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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Mar 22.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18. 할머니의 죽음


도나는 급한 마음에 수십 통의 부재중이 찍혀 있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했다. 전화번호 앞자리를 보니 지역이 강원도였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낯선 여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ㅇㅇ대학병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나는 병원 이름을 듣는 순간 움찔했다. 분명 도나가 알고 있는 병원이었다. 혹시라도 잘못 들은 것일까 재차 확인했다.


“아, 안녕하세요. ㅇㅇ 병원이라고요?”

“네.”


도나는 그 병원이 맞다는 말에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물었다.


“이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저희 할머니가 거기 입원해 계신데 혹시 할머니 때문에 전화 주셨었나요?”

“환자분 성함이?”

“황명순이요…”

“잠시만요...”


도나는 불안하고 초조한 예감이 자꾸 들었다. 제발 이번만은 그 예감이 맞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수화기 너머에서 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 네 선생님. 황명순 할머니 확인되셨는데 많이 위급하셔서 연락드렸어요. 지금 상태로는 오늘 밤이나 내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 하시고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안 좋은 소식 전해드려서.”

“네? 아...네 알겠습니다…”  

   

정말 간절하게 바랐지만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도나는 순간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 모든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도나는 계속해서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재촉했다. 다시 정신 차리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할머니 제발 손녀가 갈 때 까지만 버텨줘. 정말 마지막 부탁이야. 제발 조금만 힘내서 버텨줘. 정말 미안해...제발 이번 한 번만 나의 소원을 들어줘. 제발..."


도나는 버스에 타서도 계속 속으로 '할머니 이번만큼은 제발...'이라며 되뇌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조만간 폭우로 쏟아졌다. 도나는 달리는 버스 창가에 맺힌 빗방울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한없이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버스 타면 항상 멀미해서 잠을 잤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사정없이 내리는 비가 마치 도나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버스가 거의 도착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도나는 전화벨 소리가 이렇게 불안하고 받기 두려운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용기내 전화를 받았다. 진주였다.

     

“여보세요?”

“도나야...흐어어엉.”

“왜 무슨일이야???”

“할머니가...”

“할머니가 왜?”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어...흐어어엉.”

“뭐?”

“일단 지금 나랑 펜션 할아버지가 같이 있으니까. 병원으로 바로 와.”

“알겠어. 가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도나는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제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주와의 통화를 마치고 도나는 애써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도나는 기사 아저씨에게 조금만 더 빨리 가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아저씨는 도나의 사정을 듣고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원래는 다른 지역에 한 번 멈췄다 가야했지만, 도나의 사정을 들은 승객들이 오히려 할머니 병원까지 먼저 가자며 기사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기사님 또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도나는 눈물을 흘리며 기사 아저씨와 승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모두의 배려 덕분에 도나는 병원까지 빨리 도착했다. 도나는 버스에서 내려 바로 병실로 뛰어갔다.      


“할머니, 할머니!!”     


도나는 복도에서부터 할머니를 부르며 뛰어갔다. 도나의 목소리를 듣고 진주가 뛰어나왔다. 진주도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진주와 함께 도나는 할머니 병실로 곧장 들어갔다.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하얀 천 뒤로 할머니의 실루엣만 보였다. 도나는 서울에서부터 참고 참았던 마음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현실이었다. 꿈도 거짓도 아닌 현실. 도나는 할머니의 침상 옆에 쓰러져 할머니를 목 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차마 할머니의 얼굴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저한데 왜 이러시는거에요? 흐어어어엉. 정말 신이 있긴 한거에요? 제발 한 번만 딱 한 번만 소원이라고 간절하게 빌었는데...할머니 미안해...아직 못해 드린 게 너무 많은데...흐어어엉"

    

진주는 도나의 어깨를 토닥일 뿐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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