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9
퇴근 후 와인 한잔을 마신다. 와인의 이름은 길다. 길어서 외우기 힘들다. 누군가 무슨 와인을 먹었냐고 물으면 말문히 막힌다. 무슨 와인을 먹었는지 떠올리려니 도무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주는 참이슬, 진로, 린처럼 이름이 거의 세 글자 이하다. 맥주는 하이트, 카스, 테라처럼 이름이 길지 않다. 길어봤자 다섯글자 이하다. 그런데 와인 이름은 최소 다섯 글자 이상이다. 그래서 그냥 와인을 마신다고만 한다. 이러니 꼭 폼잡는 것 같다. 그런들 어쩌랴. 그냥 와인이 맛있다. 맛있어서 먹는다. 와인 생산지도 이탈리아, 미국, 칠레, 프랑스 등 다양하지만 잘 모르겠다. 그냥 마신다. 마시다보면 자연스레 더 관심이 가는 와인이 생기고, 더 깊이 마실 줄 알게 되면 생산지와 산미를 따질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은 그냥 마셔본다. 목넘김도 부담없고, 소주 냄새처럼 코가 찡그려지지도 않는다. 와인들아, 내가 이름을 몰라도 섭섭해하지 말거라. 퇴근 후 아무 생각없이 와인을 한잔 마신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