네... “

그려, 할머니 얼른 작은할머니 병간호 끝내고  테니까   챙겨먹고   자고 있어. “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도나는 통화를 끝낸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사실 할머니에게 어디가 얼마나 아프냐고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지만, 정작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차마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졌는지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몰랐다는 것에 화가 나고  화가 났다. 언제부터 할머니의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는지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생각나는 증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증상이 하나 떠올랐다. 전에 할머니가 소화가  된다며 밥을   드신 적이 있었다. 혹시 그때부터 위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도나는 할머니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시는 것은 용납할  없었다.


도나는 슬픔을 뒤로하고 이를 악물고 공채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공채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본인이 할머니가 아픈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갑작스러운  좋은 소식에 도나의 머릿속은 거미줄이 마구 엉킨 처럼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마루에 나와 앉아서 맥주  캔을 마시며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전날 버스정류장에서 들었던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와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스치듯 들었던 부모님의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말 나는 태어났으면 안 되는 존재였을까? 아줌마들 말처럼 내가 기가 세서 그런 걸까?"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들에서 쉽게 빠져나올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소음이라고는 바람 소리와 야생 동물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한참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현재 상황이  좋다고  놓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에 도나는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시고 어났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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