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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욱 Oct 03. 2020

알바촌극#15 야구진행요원 알바, 뭐했음?

알바경험담#15

저는 30대 중반 아재입니다. 제가 20대이던 대학교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주제로 소소한 깨달음을 적었던 글입니다. 오래 전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대학시절, 야구경기 진행요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친구 연이와 함께 말이다. 내가 맡은 보직은 '차량 통제'. 붉은색 견광봉을 들고 야구장 정문으로 출동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꽤 많았다. 00 팀로고가 새겨진 주황색 캡모자를 쓰고 차들을 통제했다. 야외 주차장에는 차가 이미 꽉 차서 지하 주차장으로 유도하는 임무였다. 



"200m 전방에서 우회전하셔서, 지하주차장 이용하세요"


목이 닳도록 외쳤다.


말을 잘 듣는 차들이 있는가하면, 무작정 돌진하는 차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다짜고짜 화를 내며 들어가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어떤 사람은 밝게 웃으며 야구경기보기전의 설레임을 나타냈다. 어떤 사람은 무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한국 사람이 말할 때의 표정을 발견하다


수백명의 사람들과 차가 내 옆을 지나갔다.  말을 할 때 한국사람의 표정에는 대표적으로 세 종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무뚝뚝한 표정, 울그락 불그락 화가 가득한 표정, 밝게 웃는 표정. 이 중에서 세번째인 밝게 웃는 표정이 가장 적었다. 어제 만난 사람들이 말할 때는얼굴에 표정이 별로 없었다. 다혈질인 사람도 더러 있었다. 웃으면 그렇게 좋아보일 수 없는게 한국사람인데 말이다. 


밖에 있다보니 야구 경기를 보지 못했다. 원래 야구장 안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정문으로 배치되었다.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100m밖까지 들려왔다. 다리가 아파왔다. 편한 알바라고 하지만 나름 고충은 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반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존댓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내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고, 어떤 사람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내가 견광봉을 휘두를 때마다 순순히 따르는 사람도 있었고, 고집을 부리며 나랑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나랑 모자가 똑같다며 즐거워했고, 어떤 장애인 분은 정중하게 야외주차장을 이용하면 안되겠냐고 물어보았다. 야구장 청소를 하러 온 청소부 아줌마도 있었다. 벤츠에 예쁜 여자를 태우고 데이트를 하러온 남자도 있었다. 어머니뻘인 청소부 아줌마를 보면서는 가슴이 짠했다. 벤츠에 여자를 태운 남자를 보고는 부럽기도 했다.


1~2초 동안 잠깐 찾아든 감정
 

도중에 내 나이 또래의 얼굴만 아는 사람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차를 타고 있었다. 서로 아는 척은 못했다. 순간 내 자신이 초라해보이기도 했다. 아주 짧은 1~2초동안 일어난 감정이었다.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취업을 할 나이라는 생각때문이었을까? 순간 그와 나를 비교했기때문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외쳐대기 시작했다.


"200m 전방에서 우회전하셔서, 지하주차장 이용하세요."


가끔씩 말이 꼬였다. 


"지하차차장 이용하세요!"


"200m 처방에서 지하차장 이용하세요!"


이렇게 말이다. 한국어 발음이 이렇게 어려운 줄 새삼 깨달았다. 볼펜을 물고 한국어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운서는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똑같은 자리에 서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로보트가 된 기분이었다. 꿨다. 차량통제 아르바이트는 즐겁지 않았다. 이 곳 사장은 자기 일처럼 즐겁게 하라고 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일을 하게 되면, 웃는 것도 노동이 됨을 깨달았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라는 게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모두 심신을 지치게 하지는 않을까?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 전국 각지에서 나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대학생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오후 8시가 되니 슬슬 배고프기 시작했다. 낮에 밥을 먹고 저녁밥을 먹지 못했다. 슬쩍 짜증도 밀려왔다.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다 다시 올 한해 취업할 수 있을까하는 늘상 하는 고민도 따라왔다. 


여기서 준 야구모자를 쓰고 일을 하다보니, 머리가 눌렸다. 왁스를 바른 의미가 없어졌다. 내 그림자는 좀 홀쭉해진 기분이었다. 비록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거창한 깨달음은 없었지만, 블로그에 소소한 느낌을 적고 싶었다.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피곤함을 달래다
 

돈은 언제 입금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입금되어야 또 한 주를 자신있게(?)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10시를 좀 넘겨서 일이 끝났다. 사무실로 가서 종이에 주민번호와 이름을 적고 나왔다. 그리고 일요일에도 일 할 수 있는지 체크하고 나왔다. 돈은 언제 입금되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 친구 상연이의 페이스북에서 발췌



터벅터벅 경기장을 나섰다. 친구와 순대국밥을 먹었다. 가게 이름이 '농민순대'다. 사람들이 많았다. 왠지 친숙했다. 아까 봤던 사람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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