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언니들
한 여자가 있다.
여자의 남편은 의사다. 시골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개업한 남편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인이다. 여자는 한 때 꿈과 낭만이 가득한 소녀였다. 그래서 결혼은 자신이 꿈꾸던 낭만을 완성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성실한 남편과 시골에서 별 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그녀는 금방 지루해진다.
그래서 다른 사내들에게 눈을 돌린다. 그들은 무덤덤하고 무신경하며 낭만의 유전자가 없는 남편과는 다른 자들인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가진 낭만과 사랑의 욕구를 한껏 채워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녀는 행복하다. 마음이 설렌다. 이것이야 말로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낭만과 사랑이 충만한 삶이다.
이렇게 그녀가 행복한 기대들로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하필이면 남자들은 시답지 않은 이유들을 남기고 떠난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건 과도한 데이트가 남긴 막대한 청구서와 초라하고 너무도 앙상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뿐이다.
그녀의 이름은 엠마, 결혼 후에는 보바리 부인으로 불렸던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이다.
이런 여자도 있다.
그녀는 과거에 유복하고 곱게 자랐다. 미모도 남달랐고 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남편은 알고 보니 동성애자였고 그녀는 현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잘 살던 집안 가세는 기울기 시작하더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빚을 청산하느라 완전히 망해버렸다.
결혼의 실패와 집안의 폭망으로 멘붕상태에 이른 그녀는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갈망하며 여러 남자를 만나고 심지어 그녀가 교사로 있던 학교에서 학생까지 유혹해 버렸다.
자신의 기행들로 수습이 힘들어진 여자는 이제 막 결혼을 해서 신혼생활을 보내는 동생부부를 찾아와 기생을 시작한다.
그런데 자존심 구기고 잠시 붙어살려니 제부란 인간이 만만치 않다. 거칠고 우악스러우며 천박하기까지 한 이 남자는 여전히 스스로를 우아하고 기품 있다고 믿는 그녀를 조롱하고 무시하며 폭력적으로 대한다. 그럴수록 그녀는 과거의 애상과 실현되지 못했던 낭만이 그립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제부의 친구와 결혼을 하려고도 했지만 그것마저도 제부가 다 망쳐놓았다. 급기야 그는 임신한 아내가 병원에 간 사이 망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처형을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블랑쉬.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인물로 몰락한 미국 남부귀족을 상징한다. 1957년 동명의 영화에서 비비안 리는 블랑쉬를, 마론 브란도는 거친 제부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보바리와 블랑쉬 외에도 과도한 자기 연민과 애상을 지니고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여인들의 역사는 여러 작품에서 이어졌다.
#그녀는
이 염병할 소음. 죽어도 적응이 안 돼. 머리가 다 아프네. 애는 또 학교에서 사고를 쳐대지.... 머리 쪼개지겠네.
한 때 아름다웠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니(케이트 윈슬렛)의 미간엔 내천(川) 자 주름이 가실 날이 없다. 코니 아일랜드의 놀이공원 귀퉁이에 살고 있는 그녀는 오늘도 아스피린 한 움큼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만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에겐 재혼한 남편이 있고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재혼남, 험티(제임스 벨루시)는 우락부락한 거구에 낚시와 야구를 즐기는 자다. 거기에 술을 너무 좋아해서 중독 상태에 이르렀으며 취하면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좋게 말해서 현실주의자이고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낭만제로의 인간이다. 물론 그녀는 낚시도, 야구도 좋아하지 않으며 그를 사랑하긴 좀 힘들다.
그녀의 아들, 리치(잭 고어)는 학교를 수시로 빠지고 영화관에 가서 시간을 때우는 녀석이다. 영화를 볼 돈이 없으면 계부의 돈을 슬쩍 훔치는 버릇 때문에 험티에게 험악한 소리를 들으며 맞는 일도 허다하다.
영화관을 다니는 것 외에도 소년에겐 또 다른 취미가 있다. 상습적으로 아무 곳에나 불을 지르는 것. 아들의 고약한 취미 때문에 지니는 수시로 사고전화를 받아야 하고 이를 수습해야 한다.
갖추고 있는 조건만으로도 두통을 달고 살기 이미 충분하다. 그런데 어느 날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나타난다. 그녀는 재혼남 험티와 전부인 사이의 딸로 어린 나이에 갱 조직 두목에게 눈이 뒤집혀 야반도주를 한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두목인 남편의 범행을 경찰에 실토하는 바람에 갱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며 당분간 신세를 지겠다고 한다.
두통 유발자 한 명이 추가된 상황. 이런 와중에 험티는 철없이 부모를 배신하고 떠난 딸에게 한참 서운함을 토로하다가 갑자기 지니에게 자신이 낚시해 온 생선을 구워달라는 참으로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말을 지껄여댄다.
장래가 유망한 배우였어. 엄마 공연하는 걸 네가 봤어야 하는데...
어쩌다 이 꼴로 살고 있는지 지니는 참담하기만 하다. 한 때 무대에 오르던 배우였고 꿈꾸고 즐겼던 예술적 삶이 있었는데 말이다.
회환에 젖은 위기의 여자는 쓸쓸히 해변을 걷는다.
그러다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낭만을 알고 예술을 이해하며 그녀의 회한 많은 인생까지도 귀 기울여주는 자상함마저 갖췄다. 나이에 맞지 않는 넓은 아량과 젊은 육체에 박력까지 갖춘 연하남에게 지니는 자신의 팍팍했던 삶이 보상받기라도 하듯 대책 없이 빠져든다.
난 줄 게 많은데 줄 사람이 없어요.
줄 게 많았던 지니는 이제 그녀가 낭만과 예술과 열정을 쏟아부을 확실한 대상을 찾은 것일까?
본명은 웨스트레이크고 예명이 드로리언이에요. 소공연이며 뭐며 다 해가며 연기 레슨도 받았는데 식당 종업원 역이나 맡게 될 줄이야... 난 연기 중이에요. 그건 내가 아니에요.
그녀는 현재의 자신을 부정한다. 연기를 중단하고 식당종업원으로 살고 있으며 마흔을 앞둔 자신의 현재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연하남에게 호소한다. 그에게 어울리는 더 나은 자신의 근사한 모습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그녀는 이 사랑에 사활을 걸었다.
#그는
나는 믹키루빈. 타고난 시인이며 꿈은 작가랍니다. 이야기를 시작하죠. 나도 캐릭터예요. 시인이라 상징을 쓰고 예비 희곡 작가답게 멜로드라마를 좋아하고 과장된 캐릭터를 좋아하죠.
해변의 안전요원인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희곡작가를 꿈꾸는 청년이다. 스스로를 타고난 시인이라 생각할 만큼 자기도취에 젖어 있다. 한마디로 세상물정 아직 모르는 철부지 남자다. 뉴욕대학의 대학원에서 희곡을 배울 계획을 갖고 있는 그는 세상의 이야기가 될 만한 모든 사연에 목이 말라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순간 그는 쓸쓸히 해변을 걷는 사연 좀 있어 보이는 여자, 지니를 발견한다.
그는 유부녀의 굴곡진 인생고백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며 그녀에게 차츰 다가간다. 아직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극적인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은 그로선 지니의 고백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쓰게 될 위대한 희곡의 잠재적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기대가 작동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믹키는 지니와 함께 걸어가는 캐롤라이나(주노 템플)를 마주친다. 공들여 헤어스타일을 바꾼 지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새롭게 등장한 젊은 여자에게 반한다. 심지어 그녀가 갱단에게 쫓기는 신세라는 막강한 사연을 직접 들은 이후 믹키의 지니를 향했던 불장난은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머리로는 캐롤라이나는 위험에 처한 여자이고 자신에게도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타오른 젊은 본능이 뜻대로 통제될 리 없다.
현실적인 장단점을 보면 지니가 나았죠. 캐롤라이나를 택하는 건 멍청한 짓 같아서 다신 몽상에 즐거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마음은 자기만의 상형문자를 갖고 있대요.
말하자면 지니는 나이로도, 품은 이야기로도 캐롤라이나에게 판정패를 당한 셈이다.
# Kiss of Fire
I touch your lips and all at once the sparks go flying.
Those devil lips that know so well the art of lying.
And though I see the danger still the flame grows higher.
I know I must I surrender to your kiss of fire.
당신의 입술이 닿자 갑자기 불꽃이 튀었죠. 거짓말의 예술을 너무 잘 아는 악마의 입술, 그 위험함을 알지만 여전히 불꽃은 더 높이 타오르고 난 당신의 불꽃의 키스에 굴복해야만 해.
그녀는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믹키가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랑이라 믿었다. 그와의 사랑은 잠들어있던 그녀의 낭만과 화양연화의 시절을 깨웠으므로 불타오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영화는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며 지긋지긋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지니의 열망에 ‘kiss of fire'를 부르는 루이암스트롱의 걸쭉한 목소리를 슬쩍 올려놓는다. 하지만 노래가사와 달리 불타올라야 할 사랑은 자꾸만 사그라들고 그녀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리고 같은 시각 그녀의 아들은 어딘가에서 또 불을 지르고 있다.
품은 욕망과 널브러진 현실과 배경음악이 빚어내는 기막힌 불협화음.
사랑에 좌절된 자는 신경쇠약으로 치달으며 미쳐 가는데 영화를 보는 이들은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한 찰리 채플린의 말은 역시 옳다.
#원더힐 - 현실이라는 원심력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탈주를 꿈꾸었던 여자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남자의 불장난을 사랑이라 믿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그것도 의붓딸, 캐롤라이나로 인해 말이다.
그리하여 낭만이 좌절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지니는 결코 해선 안 될 일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돌아올 거라고, 당치도 않을 기대를 안은 채 드레스를 입는다.
나이 듦의 장점 중 하나는 실수에 관대해진다는 거예요. 살면서 실수를 많이 했으니까요. 그래서 용서가 가능한 거예요. 용서 없는 세상은 얼마나 잔인하겠어요.
그녀를 찾아온 믹키가 자신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왔다고 착각한 그녀는 마치 무대에서 모노드라마를 펼치듯 주절거린다. 현실감각을 완전히 놓아버린 채 망상에 젖은 그녀의 모습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의 주인공 블랑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녀가 한 짓을 모두 알고 나타난 믹키는 그녀에게 경멸적인 시선을 던지고 냉정하게 떠나버린다.
사랑이 떠나고 망상의 거품이 꺼져가는 공허한 공간엔 다시금 두통 유발자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사랑하기 힘든 기질과 취향의 남편과 상습 방화범 아들이.
그리고,
창밖에는 원형의 대관람차, 원더힐이 돌아가고 있다.
지니, 미안해. 날 떠나지 마. 떠날 생각 아니었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전처럼 이겨내게 도와줘. 옛날처럼.
야반도주했던 딸을 다시금 잘 키우고 싶었던 험티는 또다시 딸을 잃자 완전히 무너졌다. 그래서 이제 기댈 데라곤 지니뿐이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유니폼 빨아야 해.
비로소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면 망상과 절망이 걷히지 않은 신경쇠약증 환자의 허언의 일부일까?
구차하고 비루한 현실의 원심력은 이토록 막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