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13
역사 속 성인군자와 예수, 부처가 직장생활을 해도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욱하지 않고 직장상사와 동료, 부하직원과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직장은 때로는 이성의 한계를 느끼고 감정을 표출하게 되는 곳이다. 누구도 예외일 순 없다. 일을 하다보면 직장상사나 동료간에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급기야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여기서 '감정'은 권총의 방아쇠와 같은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욱해서 그 방아쇠를 당기면 '말'이 총알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 깊숙히 박혀버린다. 정조준을 하는 게 아니라 난사가 되는 형국이다.
서로 얼굴을 오래봐야하는 직장에서 서로 불편해질까봐 화를 꾹꾹 참으며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어느 선을 넘으면 그 순간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목젖을 지나 혓바닥위에 얹힌 토사물이 입밖으로 나오기 직전일 때, 그 토사물은 두 손을 모아서라도 받아낼 수 있다. 그런데 꾹꾹 참았다가 순간 폭발하는 사람의 감정을 그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으랴.
화를 못 이겨 순간적으로 '욱'하면서 표정을 일그리거나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거나, 아니면 욕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쏟아낸다. 예를 들어 '아이 씨(발)'. 아차 싶으면서도 이미 엎지른 물이다. 주워담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 순간 표출된 감정은 유리조각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 어딘가에 쿡 박힌다. 서로 반대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피만 흐르지 않을 뿐이지 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유리조각에 찔린 부분이 회복되기까지는 사람에 따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회복할 기회를 상실해버리고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 확률이 더 크다. 그렇다고 왠지 내가 먼저 사과를 하자니 지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먼저 사과할 정도로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 있지 않은가. 이건 상대방 역시 비슷한 생각일 것 같다.
어쨌거나 누가먼저 손을 내밀어 사과를 안하고 꼬인 감정을 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직장 생활 내내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거는 불 보듯 뻔하다. 업무적으로 얽혀있을 때는 더욱 불편한 관계가 이어질 것이다. 목구멍에 고구마 여러개를 박아놓고 일하는 심정일 터. 감정를 표출한 사람이나 그 직격탄을 맞은 사람이나 기분은이찝찝하기는 매한가지다. 괜히 내가 나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고 이해심이 부족한 것 같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다가도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 못했다고 생각하며 씩씩 대기도 한다.
둘중에 누군가는 참는 사람이 생기거나, 둘 다 불이 붙어 한바탕 싸우거나. 참는 쪽은 속병을 앓다가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한바탕 싸우고 나자니 관계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게 된다.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업무적으로 깔끔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게 어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표출하게 만드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나의 뇌관을 터트릴 수도 있다. 어쨌든 상대방의 감정이나 자존감, 자존심이 상처 입지 않게 말을 조심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도 뭔가 찔린다. 하하하. 그런데 말이 쉽지 이렇게 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직장생활 8년차.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은 이성의 동물보다는 감정의 동물에 더욱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