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틱스] 이 죽일 놈의 사랑

by 디비딥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을 생각 없이 몇 단계 건너뛰다 보면 가끔 생각지 못한, 선물 같은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이번 영화가 내겐 그랬다.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보게된 알지 못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시대인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을 것 같은 미지의 어떤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면서도 가슴 아리게 하는 기묘한 느낌.

<<애틀란틱스>>는 그런 영화다.


***


이 모든 일은 '임금체불'로부터 시작되었다.

슐레이만은 세네갈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와 그의 동료들은 몇 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공사 현장 담당자에게 이런저런 호소를 해보지만 윗분의 허망한 약속만 전할 뿐이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흙먼지 가득한 바람만 흩어지는 세네갈의 건설현장.

개발되고 발전하는 산업화의 공간은 슐레이만과 동료들의 삶을 불안하고 불투명하게만 할 뿐이다.

현장에 이는 흙먼지만큼이나 뿌옇게.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다.

그들의 나라가 제 값을 쳐주지 않는 자신들의 노동을 스페인에서 팔기 위해.

슐레이만에겐 사랑하는 여자, 아다가 있다.

그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광활하고도 무심한 대서양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 것이 그들의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슐레이만 일행이 탄 배가 파도에 휩쓸리며 그들 모두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다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아다가 결혼을 하게 될 남자, 오마르는 슐레이만이 사는 세계와 가장 먼 곳에 있을 만한 사람이다.

오마르는 아다에게 아이폰을 넉근히 선물할 만큼 세네갈 갑부다.

아다는 자신의 결혼이 집안의 번영과 이슬람 전통의 수호라는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연인을 잃은 슬픔을 남몰래 삭이며 결혼이라는 상황 속으로 무력하게 휩쓸려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결혼식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결혼식을 올린 오마르의 집에서 불이 나고 그 현장에 슐레이만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또한 담당 경찰관은 전에 없던 몸의 이상 증세를 느끼며 가까스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밤 중 동공이 뒤집히며 몽유병에라도 걸린 듯한 세네갈 마을 처녀들이 집단적으로 건설업자의 집에 들어가 미납된 임금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상하고도 신비한 일들의 연속.

아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슐레이만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그를 기다린다. 결혼도 뿌리친 채.

그리고 결국 그를 만난다. 경찰관의 몸에 깃든 망령으로.

그 후 그녀는 홀로지만 단단해진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똑바로 응시한다.



어떤 기억은 징조다.
지난밤의 기억은 나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기시켜 주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보여줄 것이다.
미래를 가진 아다.
내가 아다이다.

by 아다의 내레이션 증에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행.

극한의 빈부차,

전통과 현대성의 혼재.


아프리카 대륙의 세네갈이란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어느 도시 풍경.

내겐 낯설고 생판 모르는 공간인 그곳이 묘하게 우리 역사가 지나온 어느 시간대와 너무 닮아 있었다.

개발의 논리에 개발업자와 국가권력은 밀착되고 빈부의 격차는 극한의 수준(슐레이만과 오마르의 간극).

그 속에서 젊은 남자의 노동은 희생되고 젊은 여자의 결혼은 전통의 굴레에 묶여 있다.

그런 남녀가 '사랑'을 하려 하다니!

필연적으로 그들의 사랑은 '이생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영화는 이토록 암울하고 서글픈 세네갈 남녀의 현실을 미화하진 않지만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그린다.

그들 앞에 놓인 광활한 바다는 남자의 목숨을 가져가기도 하지만 그들이 처한 이 땅의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또 다른 지평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제목이 '애틀랜틱스'일지도 모르겠다.

망령을 통해 착취에 저항하는 이 희한한 영화를 보면서 '마술적 리얼리즘'의 존재기반을 생각해 본다.

도저히 '마술'적 요소를 담지 않고는 고통의 현실을 말할 힘도, 극복할 의지도 찾을 수 없기에 외치는 극한의 절규인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 이 영화는 <기생충>이 칸느 영화제 대상을 받았을 당시 함께 경쟁작에 오른 작품이며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 미국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19년 휴가 중 보았던 추천 영화 리스트 중 하나로 이 영화를 꼽았다고 한다.

미국도, 우리도, 문화적 안목과 공감능력을 가졌던 지도자가 있던 시절이 가끔은 있었구나,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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