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처지에 놓인 여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인생 역전은 ‘남자 잘 만나기’일까?
여자아이들이 즐기는 디즈니 월드의 공주 이야기들이, 유독 재벌남들이 자주 등장하는 한국의 드라마들이 대체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을 구원할 왕자 혹은 잘난 남자들의 대략적인 특징은 이렇다.
그들은 여자의 처지가 어떤지 개의치 않고 오직 그 여자 하나만을 본다. 자신을 사로잡은 그녀의 오직 그 대단한 매력에 도취된 남자는 자신이 도취되었다는 그 확신 하나만으로 현실의 장애 따위 가볍게 생각하고 물리친다.
영화 <<프리티우먼>>의 리처드 기어가, 한국 드라마의 돈 많은 남자 주인공들이 주로 그러했다.
<<아노라>>의 주인공은 애니다.
쾌락이 필요한 남자들에게 자신의 관능과 성애를 팔며 살아가는 미국의 성노동자다.
클럽의 에이스이기도 한 그녀는 어느 날, 이반을 손님으로 맞이한다.
러시아 갑부의 아들이자 곱상한 외모, 그리고 애니에게 충분한 호기심을 보이는 그에게 애니는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간을 보낸다.
즐거웠던 첫 만남 이후 이반은 애니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애니와의 쾌락을 지속하고 싶은 이반은 그녀에게 아예 일주일 동안의 출장 유급서비스를 원한다.
애니로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인 셈이다.
그녀는 이반과 그의 친구 무리들과 끝없이 마시고 즐기며 환락의 시간을 보낸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소비와 향락과 쾌락이 함께하는 나날은 계속된다. 너무도 화려하고 달콤하여 그녀가 보내는 이 모든 시간과 행위가 ‘노동’의 일부라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꿈같은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간다. 그런데 이반은 애니와 헤어지기가 싫다. 그래서 아예 결혼을 해버리자고 덤빈다. 도파민 과다분비상태의 그들은 당장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가 그들만의 결혼식을 올린다.
애니로서는 자신이 가진 관능과 성애의 기술이 더 이상 육체노동의 수단이 아니라 사랑의 결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그녀는 이반에게 자신을 ‘애니’가 아닌 ‘아노라’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그녀가 맞이한 새로운 인생에 걸맞은 자신의 진짜 이름을.
그녀는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인가?
그럴 리가! 감독은 션 베이커다.
그는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의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가 만든 화려한 세계(디즈니월드) 저편에 내던져진 하위계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린 바가 있다.
꿈처럼 흘러간 쾌락 과잉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러시아에 있는 이반의 부모가 아들의 '결혼'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아들감시의 업무를 맡긴 하수인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상황을 되돌려놓으라는 명령(혼인무효소송)을 내린다.
교회에서 어린아이의 세례를 하던 중에 전화를 받은 하수인은 자신의 동생에게 당장 이반을 붙잡아두라고 지시한다. 형의 지령을 받은 동생은 똘마니 이고르를 대동하여 이반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하는 일이라곤 게임과 섹스뿐인 신혼부부는 갑작스레 험악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태를 직감한 이반은 냅다 줄행랑을 쳐버린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노라를 남겨둔 채 말이다.
난 내 남편을 사랑해.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거야.
혼자 남은 아노라는 그들에게 호락호락 협조하지 않는다. 자신은 이반의 아내이며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결박하고 협박하며 혼인 무효를 만들 권리가 없음을 악을 써가며 호소한다. 하지만 고용주가 시킨 임무가 어긋날까 봐 안절부절인 하수인들에게 이노라의 저항과 항변은 들릴 리가 없다.
세례 중에 전화를 받았던 하수인은 이미 세례식을 포기하고 이반의 집으로 와서 똘마니들이 완수하지 못한 임무를 질책하며 발을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자본의 대가가 종교의 신성을 이겼다.
갑부집안의 망나니 자식을 컨트롤하는 임무를 맡은 하수인과 그의 지시에 몸을 움직이는 똘마니들은 명령에 맞게 수행해야 할 임무를 위해서만 머리를 굴리고 명령하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말만 들을 뿐이다.
망나니 자식의 우발적 사랑놀음과 결혼이라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하는 이들은 애니가 사랑이라 믿은 판타지 저편에 놓인 서글픈 계급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망나니가 선택했던 여자, 아노라는 그 계급도 내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다.
모든 걸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이반을 찾아가는 여정에 하수인 세명과 아노라가 동행한다.
그들에게 아노라의 존재는 필요한 서류를 떼기 위해 지참해야 하는 인감도장과 같은 도구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노라는 이 여정에 동참해야 하는 그녀만의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이반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확인해야 한다.
우리 두 사람이,
우리의 의지로,
그리고 사랑으로,
결혼한 사이임을.
법적절차완수를 위해 이반을 찾아 나서는 남자들과
지난날의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이반을 만나야 하는 아노라.
그들 사이의 간극은 아노라가 품었던 무모한 희망의 크기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이반은 수많은 로맨틱 드라마에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희박하기 그지없는, 용감하고 멋진 재벌남이 아니다. 그는 물질이 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소비하고 향락에 젖는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가끔은 재력가 부모의 그늘에서 일탈하는 쾌감을 맛보다 가도 이내 그들이 만든 그늘에 포섭되고 마는 무뇌상태에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아노라는 자신들이 처음 만난 클럽에서 이반을 찾았으나 아무 의지도 없이 휘청거리는 그의 민낯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꿈꾸었던 판타지가 거품이었음을 그제야 자각한다.
왜 날 강간하지 않았어?
왜냐면 난 강간범이 아니니까.
이반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오직 그녀의 감정을 보는 이는 하수인 중 가장 똘마니, 이고르뿐이다.
그는 육체를 팔고 신분상승의 꿈이나 꾸는 여자라는 외피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당혹감, 서글픔을 알아본다. 하지만 막내 하수인과 혼인무효소송의 인감도장과 같은 존재일 뿐인 아노라가 힘을 합친 들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져버린, 이반이 아노라에게 주었던 결혼기념 다이아반지를 몰래 꼬불쳐놓았다가 그녀에게 돌려주는 것 외에는 말이다.
감독의 작품 속에서 안타고니스트는 언제나 '자본주의' 그 자체가 된다.
안타고니스트의 세계는 막강하다.
안타고니스트가 구축한 세계 안에서 주인공들은 충분히 도취되고 흐느적거리며 꿈꾸기도 한다. 환락에 휘청이는 이반이, 이반과의 결혼으로 육체노동에서 탈피한 줄 아는 아노라가 그랬다. 아주 잠깐.
하지만 안타고니스트는 곧 냉혹한 이면을 드러내며 그들을 꼼짝없이 결박해버리고 만다. 부모의 포위에 어떤 저항도 못하고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이반도, 이반과의 사랑을 인정받고 싶은 아노라의 헛된 저항도 안타고니스트의 견고한 세계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찰나의 환상과 기대가 불러온 참극.
참극을 통해 재확인되는 계급적 위치.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안타고니스트의 세계 안에서 함부로 덤비지 말라고.
함부로 달콤해지지도, 함부로 꿈꾸지도 말라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무려 '자본주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