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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Mar 25. 2022

열혈 취준생의 비애

20. 인생의 아이러니

아침부터 전화 벨소리가 고요한 집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도나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최도나씨 맞죠?“

”네.“

”축하드려요. 공사에 최종 합격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도나는 잠시 기뻐하다가 이내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홈페이지에 합격자 명단과 출근 전 체크사항 자세히 기재되어 있으니 확인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합격 전화에 잠이 깬 도나는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할머니, 손녀 딸 합격했어. 할머니가 나 합격한 모습 봤어야 했는데... 나 걱정하지 말고 부디 그곳에서는 맘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 아주 나중에 나도 할머니 곁으로 가게 되면 꼭 한 번 만나. 그때까지 손녀 딸 씩씩하게 잘 살고 있을게. 할머니가 나 응원해줘."

     

”뭐해?“

”깜짝아!! 언제 일어났어?“

"방금. 일어났는데 너두 없고 앵두도 없어서 놀랐잖아."

”나 합격했대.“ 도나는 무심히 마룻바닥을 응시하며 말했다.

”정말?“

”웅“

”너무 잘됐다. 역시 내 친구 넌 어딜 가든 프리패쓰야. 멋져!!“ 진주는 들떠서 말했다.


들뜬 진주와 달리 도나는 무표정이었다. 그런 도나의 표정을 살피던 진주가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고생했다는 거지...“

”고마워. 무슨 말인지 알아. 추운데 얼른 들어가서 밥 먹자. 내가 샌드위치 해줄게.“


도나는 진주가 괜히 본인 때문에 눈치 보는 것 같아 대화주제를 돌렸다. 아메리칸 식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진주와 도나 그리고 앵두까지 함께 외출했다. 도나는 가고싶은 곳이 있다며 진주와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진주는 말 없이 도나의 뒤를 따라 갔다. 집에서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갔다. 바로 할머니가 생전에 운영하시던 ‘도나미용실’이었다. 미용실에 도착한 도나는 한동안 비워져 있던 가게 문을 열었다. 할머니의 부재만 빼고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도나는 미용실을 청소하고 할머니의 채취가 남아 있는 이곳을 동네 어르신들의 만남의 장소로 다시 열고 싶었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분명히 이곳은 늘 어르신들의 놀이터였을테니까. 진주와 도나는 미용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게 간판에 먼지까지 털어냈다. 그리고 가게 오픈을 알리는 ‘영업중’이라는 간판 불도 켰다. 


”우와!! 도나야 봐바. 진짜 영업하는 것 같아. 있잖아 내가 생각 좀 해봤는데, 너가 회사 다니면 평일은 가게를 지킬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평일에는 내가 가게 지키면서 그림 그리면 어떨까?“

”오!! 좋은 생각이다. 너무 좋은데? 완전 찬성이야! 주말에는 우리 둘 다 여기서 놀면서 각자 하고싶은 일 하고 어르신들도 놀러 오시라고 하자. 어때?“

”너무 좋아!! 나 작업실 생겼다. 야호“   

  

진주는 무척 기뻐했다. 그 모습에 도나도 흐뭇했다. 어쩌면 이 가게가 할머니가 도나에게 남겨준 유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시골 동네라 가게를 내놔도 누가 오겠다는 사람도 없겠지만, 도나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어렸을 적 추억도 모두 그곳에 있었기에 더욱 더 소중했다. 가끔 혼자 가게에 있다보면 철없던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던 추억도 또 마냥 좋다고 웃고 떠들었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추억들이 있어 도나는 위로가 됐다. 도나와 진주는 가게 청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주가 집으로 가고, 도나와 앵두만 집에 남았다. 도나는 앵두를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다음날 도나는 앵두와 함께 가게로 향했다. 출근하기 전까지는 가게에 매일 나가기로 했다. 어르신들에게도 언제든 놀러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침 일찍 나와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다. 앵두는 조용히 옆에서 잠을 잤다. 이미 한 번 읽은 책이지만 다시 봐도 너무 의미 있고 지루하지 않은 책이었다. 잠깐 기지개 켜면서 밖을 내다보니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펑펑.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쉼 없이 땅 위로 펑펑 내렸다. 도나는 유난히 눈을 좋아하는데 오늘따라 그 눈이 왠지 선물 같았다. 마치 누군가 미리 준비해 둔 도나만의 선물. 도나는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눈 내리는 것을 말없이 지켜봤다. 눈은 어느새 발목이 잠길 정도로 소복이 쌓였다. 조용히 쌓이는 눈처럼 도나의 마음에도 여러 감정들이 조용히 그리고 소복이 내려앉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듯이 할머니의 부재를 빼고는 모든 것이 그 자리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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